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기계장치와 그것이 내뿜는 소리는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그 의미를 선뜻 알아챌 수 없는 <회색입자>라는 낯선 제목처럼. 용도가 분명치 않은 알루미늄 소재의 패널 두 장이 하나의 쌍을 이루고 있고, 각 패널에서는 기계음이 나온다. 모두 동일해 보이는 패널은 프레임이 같을 뿐, 자세히 보면 프레임 내부의 표면은 모두 다른 소재로 되어 있다. 슬레이트 지붕, 염색을 한 천, 철망 등의 소재로 되어 있고, 각각의 패널에서는 메트로놈 소리, 전파 망원경 소리, 시계의 초침 소리, 라디오 주파수 소리 등 각기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미세한 차이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이 작업의 출발이 된 참조점에 다가가기 쉽지 않다. 그는 ‘물리적인 공간의 단절과 그 벌어진 간격을 연결하는 시간적 연속성’을 이야기한다고 이번 전시를 소개한다. 작가는 강화도에 거주하고 여러 곳의 섬을 오가면서 섬의 지리와 그 감각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번 작업에 담고자 하였다. 앞서 설명한 패널과 소리로 된 작업 <지평 시차>(2019)는 육지와는 떨어져 있는 섬들의 물리적인 거리, 단절과 고립이라는 섬의 속성과 그로 인한 섬들의 연결 방식과 그 감각이 담겨 있다. 그러고 보면 섬의 연결 방식은 신호와 주파수에 의하고 섬의 위치와 그곳으로의 이동은 위성지도 상의 측위시스템에 의지한다. 작가 전해주는 자신만의 미디어와 재현술을 가지고 있다. 슬레이트, 염색천, 철망 등 아날로그적 재료와, 그리고 소리와 주파수, 신호라는 비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단순하고 차가워 보이는 이 장치는 섬과 관련한 많은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슬레이트 지붕이 남아 있는 외딴 섬 마을, 천을 염색하는 데 사용한 갯벌의 풍경, 철망이 있는 군사지역과 통제구역의 이미지가 살아난다.
이번에 전시된 또 다른 작업 <흩어지는 경로>는 영상과 설치를 결합하였다. 섬을 오가는 배에서의 바다 풍경, 갈매기가 나는 풍경, 파도에 쓸려온 잔해들이 있는 해안가 등 섬의 풍경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영상들이 재생되면서 파도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 영상 앞으로는 마른 꽃들이 설치되어 있다. 마른 꽃에 갯벌의 진흙을 입혀 굳혀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드리운 그림자는 이 공간에 쓸쓸함과 황량한 느낌을 준다.
영상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법한 보통의 섬 풍경이 등장하는 가운데, 호기심을 일으키는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이 등장한다. 안테나 형태를 한 이 구조물은 제주에 위치한 전파망원경이라고 한다. 전파망원경은 우리가 보통 아는 가시광선 영역을 이용하는 광학 망원경과는 달리 전파 영역을 이용하여 관측하는 망원경이다. 우주 공간의 천체로부터 방출되는 전파를 수신하는 장치로, 세계 여러 곳에 위치한 여러 개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하여 블랙홀을 관측했다고 한다. 머나먼 우주에 있는 대상을 알려고 하는 이 장치를 통해 작가는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의 단절된 공간성, 연결과 확장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전혜주는 이번 전시에서 강화도에 거주 경험을 통해 섬이라는 공간에서 느낀 고립감, 그리고 단절과 연결의 감각을 자신만의 미디어로 재현하였다. 그의 미디어의 창안에는 재료의 물질성과 구체성이 포함되어 있다. 매끈한 미디어 작업의 이면에 아날로그적(?) 재료가 인지될 때, 그 만의 재현술과 감각처리법을 이해함과 동시에, 회색의 중성적 미디어 작업이 강화의 감각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
이정은
전시: 회색입자
기간: 2019.12.11. - 2019.12.29
작가 : 전혜주
장소: 플레이스막 인천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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