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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6

‘출경’의 기억, 접경지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 우선 이 전시의 틀을 간략히 말해볼까 한다. DMZ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보러 도라산에 다녀왔다고 하면, 대부분은 그 전시는 어디서 주최하는 것이냐고 먼저 물어왔기 때문이다. 《DMZ ART & PEACE PLATFORM》전(예술감독 정연심)은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가 주최한 전시로, 경기 파주의 유니마루, 파주철거GP, 도라산역, 강원 고성의 제진역, 서울의 국립통일교육원 등 5곳에서 진행되었다. DMZ 내 첫 문화공간인 유니마루(Uni마루:통일을 뜻하는 영문 ‘Uni’와 플랫폼의 순수 한글 ‘마루’를 합친 말)의 개관을 계기로 이번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파주에 위치한 유니마루와 도라산역에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하였지만, 아쉽게도 서울과 고성의 전시장에는 방문하지 못했다. 비무장지대(DMZ.. 2021. 11. 28.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입니까? 서울 서교동에서 인천 교동도를 중심으로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공간 ‘듬’을 운영하고 있는 윤대희가 기획하였고, 고등어, 김수환, 박주연, 범진용, 손승범, 윤대희가 작가로 참여하였다. 강화를 기반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기획하는 협동조합 청풍의 제안으로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참여작가들은 교동도 리서치 투어를 진행하고 실향민의 자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사전 활동을 진행하였다. 교동도는 강화의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한과의 거리가 2~3km에 불과한 남북 접경지다. 교동도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자면,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망향대가 있고 실향민이 터를 잡은 마을이자, 민간인 출입통제구역과 군사지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 2021. 1. 31.
고립으로부터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기계장치와 그것이 내뿜는 소리는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그 의미를 선뜻 알아챌 수 없는 라는 낯선 제목처럼. 용도가 분명치 않은 알루미늄 소재의 패널 두 장이 하나의 쌍을 이루고 있고, 각 패널에서는 기계음이 나온다. 모두 동일해 보이는 패널은 프레임이 같을 뿐, 자세히 보면 프레임 내부의 표면은 모두 다른 소재로 되어 있다. 슬레이트 지붕, 염색을 한 천, 철망 등의 소재로 되어 있고, 각각의 패널에서는 메트로놈 소리, 전파 망원경 소리, 시계의 초침 소리, 라디오 주파수 소리 등 각기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미세한 차이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이 작업의 출발이 된 참조점에 다가가기 쉽지 않다. 그는 ‘물리.. 2021. 1. 24.
당신의 휴식과 여가는 당신의 생각일까? 수도권 주변에는 야산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우리는 산 속에서조차 울긋불긋한 등산복과 히말라야도 등반할 수 있을 정도의 채비를 갖춘 같은 종의 인간만을 구경하다 내려온다. 아버지 세대가 산을 독점했다면, 도심 속 공원들과 강변은 어떨까. 캠핑 열풍이 부는가 싶더니 돗자리는 자취를 감추고 온통 텐트가 점령했다. 휴식을 취하는데 필요한 매뉴얼과 프로토콜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기획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부적인 것들까지 프로그램된 휴식과 여가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만큼 우리에게는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한다. 전시장 오른편에 걸린 이상원 작가의 그림들은 이런 획일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름이면 뉴스에 등장하는 해수욕장의.. 2021. 1. 17.
아는 동네, 교동도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호진이 촬영한 교동도는 강화군 북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북한의 황해도 연백군과는 불과 2-3km 떨어져 있는 남북한 접경지로,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자 군사시설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검문소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다. 6.25 전쟁 당시 이북의 주민들이 교동도로 피난을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 상당수 정착해 삶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특징과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가진 지역으로 교동은 평화를 상징하는 지역이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교동도다. 분단이 오래 지속된 만큼 우리가 아는 교동도의 모습도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다. 이호진은 지난가을, 카메라를 들고 교동도의 여러 마을을 다니며, 우리가 아는 교동도의 변함없이 지속된 풍경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최근에.. 2021. 1. 10.
회화적, 가변적, 더 정확하게 안상훈의 전시 는 이제까지 작가가 제작했던 모든 작업들 하나하나에 건네는 고마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인이 제작한 작업들을 돌아보고자 하는 전시 의도에 맞게 실제 캔버스 작품이 전시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이와 달리 작가는 전시장에서 현장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덕에 시적이고 사려 깊은 제목의 전시는 가변적이고 즉흥적인 풍경으로 가득했다. 다층의 레이어와 볼륨을 가진 점, 선, 면, 덩어리, 얼룩 등이 저마다의 속도와 흐름으로 전시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수분을 머금은 구름처럼 어느 순간 상태를 변화시키고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할 것 같은, 임계지점에 다다른 듯 포화되고 팽창과 수축이 유동하는 가변적 물질의 세계를 펼쳐 놓은 것 같다. 추상의 이미지마저도 환영으로 읽으려고 하는 관람자적 충동으로 ..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