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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은2

염증, 재현, 날 것 신재은의 이번 전시는 공간의 특징을 파악하고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의지가 부각된 전시였다. 관객은 입구에 배치된 ‘침묵의 탑 Pink(2018)’의 미니어처를 관람하고 붉은 카펫을 지나 검은색 액체가 솟구치는 메인 작품 ‘Black Fountain(2019)’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층에서 관람한 작업은 다시 일층의 작업으로 이어지도록 하나의 무대처럼 연출했다. 연출 감각은 젊고 발랄했으며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과장되게 제시해왔던 작가의 기본 작업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전시였다. 2층의 핑크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파여진 작은 구멍에 귀를 기울이면, 반대편 벽에서 추락하는 돼지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 필자는 축산물 이력표나 실제 돼지 뼈 등이 같은 층에 전시되어 있어서 듣기 전에 이미.. 2021. 1. 24.
신기한 드나듦에 대하여: 언젠가 정착한 사람들 인천의 어느 동네를 달리고 있었다. 택시에는 일흔을 훌쩍 넘긴 큰아버지와 예순도 안 된 막냇동생과 그의 딸인 내가 타고 있었다. 목적지는 주안동 ‘현상 약국’. 큰아버지는 택시 기사에게 주안에 오래된 약국 두 개 중 하나가 문을 닫는다고 말을 걸면서 재개발 얘기를 꺼냈다. 큰아버지 고향은 파주 장단. 전쟁 때 도림동으로 피난 와 영등포에서 평생을 사시다 인천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그런 큰아버지가 타고난 인천사람마냥 주안동의 재개발에 대한 염려를 숨기지 않으셔서 의아했다. 자신 역시 이주민인 동네에서 개발이라는 변화를 걱정하며 택시 기사와의 몇 마디 대화로 애써 근심을 가라앉히려고 하는 마음은 큰아버지 개인 인생사를 생각하면 낯설었지만, 자주 이사를 다니는 도시 거주자로서는 익숙하기도 했다. 그 정감..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