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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자와 범진용, 모자의 ‘성북동’ 혼자서 하기 힘든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어떤 상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그 상태로 정지시켜 고이 묶어두는 행위이다. 이것은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범진용 작가의 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빌리면, 작가의 어머니는 ‘아마도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집안 이곳저곳을 쓸고 닦으시며 바쁘시다.’ 그는 이런 어머니께 ‘그 흔한 영양제 대신 미술용품’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보시라고 말씀 드렸다. 작가는 그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전시장에서 위로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전시는 작가와 어머니의 ‘성북동’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는 것이 낯선 어머니는 어릴 적 누구나 경험해 본.. 2020. 12. 18.
나투라 나투란스 오픈랩 2018년 인천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나투라 나투란스 오픈랩' 의 일환으로 지난 12월 17일 강연과 토론을 포함한 소규모의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다. ‘나투라 나투란스’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소산자연(natura naturata)'과 '능산자연(natura naturans)' 개념에서 따온 말로, 여기에서는 내가 2017년부터 진행한 정원과 분재, 수석을 모티브로 자연과 인간, 기술과 예술 사이 상호관계와 시적 욕망을 탐구하고자 하는 일련의 작업 프로세스를 지칭하는, 프로젝트의 제목이다. 인간/자연 이분법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바이오아트, 포스트휴먼 등의 주제들,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비슷한 시기 목격하게 된 예술에서의 윤리적 갈등 .. 2020. 12. 18.
기이한 뒤집기, 카니발레스크의 실천 지난 10년 동안 치열하게 작업해 왔으나 다 년간 발표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던 백인태가 개인전 《고라니》展(2019.10.10~31 갤러리 옹노)을 가졌다. 전시가 정조준하고 있는 문제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존재가 처한 다면적 상황이다. 물화된 세계에서 부정되는 존재, 특히 인간 개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은 동시대 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다뤄지는 예술적 관심사이다. 다만 주목할 만 한 점은 부조리한 사회, 멸종 위기에 놓인 존재의 현실에 접근하는 백인태 작업의 인식과 태도가 지닌 특수성이다. 백인태 작업은 훼손된 인간의 이목구비나 정신 질환적 징후 없이, 심각하게 변형되거나 과도하게 축소된 인체의 제시 없이 뒤틀린 세계와 위태로운 존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백인태 작업은 파블로 엘겔라가 『사회참여예술이란 무.. 2020. 12. 18.
회화적, 가변적, 더 정확하게 안상훈의 전시 는 이제까지 작가가 제작했던 모든 작업들 하나하나에 건네는 고마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인이 제작한 작업들을 돌아보고자 하는 전시 의도에 맞게 실제 캔버스 작품이 전시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이와 달리 작가는 전시장에서 현장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덕에 시적이고 사려 깊은 제목의 전시는 가변적이고 즉흥적인 풍경으로 가득했다. 다층의 레이어와 볼륨을 가진 점, 선, 면, 덩어리, 얼룩 등이 저마다의 속도와 흐름으로 전시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수분을 머금은 구름처럼 어느 순간 상태를 변화시키고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할 것 같은, 임계지점에 다다른 듯 포화되고 팽창과 수축이 유동하는 가변적 물질의 세계를 펼쳐 놓은 것 같다. 추상의 이미지마저도 환영으로 읽으려고 하는 관람자적 충동으로 ..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