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부평아트센터에서 진행한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 전시의 지킴이와 도슨트로 일했다. 전시 지킴이는 전에도 해보았지만 도슨트로 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술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시가 진행되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재미있어졌다. 내 미술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거리 출신 ‘길냥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고양이 동영상이라면 거의 다 섭렵해 왔던 터였다, 마침 전시를 위해 열린 ‘나비날다 책방’ 팝업 스토어에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빠짐없이 찾아 읽으면서 전시 설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전시 지킴이를 하는 동안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5월 가정의 달에 진행된 전시다 보니 평일과 달리 주말이나 공휴일마다 아이들이 말 그대로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행사가 있거나 공연이 있을 때마다 갤러리 꽃누리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전시장 내를 우다다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나비날다 책방의 책들을 모조리 흩뜨려 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큰 소리를 내어 저지할 수도 없고, 한 명 한 명 따라다니며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단체 관람을 온 학생 친구들이 내 전시 설명을 집중하며 들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뿌듯해 가슴 벅차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의 전시 지킴이를 하면서 나는 이 갤러리의 분위기에 항상 설렜고 전시기획자라는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 전시는 총 5분의 국내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시 초입은 임선이 작가의 과 <그들만의 세상을 기념하며,>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들만의 세상을 기념하며,>는 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2마리가 전시장을 걷는 듯한 작품이었는데 나의 흥미를 많이 끌었던 작품 중의 하나였다. 이 작품은 갤러리 꽃누리의 입장문 바로 앞에 있다 보니 전시장 내부에서 가장 밝은 곳에 있었는데 ‘길고양이가 어둡고 음습하다’라는 어딘가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고 빛을 받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들을 따라 고양이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듯한 느낌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리라고 생각한다.
시골 고양이들의 명랑한 사진을 담은 이용한 작가의 작품은 내 마음을 사르르 녹게 했다. 성묘들의 발랄하고 호기심 많은 사진 작품들을 시작으로 아깽이(새끼 고양이를 부르는 별명)들의 사진들이 이어졌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사진을 본 관람객들은 환호를 보냈다. 어딘가 차가우면서도 도도한 모습보다 고양이들이 사진작가를 신뢰하는 만큼 보여주었던 발랄함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녹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불교의 만다라를 보는 듯한 강혜숙 작가의 도시 고양이들, 성유진 작가의 인간 고양이도 인상적이었다. 인간 고양이는 선을 하나하나 그린 작품이어서 가까이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이 가장 달랐던 작품이기도 했다. 송진수 작가의 철사 설치 작품들은 흰 벽에 배치되어 철사의 선들이 하얀 도화지에 드로잉을 해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는 인천에 살면서 문화기획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역에서 열리는 전시를 모두 챙겨 보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와 과제에 허우적대다 보니 여유를 부릴 새가 없었다. 물론 인천의 어디에서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시공간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동인천 주변에 얼마나 많은 대안 공간과 갤러리들이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문화기획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 자신이 인천 지역에서의 전시에 많은 관심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인천 지역에 어떤 미술 관련 공간들이 있는지조차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서울의 유명 블록버스터 전시나 대형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만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부평아트센터에서 일한 덕분에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가 지역을 만난 느낌이다. 나처럼 관심은 있지만,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는 대학생들이 아직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평아트센터라는 문화 공간이 지역에 생겼기에 내가 고양이를 만나고, 지역의 문화 생태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문화기획에 관심이 있는 인천의 청년들도 나와 같은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길 바란다. [ ]
미뇽
전시: 너에게 가는 길은 말랑말랑
기간: 2019.05.02 - 2019.06.09
작가: 임선이, 이용한, 강혜숙, 성유진, 송진수, 책방 나비날다
장소: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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