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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발화하는 '지금'을 기록한다는 것 #1. 도시 도시는 침묵하지 않는다. 수많은 깜빡임과 매캐한 연기로 호흡하는 곳, 끊임없는 웃음과 비명, 감정을 담은 것들이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며 살아가는 곳, 만남과 만남이 자생하는 곳. 그것이 사람이든 공간이든 물건이든 우리 대다수는 만남을 스치며 지금 여기, 도시에 살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 현황을 보자면 인천의 인구는 약 296만 580명이다. 숫자로만 따지면 인천은 도시 중에서도 꽤 큰 규모에 속한다. 그러나 통계로 보이는 인구수가 무색하게 낮에 도시를 다니다 보면 거리는 텅텅 비어있다. 그 많은 사람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 많던 사람들은 아마 어슴푸레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대중교통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일하러, 밥을 먹으러, 누군가를 만나러, 그리고 문화를 경험하러. 그리고.. 2022. 9. 25.
문화예술 아카이브 거버넌스를 꿈꾸며 체계적인 아카이빙의 필요성 마을공동체만들기, 도시재생, 문화도시 등의 다양한 사업들의 공통점은 지역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지역의 자원을 조사하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이를 반영한 프로그램 및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들은 분명 과거의 하향식에 비해서 매력적인 사업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 지원 사업이라는 한계가 있다. 대게 지역의 이야기나 자원을 미리 발굴해두고 사업을 설정해둔 지역이 많지 않기에 지원받기 위해서 지역의 이야기를 급하게 발굴한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문화사적인 가치에 대한 검토과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숙고와 검토의 기간이 부족하기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이렇게 발굴된 지역의 이야기는 각 사업 단위에서는 공유가 되지만 부서를 하나만 넘어가도 공유되지 않아 한 시민의 구.. 2022. 9. 25.
물값을 달라고 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 (강/바다) 물을 사고파는 이야기 우리는 강물을 사고팔았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선달이라는 인물이며, 김선달이 대동강을 거래했다는 이야기는 그이에 대한 설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김선달은 어느 날 평양의 대동강 앞에서 물을 길어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척 연기를 한다. 이를 본 돈 많은 외지인은 의아해하며 뭘 하는지를 물었고 김선달은 이 강이 자기 소유라서 이곳의 물을 팔고 있다고 한다. 이에 욕심이 생긴 외지인은 큰돈을 주고 김선달에게 대동강을 산 뒤, 이튿날 물을 길어온 평양사람들에게 물값을 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그 외지인이 미쳤다고 여길 뿐 돈을 내지 않았으니, 그제서야 외지인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워.. 2022. 9. 25.
디아스포라의 고통받는 얼굴을 보라 얼굴, 벌거벗은 고통이 당신 앞에 닥쳐온다. 고통받는 얼굴은 주체의 ‘상처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에 호소하며 우리에게 응답할 것을 ‘명령’한다. 고통받는 얼굴의 도덕적 명령,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겠다는 독단적 자유에서 벗어나라는 명령. 그 명령에 응답하는 자와 외면하는 자. 기꺼이 상처받으려는 자와 상처를 두려워 하는 자.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에게 윤리적 주체란, 이 고통받는 얼굴 앞에서 자신도 함께 상처 입겠다며 손을 내미는 주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주체, 그리고 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주체이다. 자신의 ‘상처입을 가능성’을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그럼.. 2022. 9. 25.
표류에 기울이는 말 세월이 짙은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그 두터움을 섬세히 다룰 여러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섣불리 내릴 판단을 유예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며 계속해서 변모하는 디아스포라 역시 그렇다. 그중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개화기 하와이 이주를 시작으로 중국, 일본, 연해주 그리고 또다시 중앙아시아 등지로 향한 이들의 몸이 조선/한국이라는 경계를 갖고, 도착한 땅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낸 것을 일컫는다. 초기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다룬 미술이 이러한 표지를 지닌 작가가 이주한 장소를 관찰하며 낯선 일상을 그려내거나, 이를 통해 자기 고백적이고 역사화 된 경험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2010년대 이후 작가들은 세대를 건넌 뒤 맞닿은 현재의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 과정에 참여하.. 2022. 9. 25.
욕망 주도 기계 - '공장달리기 인천' 이후 돌아보는 신체의 기계성 미국 철학자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가 제시한 기계지향론적 존재론(machine-oriented ontology)에 의하면 우리가 '존재'라 칭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기계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들뢰즈/가타리의 머시니즘(machinism)이 놓여있다. 이것은 작동하는 모든 것이 기계(machine)라는 주장인데, 생명을 가지는 것들을 포함한다. 보다 일반적 의미에서의 기계, 우리가 평상시 기계라 부르는 바로 그 비생명체들의 작동 원리를 일컫는 메커니즘(mechanism)과는 구분하기 위해서 도입된 명칭이 바로 머시니즘이다. 이 이론은 입이나 항문이 어째서 기계인지를 예로 드는데, 어떤 유기적 흐름에 개입하여 그것을 절단하거나 채취하는 것이 곧 기계라는 정의가 따른다. 이 주장에서 반복적으로.. 2022.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