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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86

목욕하러 갈까요? 송도를 지나가던 길, 전시 제목과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전시 주제가 목욕이라니? 어떤 전시일지 궁금해하다가 짬을 내어 송도 트라이보울 옆 인천도시역사관(인천시립박물관 분관) 전시장을 찾았다. 알고 찾아갔는데도 막상 안쪽에는 별다른 안내가 보이지 않아 2층 전시장까지 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2층에 위치한 전시장에 도착하자 친근한 목욕탕 굴뚝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는 목욕탕과 목욕문화를 주제로 근대에 등장한 목욕탕이 찜질방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목욕문화를 살핀다. 탈의실, 욕탕, 휴게실로 구성된 전시실을 걷다보면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목욕 문화를 일별하게 된다. ‘목욕’이라는 주제는 친근하지만, 전시장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주제의 특성상 처음 접하는 정보가 많다.. 2021. 1. 17.
소리와 이미지의 공간 부평에서 서구로 이동하자 낯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공장에 고물상까지 모여있는 이런 지역에 전시장이 있긴 한 걸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고, 커다란 공장들과 아무도 없는 휴일, 공단 지역을 스쳐 지나가다가 드디어 도착한 코스모 40. 1968년 설립된 코스모화학 폐공장을 철거 직전 인수한 공동대표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꿔냈다고 한다. 기존 코스모화학의 45개 공장 건물 중 44곳은 철거됐고, 40번째 정제 시설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거대한 철문이 양쪽으로 갈라지자 퉁명스럽게 내밀었던 아이의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우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사실 아이는 삐쳐있었다. 엄마가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자신이 알던 ‘그 카페’가 아니었다. 철제 콘크리트.. 2021. 1. 17.
당신의 휴식과 여가는 당신의 생각일까? 수도권 주변에는 야산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우리는 산 속에서조차 울긋불긋한 등산복과 히말라야도 등반할 수 있을 정도의 채비를 갖춘 같은 종의 인간만을 구경하다 내려온다. 아버지 세대가 산을 독점했다면, 도심 속 공원들과 강변은 어떨까. 캠핑 열풍이 부는가 싶더니 돗자리는 자취를 감추고 온통 텐트가 점령했다. 휴식을 취하는데 필요한 매뉴얼과 프로토콜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기획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부적인 것들까지 프로그램된 휴식과 여가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만큼 우리에게는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한다. 전시장 오른편에 걸린 이상원 작가의 그림들은 이런 획일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름이면 뉴스에 등장하는 해수욕장의.. 2021. 1. 17.
속도에 앞서 방향을, 방향을 통해 가치를 인천아트플랫폼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오버드라이브 2009-2019: 여행하는 주체들, 창조자, 장소의 경험》展(이하 《오버드라이브 2009-2019》展(2019. 9. 25~ 10. 27)이 개최되었다. 자동차의 증속 장치를 의미하는 ‘오버드라이브(overdrive)’를 전체 테마로 선정한 전시는 2009년 개관이래 인천아트플랫폼이 입주 작가들 작업에 생산적 자극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자가 진단인 동시에 향후 인천아트플랫폼이 입주할 작가들과 역동적 질주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선언적 의지로 이해된다. 광장에서, 제안하기, 확장하기, 기록하기, 장소의 경험. 《오버드라이브 2009-2019》展의 섹션은 5개로 나뉘어 구성되었지만 각각의 섹션은 개념적 연결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벽(壁)이.. 2021. 1. 17.
조선, 멕시코, 쿠바의 한인들 2010~2014년 발표된 ‘세계 가치 조사’라는 이름의 통계가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문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인종과 이웃에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스웨덴 2.8%, 미국 5.6%로 집계됐다. 놀라운 건 한국인의 경우 34.1%의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설문 대상자들 중 속마음을 감추었을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높은 결과치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한국이 이스라엘, 아일랜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적으로 자국민을 해외로 가장 많이 송출한 네 번째 국가라는 점이다. 2013년 기준, 자그마치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726만 8,000명이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가장 높은.. 2021. 1. 17.
전환, ‘쓸모없음’에서 ‘쓸모있음’으로 전시 소식을 듣고 리사이클(Recycle)과 업사이클(Upcycle)의 사전적 의미부터 찾아보았다. 리사이클은 버리는 물품을 재생하여 다시 사용하는 일, 업사이클은 재활용할 수 있는 옷이나 의류 소재 따위에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하여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리사이클이 순환이라면 업사이클은 전환이다. 업사이클(Upcycle)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단어로, 더 의미 있고, 멋있게 재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실용성과 예술성이 합쳐져 상업성까지 가미된 업사이클은 자연생태계의 순환구조를 통해 자연환경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마침 지난번 재활용 페트(PET)전시에 이은 또 다른 재활용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전시장으.. 2021. 1. 10.
아는 동네, 교동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호진이 촬영한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북한의 황해도 연백군과는 불과 2-3km 떨어져 있는 남북한 접경지로,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자 군사시설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검문소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다. 6.25 전쟁 당시 이북의 주민들이 교동도로 피난을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 상당수 정착해 삶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특징과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가진 지역으로 교동은 평화를 상징하는 지역이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교동도다. 분단이 오래 지속된 만큼 우리가 아는 교동도의 모습도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 이호진은 지난가을, 카메라를 들고 교동도의 여러 마을을 다니며, 우리가 아는 교동도의 변함없이 지속된 풍경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최근에.. 2021. 1. 10.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나다 인천 강화의 전등사 경내에는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011년에 현대식으로 지은 전각 無說殿의 긴 벽면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서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10월 1일부터 2019년 12월 마지막 날까지 한국화 작가 한경희의 개인전이 이곳 서운 갤러리에서 열렸다. 한경희 작가는 덕성여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2009년 ‘사라지는 발견’ 전시회를 시작으로 4차례 개인전과 17차례 단체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이번 전시는 전등사가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실시한 전시지원 공모사업에서 1차로 선정되었으며 전시의 타이틀은 ‘여러 날의 낮과 밤’이다.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서 '낮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흑색의 거칠고 단순한 붓질로 표현한 우직하고 곧은 큰 나무가 .. 2021. 1. 10.
아름다운 그 밖의 것 아주 오랜만에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의 단상들은 린넨 면의 설기들이 드러나 날것처럼 보이나 심적으로부터 시작된 그 무언가들이 조형적인 형상으로 변화된 것처럼 매우 정돈된 풍경이었다. 또한 고유한 회화적 매체성을 가장 탁월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필자를 더욱 흡족한 흥분감 안으로 몰아넣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구도심에 위치한 플레이스막 인천에서 알싸한 바람이 코끝을 건드리는 겨울 박효빈의 개인전 ‘그 밖의 것’이 열렸다. 플레이스막은 연희, 레이저, 막사에 이어 과거 일제 식민시대의 흔적과 현재의 다양한 변화가 공존하는 박물관과 같은 거리인 개항로에 개관한 실험적 예술공간이다. 박효빈 전시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이러한 공간이 인천에 생긴 것이 필자는 .. 2021. 1. 10.
폐허 속 사물이 이야기하는 것  인천 ‘옹노(擁老)’에서 열린 오석근 작가의 쇼케이스 ‘인천’은, 근작인 ‘인천’을 찍은 시리즈 외에도 그의 지난 작업들 일부와 그에 대한 비평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중 16장의 ‘인천’ 시리즈만을 초점화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의 연작에서, 포스터에도 나온, 보랏빛의 폐허로 남은 산업 현장과 그 뒤로 신기루처럼 서 있는 번쩍거리는 아파트를 함께 찍은 사진을 제하면, 대부분의 사진은 미시적이고 해부학적 시선으로 인천의 재개발 현장의 버려진 사물들과 건물 일부분들, 바닥의 표면들과 같이 사물의 특정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세로가 월등히 긴 프레임의 사진은 표면의 절단 효과를 강조하는데, 세계의 표면을 위로 세워 불안정한 시선의 안착을 형성하거나 빗장을 완전히 열지 않은 듯한 폐쇄된 공간감을 불러일으.. 2021.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