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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기이한 뒤집기, 카니발레스크의 실천

by 동무비평 삼사 2020. 12. 18.

 

지난 10년 동안 치열하게 작업해 왔으나 다 년간 발표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던 백인태가 개인전 고라니(2019.10.10~31 갤러리 옹노)을 가졌다. 전시가 정조준하고 있는 문제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존재가 처한 다면적 상황이다. 물화된 세계에서 부정되는 존재, 특히 인간 개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은 동시대 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다뤄지는 예술적 관심사이다. 다만 주목할 만 한 점은 부조리한 사회, 멸종 위기에 놓인 존재의 현실에 접근하는 백인태 작업의 인식과 태도가 지닌 특수성이다.

백인태 작업은 훼손된 인간의 이목구비나 정신 질환적 징후 없이, 심각하게 변형되거나 과도하게 축소된 인체의 제시 없이 뒤틀린 세계와 위태로운 존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백인태 작업은 파블로 엘겔라가 사회참여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탈숙련화를 설명하며 언급하고 있는 예술 아카데미의 잔존물들없이, ‘바우하우스의 유산없이 기형적 상황 앞에 놓인 존재의 자화상을 구체화해 낸다. 이처럼 백인태 작업은 고답적 예술의 프레임 밖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외로움과 불안, 분노와 허기를 생산해 낸 낱낱의 에피소드들 너머를 주목하게 한다. 소유의 논리로 점철된 부조리한 세계의 내면과 이면을 넓고, 깊게 응시케 한다.

 

몽상과 계획, 성취와 좌절, 전진과 후퇴, 참과 거짓, 자아와 타자 등. 백인태는 긴장과 무기력의 경계에 놓여있는 비정상적 사회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다중적 요소를 대립 개념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 · 현재 · 미래, 가능한 것 · 개연적인 것 · 불가능한 것, 지식 · 정보 · 조작 등과 같은 차이 나는 개념들을 언제든 새로운 의미 생성이 가능한 관계 항으로 활용한다. 욕구와 욕망, 수면 상태와 깨어 있음. 일과 휴식 등 위계적 개념을 상호작용의 리듬처럼 연결시키며 백인태 작업은 사회적 합의의 기준으로 존중되어 온 상식과 규범에 도발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다층적이며 교차적 레이어를 적극 활용하는 백인태 작업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이 카니발적 세계 감각을 설명하며 언급한 뒤집어 입은 옷, 머리에 쓴 바지, 그릇으로 사용되는 모자, 무기로 사용되는 가구처럼 위와 아래, 앞과 뒤의 위치 변경과 함께 끊임없이 논리를 바꾸어 나간다. 의복과 가구, 식기와 무기에 관한 상식적 효용을 재고할 것을 요청하는 백인태 작업은 의미의 생성 가능성을 무한하게 열려있으나 확정은 지연시킨다. 이 과정에서 백인태의 진짜배기 아티스트처럼 모순적 현실이 부추기는 눈부신 성공과 커다란 명성, 영원한 행복과 안정된 미래 같은 가치와 지향을 유머와 조롱, 풍자와 자조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뒤섞인 백인태 기이함(eccentricity)의 작업은 자본에 조련된 추상화된 세계가 강요해 온 착취와 기만에 존재가 저항하기 위한 전복적 유희이다. 자기 착취를 강요하는 시대가 과잉 현재로 슬쩍 바꿔치기해 바닥난 현존을 찾기 위한 카니발레스크(carnivalesque)의 실천이다. [ ] 

 

전유

 

 

전시: 고라니

기간: 2019.10.10. - 2019.10.31

장소: 갤러리 옹노

작가: 백인태

참고: 2019년 인천문화재단 인천형예술인지원사업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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