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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리와 이미지의 공간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17.

부평에서 서구로 이동하자 낯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공장에 고물상까지 모여있는 이런 지역에 전시장이 있긴 한 걸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고, 커다란 공장들과 아무도 없는 휴일, 공단 지역을 스쳐 지나가다가 드디어 도착한 코스모 40. 1968년 설립된 코스모화학 폐공장을 철거 직전 인수한 공동대표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꿔냈다고 한다. 기존 코스모화학의 45개 공장 건물 중 44곳은 철거됐고, 40번째 정제 시설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거대한 철문이 양쪽으로 갈라지자 퉁명스럽게 내밀었던 아이의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우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사실 아이는 삐쳐있었다. 엄마가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자신이 알던 그 카페가 아니었다. 철제 콘크리트 건물과 마주한 순간 아이는 속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1층에 들어서 엄마가 안내한 벽으로 다가가자 뭔가의 의식처럼 철문이 쩍 하고 벌어졌을 때 아이는 언제 실망했냐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엄마, 여기 뭐 하는 곳이야?” 전시공간이라고 짧게 알려준 엄마는, 엄마 역시 처음 와본 공간이라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 모른다며 함께 찾아보자고 할 수밖에 없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들른 곳은 <노라이브 No Live>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하 벙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조명이 켜지며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 이게 뭐지?’ 싶어 긴장했던 것은 잠시, 두 사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배수구 트렌치에 설치된, 처음과 끝을 분별하기 어려운 조명과 기계음이 공존하는 공간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영화에서 귀신이 나올 때 장면처럼 느껴져 무섭다고 했지만 나름 신기하고 재미있는 눈치다. 엄마는 조명이 꺼져있을 때 없다고 생각했던 배수구 트렌치가 조명이 켜짐에 따라 형태를 드러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눈길이 좀 더 개방된 곳으로 향한다. 바닥에 모니터와 헤드폰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와 엄마는 각자의 취향대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클럽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나올 법한 음악을 들을 땐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신이 난다. 헤드폰을 통해 쪼개졌다 합쳐지는 비트에 맞춰 벽면 프로젝션의 이미지도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고흐 그림이다.” 내가 아는 것이 드디어 나왔다 싶은 아이는 당당하게 프로젝션을 가리킨다. 아이가 고흐 그림이라고 한 작품은 사실 CLAUDE의 작품이다. CLAUDE는 주로 자연, 생명의 복합적인 구조와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오디오 비주얼 아티스트다. 아이가 찾은 작품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결코 아니었으나 아이는 고흐의 별이 움직인다라며 좋아한다. 엄마의 망막이라는 캔버스엔 작품을 보며 기뻐하는 딸아이가 가장 빛나는 별로 맺혀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중이다. CLAUDE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와 엄마에게 움직이는 고흐의 별로 기억되겠지. 결국 작품이란, 예술이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가 중요하게 남는 건 아닐까.

 

그때도 그랬었다. “엄마, 동그라미가 춤추는 것 같아, 엉덩이를 씰룩쌜룩~.” 엄마와 함께 <아동을 위한 명화집>을 넘기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본 아이가 말했다. 아이의 느낌처럼 칸딘스키는 천성적으로 음악을 들으면 즉흥적으로 시각화가 떠올랐다고 한다. 아이가 칸딘스키의 동그라미를 흉내 내는 공간에서 엄마의 눈에 딸아이는 가장 예쁜 동그라미였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이와 엄마에겐 춤추는 동그라미를 그린 재밌는 화가로 남았다.

 

기념비처럼 우뚝 서 있는 김태윤의 는 암실에서 홀로 화려하게 움직인다. 작가가 촬영했다는 영상과 수집한 소리는 온데간데없다. 개개인이 느끼는 시간의 의미 또한 상대에겐 절대적이지 않다. 아이는 소리에 따라 영상이 움직이는지 이미지의 표출에 따라 소리가 흐르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2층에는 <리플렉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리플렉타는 20명 안팎의 사진가들이 모인 커뮤니티로, ‘지금 현재’‘서울언더그라운드문화서브컬처의 감각적인 단면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사진으로 선보이고 있다. 아이의 이목을 끈 사진은 의 작품이었고, 엄마가 집중한 사진은 <이강혁>의 사진이었다. 일상에서 쉽게 보기 힘든 느낌의 사진들이었는데 공장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진 코스모40’ 공간과는 제법 잘 어울렸다. 전시장의 1층과 2, 3층의 바닥과 층고가 굉장히 다양해서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전혀 다른 구도의 공간이 등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시관을 나오며 엄마는 아이에게 풍선은 무엇으로 채워지는지물었다. 아이는 엄마가 쓸데없는 것을 묻는다 싶었는지 공기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엄마는 다시 묻는다.

 

방금 이 전시는 무엇으로 채워진 것 같으냐. 아이는 소리와 영상이라고 답한다. 느낌이 어땠냐고 재차 물음을 던지려는 찰나 아이는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먹으러 뛰어가 버렸다.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생각했다. 이 공간은 청각과 시각, 두 개의 감각을 자극하는 실험적인 예술작품과 아이와 함께했던 기억으로 채워질 거라고. 그뿐이라고. [ ] 

 

김경옥

 

 

 

 

전시: 노라이브 NO Live

기간: 2019.08.31 - 2019.10.20

작가: 태싯그룹(TACIT GROUP), 리플렉타(REFLECTA), 김태윤, 박천욱, IVA AIU CITY

장소: 코스모40

참고 : 2019 문화적 도시재생 문화 더하기 연계 전시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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