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김금자와 범진용, 모자의 ‘성북동’

by 동무비평 삼사 2020. 12. 18.

 

혼자서 하기 힘든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어떤 상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그 상태로 정지시켜 고이 묶어두는 행위이다. 이것은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범진용 작가의 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빌리면, 작가의 어머니는 아마도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집안 이곳저곳을 쓸고 닦으시며 바쁘시다.’ 그는 이런 어머니께 그 흔한 영양제 대신 미술용품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보시라고 말씀 드렸다. 작가는 그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전시장에서 위로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전시는 작가와 어머니의 성북동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는 것이 낯선 어머니는 어릴 적 누구나 경험해 본, 종이에 발바닥을 대고 따라 그리는 것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작가의 조카이자 어머니의 손녀는 그것을 함께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건넨 미술용품으로 <김금자의 발>을 그렸고, 그것으로 그림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하나씩 그려나가신 것은 성북동 집의 곳곳이었다. 그림에는 직접 키운 꽃, 나무, 텃밭 등이 있었다. 당신의 시야에 있는 것을 그린 것이다. 그림 대부분에서 새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새들은 까마귀다. 또한 어머니의 남편이자 작가의 아버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에도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집 근처에 까마귀들이 날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새들이 당신의 남편이라 여긴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려진 까만색의 까마귀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색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성북동에 더 이상 계시지 않는 남편을 어머니는 다시 성북동그림에서 마주하신 것이다. 눈에 보이고, 마음에 있는 것을 다양하게 그려내시는 것을 보니 필자는 작가의 어머니가 그림을 통해 나름대로 평안을 찾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그림의 성북동은 어린 시절 남매들과 무언가를 하는 장면, 어머니와 손잡고 걷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그림과 다르게 작가의 그림에서는 아버지가 어떤 형태로든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그림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오히려 아버지의 존재로 읽혔다. 작가가 그린 어린 시절은 그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던 시간이었고, 그려진 가족들은 아버지를 충분히 투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는 성북동을 가족들과의 평안했던 삶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이제 성북동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조금 자라고 나서부터 떠나고 싶었던 성북동은 다시 들추어 보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 방식으로 전시를 택했고, 그와 어머니의 성북동은 전시장에 한데 옮겨졌다. 혼자 했으면 어려웠을 것을 서로의 평안을 위해 둘은 함께 해낸 것이다.

 

당신의 그림으로 전시할 줄 모르셨던 어머니가 나중에 아시고는 전시는 잘 열었는지 궁금해 하셨다고 한다. 이것을 보니 작가가 어머니께 드린 미술용품이 영양제보다 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머니께는 그림을 통해 기억하는 방법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성북동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오래된 사진 속 미소같이라는 말로 어머니의 행복을 비는 작가에게도 이제는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은 <성북동>으로 예쁘게 매듭지어 마음 한편에 자리할 것이다. [ ] 

 

 

 

 

 

정다운

 

전시: 성북동 hometown

기간: 2019.12.11 - 2019.12.21

작가: 김금자, 범진용

장소: 공간 듬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