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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낱낱의 언어, 각자의 공동체를 찾아서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31.

되다 만 듯한인테리어가 유행인 시대다. 공사 중인 것 같은데 영업하고 있는 카페라고 해서 놀란 적도 많다. 이게 다 인스타 갬성이라니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에 벅찬 요즘, 빈 집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는 전시 소식을 듣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대학가 먹자골목에서 딱 한 뼘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주택 2, 전시장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감나무의 감이 무르익고 있는 가을 기운이 가득한 집, 아니 전시장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공간이 얼마나 빨리 황폐화되는지,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사람이 산 지 제법 시간이 지나보이는 대학가 근처 평범한 주택은 잠시나마 작품들의 온기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빈집을 주제로 미술활동을 하는 정미타 작가 등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작가들마다 회화, 영상, 설치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이 전시의 포인트는 무엇보다 공간, 그러니까 빈 집 그 자체다. 이 작품들이 빈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었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테니 장소성에 빚지고 있는 전시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공간이 전부는 아니다.

기획자인 정미타는 이 전시의 본질이 공동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이야기라고 썼다. “사회라는 거대공동체 구조 안에서 그것을 부정하지 않은 채 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는 기획자의 말대로, 실제 작가들은 개인만을 위한 공동체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원호의 소환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다. 그림이 현실에 존재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기록하는 이 작업은 다양한 참여자가 보고 싶어 하는 대상을 그림으로 그린 후, 그것을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베게, 이불, 신발 등으로 변형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커다란 베개인형으로 현실에 변형된 후 자식들의 집을 순례한다. 자식들은 색소폰을 부는가 하면 어머니를 각자의 방식으로 회상한다. 보고 싶은 누군가를 이불로 만들어서 덮고 자고, 죽부인처럼 베개로 만들어서 자기 옆에 놓고 셀카를 찍는가하면, 가방으로 만들어 매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전시장 한 켠에서 이 모든 활동들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하게 느껴졌던 빈 집의 한기가 느껴지고야 만다. 티비 위에 설치된 가족사진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감나무가 누군가의 방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 현실감을 주다가도, 초록색 바닥을 인지하는 순간 전시장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서늘함처럼.

 

이 서늘함을 더해 주는 것은 이와정 작가의 <기원의 파장><바닥의 기원>이다. 흡사 무당 집을 연상케하는 요란한 장식들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원체조 영상의 소리가 빈 집 안에 괴괴히 울려 퍼진다. “샤머니즘이 예술의 영역에서 또 다른 쓰임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퍼포먼스를 통해 탐구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성주굿을 하는 무당의 몸짓을 체조로 재해석했다는 기원체조는 증식되었다가 합쳐지는 퍼포머의 영상과 함께 관객들에게 기원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듯 하다. 작가들이 만들어낸 사적인 공동체들의 영속적 안녕을 기원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금색이 주를 이루는 셀로판지가 사방 벽에 둘러져 있는 방 앞에 서서 무한 반복되는 것 같은 영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약간 멍해지기까지 하는데 그 느낌이 낯설면서도 신기해 영상을 끝까지 보게 되는 힘이 있다.

 

안다혜의 작품은 가족생태도라는 작품명처럼 가족주의와 가부장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방 안과 밖을 아슬아슬하게 연결하고 있는 종이들은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연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게 내리치는 외부의 힘 한 번이면 단번에 끊어질 수도 있는 허약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있는 혐오, 거절, 부채감, 따뜻함, 편안함, 감사 등의 상반된 단어들이 적힌 종이가 바로 그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흔히 집에서 많이 쓰는 3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나무 옷걸이가 붙어 있는 벽에 설치된 아슬아슬한종이 작품들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가족의 연 같으면서도 너무 친숙한 일상이어서 떼어내기 힘든, 그 무엇처럼 느껴진다. 이어진 종이의 끈 중에서 어떤 단어를 마음에 담을지는 관람객의 몫이다. 안다혜 작가의 말처럼 과거의 연결이 지속될지 보장할 수 없는 미래, 공평하게 주고받을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일들사이에서 이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각자의 공동체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

 

허밍버드

 

 

전시: 낱낱의 언어 Group Exhibition :: Various

기간: 2019.10.18 - 2019.10.29

작가: 김현호, 박준석, 안다혜, 이와정, 이한슬

장소: 어느빈집.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181-3, 2F

기획: 정미타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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