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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입니까?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31.

 

서울 서교동에서 인천 교동도를 중심으로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공간 을 운영하고 있는 윤대희가 기획하였고, 고등어, 김수환, 박주연, 범진용, 손승범, 윤대희가 작가로 참여하였다. 강화를 기반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기획하는 협동조합 청풍의 제안으로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참여작가들은 교동도 리서치 투어를 진행하고 실향민의 자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사전 활동을 진행하였다. 교동도는 강화의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한과의 거리가 2~3km에 불과한 남북 접경지다. 교동도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자면,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망향대가 있고 실향민이 터를 잡은 마을이자, 민간인 출입통제구역과 군사지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곳은 지리학적으로 분단과 통일, 전쟁과 평화가 연상되는 상징적 지역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시 의도는 교동도가 상징하는 남북 분단 및 정치사회학적 맥락 안에서의 평화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전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획일적인 평화에 대한 이미지를 걷어내고, 다양한 의미와 다양한 해석, 다양한 접근을 하고자 제안한다.

 

전시는 결국 참여작가, 그리고 관객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입니까? 평화란 무엇이기 이전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김수환은 인간에게 평화는 없다고 단정한다. 아우성치는 현생을 흡사 지옥도처럼 그린 그의 작업을 보면 정말로 평화란 존재할 것 같지가 않다. 그런가하면 헐벗은 위기의 남자가 서 있는 외로운 풍경은 평화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연 평화란 것이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고등어의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그의 작업에는 차가 줄지어 가고 있는 도로 위 중앙선 위에 위태롭게 우두커니 서 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작가에 의하면 이 여성은 장소를 잃어버린 채 다음의 장소를 향해 서 있다고 기술한다. 작가는 이 여성의 신체를 위한 평화가 존재할 수 있을지, 평화를 위한 장소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여성에게 다음으로 갈 곳은 없거나, 있다 해도 또 다른 위태로운 곳으로 보인다.

 

윤대희의 작업에는 강화도에서 마주친 동상들의 풍경, 혹은 바다 위 부표들이 떠있는 풍경이 담겨 있다. 원거리 시점의 장면이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동상인지 식별할 수는 없지만 자연의 풍경 속에서 동상은 고고하게 서 있다. 동상의 인물은 종교인물이라면 내적 평화로 이끌어줄 숭배의 대상이고, 역사 속 인물이라면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온 영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 동상은 이런 기념비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만든 불안의 이미지일 뿐이다. 사람들의 주변을 항상 맴도는 불안을 물리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이미지를 그려나간다.

 

범진용의 작업에는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이 시간순에 따라 연속적으로 나온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로 인해 가족들의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어릴적 어머니와의 일상과 관계를 회상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가족의 관계는 굳건한 불변 상태의 것이 아니며, 언제나 변화가능하며 불안의 요소 또한 상존한다. 우리는 또 이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처럼 평화와 안정 또한 지속될 수 있는 속성의 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에 항상 반응한다.

 

박주연과 손승범은 남북의 분단과 평화에 대한 경험의 실체를 의심한다. 박주연은 일반적인 도시풍경과, 그 풍경과는 무관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흘러나오는 음성은 북한에 대해 인터뷰하는 내용인데, 대체로 북한을 경험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영상과 음성은 서로 무심하게 떠다니다 연결성 없이 사라진다.

 

손승범은 전시장 곳곳에 교동도의 전망대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눈을 렌즈에 갖다 대면 교동도의 전망대의 렌즈에서 볼 수 있는 북녘 땅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간 우리가 접해 온 북한은 망원경의 렌즈와 미디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음을 인지하게 되고, 과연 우리는 진부한 구호가 아닌 분단과 통일, 평화란 것의 실체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각각의 작가들이 보여준 n개의 평화은 기획 의도에서 밝힌 것처럼 확장된 형태의 평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 전시는 물론이고 기획 의도에서도 강화 및 교동도라는 지리적 출발점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전시가 교동도의 지리적 특징에서 출발하거나 최소한 교동도가 시사하는 평화의 이미지를 참조함으로써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교동도에서 평화라는 이슈를 던지면 자동적으로 남북 분단과 통일을 떠올린다. 반성적 기제 없는 구태의연한 사유의 경로에 갇혀 그 외부의 평화를 상상할 수 없는 지리적 특수성은 오히려 이번 전시의 의도와 태도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시는 기존의 공적 영역과 문화권력이 외치는 평화라는 것에 대한 공백과 무감각을 드러낸다. 획일적인 평화에 대한 무관심, 클리셰로 반복되는 평화에 대한 실효없음을 드러내며, 나에게 평화란 무엇인지 실체를 찾기 위한 질문과 그 질문을 생성시키는 위치선정을 위한 몸짓으로 반응케 한다. [ ] 

 

이정은

 

 

전시: 00의 장소: Peace in Our Time

기간: 2019.11.19 - 11.30

작가: 고등어, 김수환, 박주연, 범진용, 손승범, 윤대희

장소: 예술공간+의식주

기획: 윤대희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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