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장소에 엉뚱하게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일이며 또한 본래의 가치에 판타지를 덧입혀주는 일이니까요. 예를 들어 고양이가 방문 위의 모서리에 올라가 있을 때 그 귀여움이 도드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어떠한 공간도 그렇습니다.
‘아니, 여기, 이런 게, 어떻게, 굳이?’ 라는 반응을 좋아하는 것은 제가 어딘가 꼬인 사람이라 일까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흐흐, 하고 좋아하는 음흉한 사람인 것입니다. 허를 찔렀군, 하고 우쭐대는 마음이 조금 섞여있을지도 몰라요.
아 참, 저를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저는 인천의 부평에 ‘북극서점’이라는 자그만 독립서점의 운영자 슬로보트입니다. 전직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매일 지각하며 아이들 눈치를 보는 것이 힘들어 출근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책방을 열었어요. 물론 그래도 매일 지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아 눈치 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나름 정규 1집 가수이고 인천 아트북페어를 주관하는 문화 기획자입니다. 가끔 글을 써서 책도 냅니다. 쓰고 보니 굉장히 산만해 보이는데 바로 보셨습니다. 사람을 참 잘 보시네요.
북극서점 옆에는 작은 갤러리 북극홀이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성불사 철학관’이라는 곳이었는데 아주머니는 점집이 아니라 철학하는 곳이라고 종종 강조하셨습니다. 성불사 철학관이 말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충동적으로 만든 갤러리가 '북극홀'입니다.
믿기지 않게도 성불사 철학관 자리에 탄생한 북극홀의 원형은 2007년 런던의 브릭레인에 있습니다. 여행 중 조그만 방 같은 갤러리에 들어갔는데 세 명의 젊은 작가들이 전시를 열고 있었어요. 회화 같기도, 만화 같기도 한 오묘한 지점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전시하고 작은 책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독립출판물’이라는 것을 안 것은 조금 후의 일. 이렇게 작은 곳도 갤러리가 될 수 있고 오히려 더 재미있는 지점이 있구나, 라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즈음 북극서점에는 여럿이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했고 벽면에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를 할 수 있다면 제 덕질도 할 수 있고 참 훌륭할 것 같았습니다. 해서 처음으로 모신 작가님은 지금도, 그 당시에도 최고의 고양이 책이라고 생각하는 이새벽 작가님의 ‘고양이 그림일기’ 원화전입니다. 작가님께도 첫 개인전이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미가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강원도 원주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우편으로 원화를 받아 저희가 마련한 액자에 직접 끼우고 포트폴리오 북을 엮어 전시회를 꾸며드렸습니다. 이후로는 그 구성 그대로 다른 책방들에 순회 전시가 시작되었지요.
현재 북극홀은 그 때 그 때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초대 전시로 대관료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방새미, 김성라, 오하루, ooo , 우드파크 픽쳐북스, 홍지혜, 국민지 작가님 등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감성에 쉽게 가닿을 수 있는 작가분들을 주로 초대했습니다. 2020년에 예정된 전시 또한 윤의진, 나노, 휘리 작가님으로 역시 독립출판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시고 두터운 팬층을 가진 멋진 분들이십니다. 초대전시 뿐만 아니라 공모전시를 기획하여 <7인사이드>, <5계절>, <3퀘스천스> 등 응모작 중 저희 서점과 결이 맞는 분들을 선정하여 단체전을 열기도 합니다. 전시를 통해 저희 서점과도 반가운 이웃이 되시지만 어울리는 아티스트들끼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북극홀은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도 관람할 수 있는 편안한 미술관이며, 서점과 어울린다면 누구의 어떤 제안도 다음날 즉시 실현 가능한 열린 공간입니다. 엉뚱한 마켓을 열 수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을 할 수도, 나의 작은 재능을 여러 사람과 나누는 클래스를 열 수도 있습니다. 조그만 미술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기획들이 물리적으로 작은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곳이라도 그곳의 공기가 좀 더 부드럽고 자유로울 때, 더 많은 조그만 것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평소에 누군가가 마음껏 놀고 있어야 하고요.
앞으로도 취향이 분명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북극홀을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을 발화점으로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우선 제가 그러한 살롱 문화를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름에 ‘홀’이라는 글자를 붙인 이유입니다. 관람객과 인터렉티브한 관계를 이어가며 평범한 사람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습니다. [ ]
북극서점 슬로보트(순사장)
장소 : 북극서점(인천광역시 부평구 장제로 221번길 27, 2층)
* 본 노트는 2019년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ᄃᆞ소니 흐놀다 (0) | 2021.01.10 |
---|---|
함께 그림 그리실래요? (0) | 2021.01.03 |
인천수첩, 인천사람, 인천 풍경 (0) | 2020.12.27 |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왜 전시를 기획하고 선보이는가 (0) | 2020.12.20 |
Twilight Zone - 중간지대 (0) | 2020.1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