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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옹노4

풀잎들 그건 평소보다 흥겹고 들뜬 분위기의 광장무였다. 광장에 걸린 그녀의 그림 주위로 붉고 푸른 조명이 비치자 하나둘 춤을 추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통제 불가능한 춤바람, 도무지 멈추어지지 않는 몸짓들 속에서 그녀는 스산한 온기를 느낀다. 간격을 두고 기댄 듯, 포개어진 듯, 휘청이는 듯, 휩쓸리는 듯, 흔들리는 사람들. 그것은 함께 있다고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서로에게 기대는 몸짓이자,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을 예비하는 느린 몸짓이었다.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 여름에서 겨울까지 중국 충칭의 황저우핑 지역에 머물게 된 이경희 작가는 이미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던 깊은 외로움과 단절의 시간을 마.. 2021. 2. 21.
퍼포먼스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12월 겨울의 추위에 쫓겨 종종걸음을 치며 오랜만에 갤러리 옹노를 찾았다. 갤러리 옹노의 입구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비밀의 승강장을 연상케 한다. 이미 몇 번 와본 적이 있음에도 여기 골목이었나 저기 골목이었나 자꾸만 멈칫거리게 된다. 골목을 꺾고 꺾어 전시장 입구에 도착했더니 애석하게도 굳게 닫혀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전시장에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운 와중에 포스터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 연결을 했고, 전해오는 한마디. “안 잠겨있으니 들어가시면 돼요.” 이렇게 나름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전시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오래된 건축물 ‘갤러리 옹노’만의 매력 있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입구 오른편 깊게 들어간 좁은 통로 끝에 컴퓨터 한 대와 음향기기가 설치되어 있.. 2021. 2. 7.
폐허 속 사물이 이야기하는 것  인천 ‘옹노(擁老)’에서 열린 오석근 작가의 쇼케이스 ‘인천’은, 근작인 ‘인천’을 찍은 시리즈 외에도 그의 지난 작업들 일부와 그에 대한 비평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중 16장의 ‘인천’ 시리즈만을 초점화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의 연작에서, 포스터에도 나온, 보랏빛의 폐허로 남은 산업 현장과 그 뒤로 신기루처럼 서 있는 번쩍거리는 아파트를 함께 찍은 사진을 제하면, 대부분의 사진은 미시적이고 해부학적 시선으로 인천의 재개발 현장의 버려진 사물들과 건물 일부분들, 바닥의 표면들과 같이 사물의 특정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세로가 월등히 긴 프레임의 사진은 표면의 절단 효과를 강조하는데, 세계의 표면을 위로 세워 불안정한 시선의 안착을 형성하거나 빗장을 완전히 열지 않은 듯한 폐쇄된 공간감을 불러일으.. 2021. 1. 10.
기이한 뒤집기, 카니발레스크의 실천 지난 10년 동안 치열하게 작업해 왔으나 다 년간 발표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던 백인태가 개인전 《고라니》展(2019.10.10~31 갤러리 옹노)을 가졌다. 전시가 정조준하고 있는 문제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존재가 처한 다면적 상황이다. 물화된 세계에서 부정되는 존재, 특히 인간 개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은 동시대 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다뤄지는 예술적 관심사이다. 다만 주목할 만 한 점은 부조리한 사회, 멸종 위기에 놓인 존재의 현실에 접근하는 백인태 작업의 인식과 태도가 지닌 특수성이다. 백인태 작업은 훼손된 인간의 이목구비나 정신 질환적 징후 없이, 심각하게 변형되거나 과도하게 축소된 인체의 제시 없이 뒤틀린 세계와 위태로운 존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백인태 작업은 파블로 엘겔라가 『사회참여예술이란 무..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