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경동 싸리재 길에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창고를 개조하거나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 갤러리, 문화공간이 늘어나면서 문화 관광지로 뜨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재생, 가치 재창조의 이름 아래 원도심이 조명을 받으면서 특히, 중‧동구에 쏠리는 관심이 대단하다.
마을이 점점 카페 거리로 변해가면서 사람이 몰리니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쉽게 소비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종이컵들이다. 플라스틱 컵들이 계단과 동네 곳곳에 버려지고 있는데, 사실 해양쓰레기로 바다 섬을 만들어내는 주범 역시 이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들이 대부분이다.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일회용 쓰레기에 관심을 쏟던 차에 마침 관련 전시가 배다리 인천문화양조장에서 열리고 있어 찬찬히 살펴봤다. 인천문화양조장은 대안미술공간이었던 ‘스페이스 빔’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최근 새롭게 바뀐 이름이다.
처음 전시를 접했을 때 ‘우리가 사는 도시 인천에 대한 매우 일상적이고 예술적인 제스쳐, ‘페트(PET): 실행 가능한 환경 영향 기업 연구’ 라는 다소 긴 전시 제목에 의아했다. (이하 ‘페트’로 표기) 제목에 전시의 내용을 모두 담기 위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사실 어렵게 느껴지는 제목이었다. 전시를 주관한 엠에피(MAP)는 인천 지역에서 사진, 미술, 설치, 조각하는 다양한 작가들이 창작 협업을 위해 만든 플랫폼으로 전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집단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쓰레기 중 를 주제로 MAP에서 활동하고 있는 9명의 예술가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재활용, 리사이클의 방식으로 일상을 예술로 풀어낸 전시라고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작가들의 리사이클(재활용) 전시라고 보면 되겠다. 무엇보다 작가들의 작품에 사용한 재활용 재료들과 설치 작품들이 옛 양조장 건물을 그대로 살려 쓴 전시공간과 잘 어우러져 전시 의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전시 입구에 설치된 범고래 형상을 따서 만든 임양천 작가의 스트링아트는 우리 일상에서 손쉽게 쓰고 버리는 검정 비닐봉투와 흰 비닐봉투를 늘려 실처럼 엮어서 만든 작품으로 바다에서 인간이 버린 수많은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어간 고래를 떠올리게 했다.
중구 쪽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약품 폐기물을 모아서 해체와 분류를 통해 작품으로 표현해낸 고정남 사진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버려진 플라스틱 약병에서 현대인의 삶의 해체, 정신의 피폐함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쌀 포대의 보풀, 알루미늄 캔 뚜껑, 플라스틱 막걸리병, 과자 봉투, 시디 상자 등 일상에서 나오는 다양한 폐기물은 물론, 재활용할 소재들을 찾아내는 한편, 작가가 작품을 통해 도시와 환경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어 한 전시였다.
문득, 인천 지역을 함께 조사한 전시를 보면서 일부 설치 작품들은 실내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한번 야외 전시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다리에 공유지로 남아 있는 공간인 산업도로부지의 풀밭에서 전시를 하면 더 많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에 한 번 더 관심을 갖게 될 것 같기도 했다. 전시 기획자인 이호진 작가에게 제안해 보았는데 흔쾌히 수락, 한 주 더 연장해 배다리 마을에서 야외 전시가 펼쳐지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인천문화양조장의 전시도 잘 어울렸지만 자연 속에서 펼쳐진 설치 전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그냥 버리면 쓰레기인데, 작가가 예술로 접근하여 작품으로 표현하니 ‘우리가 사는 도시 인천에 대한 매우 일상적이고 예술적인 제스처’ 라는 다소 길고 난해한 전시 제목도 잘 이해되는 것 같다. 시민들과 환경 문제를 주제로 소통하기 위해 전시를 시작했지만, 참여 작가들 또한, 이번 작업을 통해 환경에 관한 관심과 연구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다. 카페가 늘어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좋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없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일회용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시를 흥미롭게 지켜본 동네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회용 쓰레기들이 예술작품으로까지 거듭나기 전에 버려지지 않고 제대로 재활용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생태마을을 표방하고 있는 배다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
청산별곡
전시: 페트(PET): 실행 가능한 환경영향 기법 연구 Performative Environmental impact Technique
기간: 2019.10.01. - 2019.10.10
연장전시 : 2019.10.11 – 2019.10.15 (인천문화양조장 연장전시)
특별전시 : 2019.10.19 – 2019.10.20(배다리 생태공원)
작가: 고경남, 오철민, 임양천, 최열, 박준석, 코디3, 권보미, 권동주, 이호진
장소: 인천문화양조장 1층 우각홀 (인천광역시 동구 서해대로513번길 15)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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