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19

횡단하는 말하기 모종의 배제와 억압, 폭력에 의해 타자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발화’는 그 직전 혹은 과정에서까지 주체 설정에 대한 혼란을 수반한다. 여기에는 그 현실에서 나는 무엇으로 명명되고 규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직접 감각했는가와 같은 복합적이고 엄격한 물음이 요청된다. 남성/여성, 가해자/방관자/피해자, 소수자/주류 등 다양한 정체성을 겹쳐 고민하면서 궁극적인 발화 주체를 구성했을 때, 다시 그 주체는 이것을 말하기에 완전무결한 화자인가를 성찰하고 마침내 선택해야 한다. 말할 것인가/ 말하지 않을 것인가. 결국 ‘말하기’는 몸을 가진 자의 의지와 결심으로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말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준, 화자 스스로 나아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처럼 작동하는 감각은 ‘말할 수 있는가’.. 2022. 7. 31.
어느 누가 욕망에 자유로울 수 있는가 2021년 9월 시작된 인천시립미술관 소장품 정책 연구용역 과업의 최종보고를 약 2개월 앞두고, 2022년 2월 인천시립미술관 소장품 정책 수립을 위한 세미나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여 개최되었다. 세미나는 이번 연구의 책임연구원인 박신의 경희대 교수와 인천미술연구자인 박석태의 발제 후 이경모, 김종길, 김장언, 차기율, 정현의 토론자별 10분여의 토론과 참여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코로나19 가운데, 약간은 침잠된 분위기였지만 각각의 열망(아직은 욕망이라도 명명하진 않겠다)들이 모여 각자의 에너지를 발산한 3시간이 넘게 진행된 뜨거운 토론이었다. 인천시립미술관은 무엇을 어떻게 수집해야 할 것인가? 그 무엇을 어떻게 수집하기 위해 우리는 절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불협을 최소한.. 2022. 5. 29.
유희적 전술로서 응시 혹은 탈선하기 바닥을 침투하는 축축하고 끈적이는 타액의 흐름을 따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신체 조직들 반사된 빛의 각도를 따라 접혔다 펼쳐지는 표면 너머로 조각되는 장면들 그 이면에 뚫린 검은 구멍과 그 속에 숨겨진 유물들 너머로 대기의 습윤한 질감을 따라 몸을 형성하는 환영들 가변적이며 유기체를 동반하고 공간에 달라붙어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조망할 수 없는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전시를 감상하기 위해선 장소와 인프라, 작품과 신체의 접촉을 통한 뒤얽힘과 화학작용으로 융해해 들어가는 연금술적인 눈이 필요하다. 감상은 응접실을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시는 응접실이라는 공간 자체를 전유하며, 응접실은 인천이라는 지형학적 플랫폼을 경유하여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인천역에서 20여분 정도의 보도 이동 .. 2022. 5. 29.
유전자에 새겨진 뿌리의 냄새, <파친코>와 <미나리>가 지워진 이민의 역사를 되살리는 방식 바야흐로 장벽이 낮아지고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2020)는 93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윤여정 배우)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 등을 만든 플랜B가 제작한 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아칸소주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Lee Isaac Chun)의 자전적 사연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린 이민자들의 삶이 투영된 수작이다. 북미에서는 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어 결국엔 아카데미의 영광을 거머쥐었지만 북미에서는 80퍼센트 이상 한국어를 사용하는 가 외국영화인지 자국영화인지를 두고 작은 논쟁이 일었다. 제작, 배급 기준으로 한다면 는 미.. 2022. 5. 29.
코로나19이후 아트페어와 대안적 전시 통과의 장소에서 머무는 장소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하 코로나19) 이전 많은 사람은 언제나 이동 중이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교통수단을 바탕으로 국가와 지역을 넘나들며 이동하고 교류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이동과 교류에 제약이 생겨났다. 이동의 시작과 끝이 되는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등은 이러한 제약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고, 본래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채 비어지고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시점에 인천국제공항과 키아프 서울 Kiaf SEOUL (이하 KIAF)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획전시인 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에서 열렸다. KIAF는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아트페어로 서울에 위치한 코엑스에 공식 오픈을 하였으며 인천국제공항에서는 KIAF에 참여한 현.. 2021. 11. 28.
분홍이 겹겹 팥죽 별 다른 가공 없이 자연 그대로의 붉은 빛을 띄는 팥죽색, 나는 이 색을 정정엽 레드라고 불러본다. 이 색이 참으로 묘한 것이 이 불그죽죽한 빨강은 옅어지면 옅어질수록 얼굴에 덫 입혀진 발그레한 볼마냥 분홍빛을 띤다. 그래서인지 정정엽의 그림 속 인물들은 강하고 순박하고 또 억척 스럽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열린 정정엽 작가의 20번째 개인전 [걷는 달]은 연약하거나 소외된 존재들에 관심을 두면서 여성의 힘을 상징하는 ‘여성’, ‘여성의 노동’에 대한 작업을 선보인다. ‘여성’의 이야기는 매우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여성 한명 한명의 삶의 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정엽 작가는 각각의 묵직한 삶의 무게를 가진 ‘여성’들을 화면에 끌어들인다. 아니, 그들.. 2021. 11. 28.
몸으로 읽는 도시, 그 다음 장을 향하여 “우리 몸은 늘 여기에 있음의 경험이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알맞게 생긴’ 우리의 몸은 하나의 도시, 공간과 가장 먼저 접촉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지역을 거닐며 익숙하지 않은 거리와 보도, 오로지 보행을 위해 설계된 공원을 감각한다. 신체의 움직임에 그저 응하다 보면 낯선 사람과 고양이, 도시를 뒤덮은 간판과 도로의 명칭, 풀과 꽃의 내음, 계절을 가늠하기 알맞은 울창한 나무에 시선이 닿는다. 그리고 이 모든 관계 맺기에서 보이는 하나의 방법론은 바로, ‘걷기’이다. 보행을 통한 도시 읽기 어딘가를 걷는 일은 나와 관계된 세계의 확장이자 사유 전개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결과 계획에 의해 구획된 도시 공간space은 ‘의미’가 부여된.. 2021. 11. 28.
‘출경’의 기억, 접경지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 우선 이 전시의 틀을 간략히 말해볼까 한다. DMZ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보러 도라산에 다녀왔다고 하면, 대부분은 그 전시는 어디서 주최하는 것이냐고 먼저 물어왔기 때문이다. 《DMZ ART & PEACE PLATFORM》전(예술감독 정연심)은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가 주최한 전시로, 경기 파주의 유니마루, 파주철거GP, 도라산역, 강원 고성의 제진역, 서울의 국립통일교육원 등 5곳에서 진행되었다. DMZ 내 첫 문화공간인 유니마루(Uni마루:통일을 뜻하는 영문 ‘Uni’와 플랫폼의 순수 한글 ‘마루’를 합친 말)의 개관을 계기로 이번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파주에 위치한 유니마루와 도라산역에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하였지만, 아쉽게도 서울과 고성의 전시장에는 방문하지 못했다. 비무장지대(DMZ.. 2021. 11. 28.
인간과 길고양이의 관계를 ‘탁’ 비튼다는 것 “ 대체 몇 년이나 길고양이 밥을 줘 보고 이야기하는 거야” “ 내가 얼마나 많은 돈과 희생을 해왔는데... ” “ 이 아이들은 길고양이가 아니라 내 새끼라구 ” " 예술가라 역시 뜬구름잡는 이야기만 하시네요 " “ 그런 말들을 하는 건 우리 모임의 순수성을 해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겁니다. ” 몇 해 전이었다. 한때 업종 변경을 생각할 만큼, 열심히 했던 동네 고양이 보호 활동에서 재건축 관련 문제로 첨예하고 복잡한 상황과 감정적이고 예민해진 관계들이 얽혔을 때 들었던 말들. (더 심한 말도 있었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생략한다.) 당시 문제의식을 조금 공유했지만, 각자 상처와 책임으로 애써 거리를 두고 있었던 그가 지나가는 말로 잡지를 내고 싶다 했고, 나는 말랑한 고양이 이야기나, 캣맘들의 희생이나 길.. 2021.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