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은의 이번 전시는 공간의 특징을 파악하고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의지가 부각된 전시였다. 관객은 입구에 배치된 ‘침묵의 탑 Pink(2018)’의 미니어처를 관람하고 붉은 카펫을 지나 검은색 액체가 솟구치는 메인 작품 ‘Black Fountain(2019)’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층에서 관람한 작업은 다시 일층의 작업으로 이어지도록 하나의 무대처럼 연출했다. 연출 감각은 젊고 발랄했으며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과장되게 제시해왔던 작가의 기본 작업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전시였다.
2층의 핑크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파여진 작은 구멍에 귀를 기울이면, 반대편 벽에서 추락하는 돼지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 필자는 축산물 이력표나 실제 돼지 뼈 등이 같은 층에 전시되어 있어서 듣기 전에 이미 돼지와 관련된 소리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시 관계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일부 관람객들은 롤러코스터를 떠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돼지라는 대상이 제시된 순간, 필자는 자동반사적으로 2010년~2011년에 95만여 마리가 살처분된 구제역 사태나, 최근에 벌어진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살처분으로 인해 핏빛 침출수를 보도한 기사들을 떠올렸다. 고생물의 사체가 부패해서 생긴 기름이 석유이니만큼, 매몰된 돼지들도 언젠가 석유가 되어 솟구쳐 올라올 테지 않은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산업사회가 아직까지는 석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이런 윤회적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전시의 부제인 Inflammation(염증)은 전시장에 비치된 설명에 따르면, ‘빈곤 포르노와 같이 타자의 감정이나 아픔을 사회적 재화로 여기고 구경거리로 만드는 사회의 병폐 현상을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러한 병폐를 드러내기 위한 시각화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그의 시각화 방식은 하나의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학문하기’의 태도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이 충실히 재현되어 마치 막 회를 떠내서 생선의 머리와 함께 서빙되는 일식 데커레이션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투명한 생선의 눈을 통해 회의 선도를 시각적으로 확인받고, 대상에 대한 연민을 지워버리곤 한다.
바로 다음에 이어진 <플레이스 막 인천>에서 진행한 개인전에서 작가가 밝히듯, 날 것의 말캉함은 다른 소재로 대체될 수 없다. 그렇기에 그의 전시에는 동물의 사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앞서 소개한 ‘침묵의 탑 Pink(2018)’는 실제 통돼지 사체가 전시된 작품이었다. 동물의 사체와 부패의 향은 관람객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촉매제로 사용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제시된 순간, 관객은 스플래터나 고어 영화를 볼 때 느낄 법한 불편한 쾌와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런 쾌락은 관객으로 하여금 구조나 시스템의 대안을 상상하기보다 잔혹한 현실을 소비하는 입장에 머물게 할지도 모른다.
즉물적 제시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수 천 년에 걸쳐 가축화된 동물만큼 비참한 생물도 없기에, 필자는 사체를 극복한 신재은 작가의 미학적 대안을 기대해 보고 싶다. [ ]
엘리 (Élie)
전시: GAIA-Part 1 : Inflammation
기간: 2019.08.02. – 2019.08.24
작가: 신재은
장소: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실
* 이미지는 필자가 작가에게 받아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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