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인천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나투라 나투란스 오픈랩' 의 일환으로 지난 12월 17일 강연과 토론을 포함한 소규모의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다. ‘나투라 나투란스’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소산자연(natura naturata)'과 '능산자연(natura naturans)' 개념에서 따온 말로, 여기에서는 내가 2017년부터 진행한 정원과 분재, 수석을 모티브로 자연과 인간, 기술과 예술 사이 상호관계와 시적 욕망을 탐구하고자 하는 일련의 작업 프로세스를 지칭하는, 프로젝트의 제목이다. 인간/자연 이분법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바이오아트, 포스트휴먼 등의 주제들,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비슷한 시기 목격하게 된 예술에서의 윤리적 갈등 등으로까지 연결되는 문제의식에서 본 작업은 시작되었다.
시작점이 그러했듯이, 작업이 때로는 설치작품의 형태를 가질 지라도 전시의 형태로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학제적 방식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이 예술의 장에서 유효한 담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리서치와 실험 과정을 일부 오픈하여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기획한 것이 ‘나투라 나투란스 오픈랩’이다. 여기에는 인공수석 디자인과 공유, 유사-식물번역기 만들기, 자연-도시를 시간적으로 조감(鳥瞰)하는 VR, 라운드테이블이 포함되는데, 특히 이번 노트를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라운드테이블은 프로젝트의 담론적 배경을 조망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지원으로 이루어진 1년간 전체 활동에 대한 재단의 평가에 참고가 되는 자리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인공수석 샘플 및 영상작업 등이 놓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해당 이슈의 다양한 사안을 강연을 통해 소개하고 토론하는 것을 통해 담론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던 것이 일차적 목표이기도 했다.
17일 ‘인천아카이브까페 빙고’에서 열린 본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강연자를 포함하여 총 12명의 참여자들이 (비)인간, 포스트휴먼, 바이오아트, 미술에서의 재현의 윤리 등의 주제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는데, 예약제로 진행하고 참가인원을 제한한 덕분에 소규모의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듯 하다. 먼저 기획자인 본인은 소개를 겸하여 첫번째 발제를 맡아 ‘재현과 개입, 상상과 표현 사이에서’란 주제로 사회적(또는 ‘사회-내’)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윤리적 선택의 문제, 그리고 혐오기제와 예술이라는 장치가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이중구조를 간략히 다루었다.
대상을 어떻게 재현, 또는 표현할 것인가는 미술에 있어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주요한 문제였으며, 잠시 실재와 멀어진 듯했던 미술이지만 소셜아트, 커뮤니티아트 등이 대두하면서 다시 실재와 그 재현의 문제, 더 나아가 개입의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사고틀의 전환을 요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러한 문제가 우리 삶과 예술을 보다 첨예하게 만들 수 있을 터인데, 오히려 이러한 고민들을 예술의 반대급부 내지는 타파해야 할 억압 기제로만 보며 눈을 감아버리는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낀 것이 라운드테이블을 마련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윤리적 선택의 문제는 실제 생물을 전시하는 경우나 바이오아트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이소요 작가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이소요 작가는 인체표본을 기증받아 관리하는 기관에서 일을 하며 경험한 부조리한 상황들, 특히 특정 인체표본을 실제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촬영하고는 ‘아기천사’라 이름붙인 사진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실제로는 해당 개념이 제대로 적용되지는 않는 경우에도 ‘보이고 싶은 바’대로 보여지도록 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조작하는 행위, 식물이 포함된 작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작품 돌봄’의 개념 등, 다양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어 최유미 이론가의 강연을 통해서는 여성주의 과학철학자 다나 해러웨이가 말하는 ‘심포이에시스’, 즉 바라보는 주체와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함께 발생하는 총체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한 '심포이에시스'로서의 예술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연을 바탕으로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가 수반되는 예술활동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들을 비인간 존재에까지 확장하여 적용해볼 수 있었는데,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그러한 시각으로 볼 때 백남준의 작업을 비롯하여 새롭게 보이는 예술 현장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TV정원’이나 ‘TV물고기’와 같은 작업은 ‘기술’, 또는 ‘인공’을 대변하는 미디어(TV)와 그 반대급부로서 여겨지는 자연을 한 공간에 들여와 어우러지도록 만든 것인데, 거기에서 미디어와 자연은 오로지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된 것일 뿐 실질적으로 관계맺기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다분히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개념구현이나 논리증명으로는 담을 수 없는 구체적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 존재의 위협이 '객관'과 '중립', ‘조화’, ‘평화’, ‘사랑’, ‘아름다움’ 등 다양한 추상언어로 인해 무화되는 사례들을 목격하고는 하는데, 그러한 면에서 우리가 이야기 나누었던 입장론과 생명윤리, 예술활동과 자유 사이에서의 논의들은 다분히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것이 될 수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이러한 시각을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트랩,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시각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벽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론으로 토론이 마무리되는 듯도 했지만, 이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 역시 필요함을 느끼며 아쉽게 자리를 정리하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통념적 이해와 '나투라 나투란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이번에는 나누지 못한 채 마감해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며 다음 기획을 고민해본다. 통상적 윤리의식과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실험이 살인과 카니발리즘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때, 왜 그것이 자살의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가? 또는 자살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그 실험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예술은 윤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을까? 그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가? [ ]
진나래
행사: 나투라 나투란스 오픈랩
일시: 2018.12.17(월) 오후 3시
장소: 인천 아카이브까페 빙고
*프로그램
15:00 - 16:30 프로젝트 소개 및 발제
| 재현과 개입, 상상과 표현 사이에서 (진나래, 작가)
| 미술을 위한 생물 전시: 기술과 윤리 문제들 (이소요, 작가)
| 심포이에시스의 예술활동 (최유미, 이론물리화학)
16:30 - 17:30 토론
| 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과학과 예술
| '자연'에 대한 통념적 이해와 '나투라 나투란스'
포스터 VR드로잉 : 김현철(카멜레온)
후원: 인천광역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재)인천문화재단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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