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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목욕하러 갈까요?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17.

송도를 지나가던 길, 전시 제목과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전시 주제가 목욕이라니? 어떤 전시일지 궁금해하다가 짬을 내어 송도 트라이보울 옆 인천도시역사관(인천시립박물관 분관) 전시장을 찾았다. 알고 찾아갔는데도 막상 안쪽에는 별다른 안내가 보이지 않아 2층 전시장까지 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2층에 위치한 전시장에 도착하자 친근한 목욕탕 굴뚝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는 목욕탕과 목욕문화를 주제로 근대에 등장한 목욕탕이 찜질방으로까지 이어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목욕문화를 살핀다. 탈의실, 욕탕, 휴게실로 구성된 전시실을 걷다보면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목욕 문화를 일별하게 된다.

 

목욕이라는 주제는 친근하지만, 전시장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주제의 특성상 처음 접하는 정보가 많다. 목욕탕 굴뚝의 유래도 그렇다. 물을 끓이기 위해 저렴하지만 매연을 많이 배출하는 벙커씨유를 연료로 사용하다 보니 이웃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굴뚝을 높이 올려야만 했고, 높다란 목욕탕 굴뚝들이 생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굴뚝을 높이 올리기 위해 붉은색 벽돌 대신 원형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하늘색과 하얀색 페인트를 번갈아가면서 칠한 부산발 목욕탕 굴뚝의 경남권 유행 이야기는 전시장을 찾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비하인드 스토리다. 요즘은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벙커시유 대신 도시가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굴뚝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니, 목욕탕 굴뚝이 사라지는 이유가 목욕탕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지금은 목욕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옷을 벗고 몸을 씻는, 그러니까 살을 드러내는 것은 조선 사람이 가장 혐오하고 기피하는 행위였다고 한다. 계곡이나 냇물이 동네 어디에나 있던 전통의 목욕탕이기는 했지만 씻는 행위자체가 친근한 행위는 아니었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깨끗함은 문명국의 상징이 되었고, 일본인들의 이주와 함께 대중탕이 들어오면서 목욕탕이라는 새로운 공간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치졸한 차별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같은 돈을 내고도 조선말을 하거나 조선 옷을 입으면 입장을 거부당하기도 했고 결국 일본인 전용 목욕탕이 생긴다. 만세를 부르다 잡혀간 학생이 다시 만세를 불러야 할 이유로 목욕탕에서의 차별을 이야기할 정도니 당시 목욕탕을 놓고 벌어진 차별이 얼마나 노골적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한국 고유의 목욕문화라고 할 수 있는 때밀이세신사와 이태리타월로 불리던 때수건, 때밀이대(세신 침대)가 전시장에 등장하자 교과서 속에 머물러 있던 시계바늘이 빠르게 돌아가 나의 유년 시절을 소환해낸다. 그때는 잘 몰랐던 목욕탕 주인-세신사-스피아(세신사 대타)-청소 아줌마로 이뤄진 목욕탕 생태계가 흥미롭다. 목욕탕 생태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전시 외에도 별도로 박물관에서 기록으로 남길 만한 생활사가 아닐까 싶다. 목욕탕 자체보다도 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목욕탕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 코너가 기억에 남는다. “수건을 가져가시면 도둑이 됩니다라는 경고와 부탁의 말부터, 절도 방지를 위해 훔친 수건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수건 등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어지간히 수건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3부로 넘어가면 휴게실이 나온다. 통행금지 해제 후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등장한 공간인데, 찜질방 등으로 목욕 문화가 바뀌면서 활성화된 곳이기도 하다. 옷을 벗고 씻고 나와서 쉬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목욕탕 코스를 전시장에서 마치니 기분이 묘하다. 전시를 보기 전 오래된 인천의 목욕탕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했는데, 인천의 동네 목욕탕에 대한 정보보다는 일반적인 목욕탕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오래된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나와 달리 찜질방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이 전시에서 만나게 되는 목욕탕의 모습들이 낯선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전시를 보고 나니 갑자기 바나나 우유를 먹고 싶어져서 오랜만에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목욕탕에서 서로 등 밀어주고, 때 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찬물에서 물놀이하며 한바탕 놀고 난 다음에 발그레해진 얼굴 마주보며 마시던 그 맛이었다.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 때의 기억을 소환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전시의 힘이 아니었을까. [ ] 

 

허밍버드

 

 

 

전시: 동네 목욕탕-목욕합니다

기간: 2019.11.01. - 2020.02.02

장소: 인천도시역사관 기획전시실 아암홀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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