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좀 여러 면모가 알려지고 있다곤 하지만, 인천은 오랫동안 공장의 도시이고, 그래서 노동자의 도시였다. 인천이 현대사에서 주목받는 시점에는 항상 공장과 노동자들이 있었다. 해방부터 산업화에 이르는 동안에는 항구와 고속도로를 따라 늘어선 공장은 곧 인천의 상징이었고, 민주화의 시간에는 5월 항쟁, 동일방직, 노동자 대투쟁과 같은 단어들이 인천을 역사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이 공장과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은 개개인의 기억에 남았고, 역사의 한 장이 되지는 못했다.
2017년 국립민속박물관의 ‘인천 공단과 노동자의 생활문화’라는 학술조사를 바탕으로 기획된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은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를 위한 특별 전시이다. 이 전시는 민속문화를 과거에 놓아두지 않고, 현대 노동자의 삶이 현재의 민속문화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의도에 맞춰서 전시 전체에서 비교적 가벼운 느낌을 준다. 공업지역의 역사를 풀어낼 때는 당시 작업복이나 명찰, 생산 매뉴얼, 작업 일기와 수첩과 같은 공장의 일상을 짐작케 하는 물건을 위주로 전시한다. 그러면서도 해방 이후의 이른바 삼백산업과 정유, 철강 등 소재산업, 산업화 시기의 의류 등 소비재 산업, 수출 경제에서의 자동차 등 중공업이 각각 다른 공간에 집적되어 있음을 실제 제품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유인물, 노사협상을 위한 자료 등을 전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과 당시의 급여 봉투, 가계부 등을 함께 놓아 이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하루하루의 작은 삶의 조각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만약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무수한 공장들이 도시의 일상적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린 자녀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면 충분히 좋은 전시이다.
비록 산업화 국면에서 인천의 역할이나, 민주화 과정에서 인천의 노동자들이 거둔 열매를 조명한 연구들이 많이 있고, 인천을 벗어나면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에 대한 연구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전시의 배경이 명확히 ‘인천 노동자의 생활문화’에 대한 학술조사인 것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전시물들은 어쩌면 ‘일상생활’이라는 이름 안에서 노동자의 삶의 무게를 아주 조심스레 말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전시 속 많은 인터뷰들 속에서 볼 수 있는 타지의 사람들에게 ‘인천의 의미’는 섣불리 규정되지 못한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평생을 만들어냈지만, 많은 대답 속에서 성취감과 애향심보다는 삶의 고단함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하지만 그들에게 공장은 맨몸으로 밀가루를 쪄낸 뜨거운 솥 안을 닦아내는 곳이고, 유리 용광로가 멈추는 손해를 막기 위해 밤을 새는 곳이다. 또 공장은 돈을 벌기 위해 미뤄둔 배움의 꿈이 노동쟁의를 우려한 회사에 의해 저지당하는 곳이고, 삶에 쫓겨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이들이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곳이다. 2014년에도 여전히 인천의 노동자들은 ‘3일의 휴가는 무급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속에서 살고 있다. 노동시간 감축과 최저임금 인상, 때로는 귀족노조와 같은 담론이 오가지만 공장과 노동의 현실은 여전히 더 정교하게 분업화 되고, 더 작게 시간 단위를 쪼개어 효율성의 가장 끝을 향해 달려가는 블러디 테일러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 최대한의 이윤을 위해 계산된 최소한의 고용으로 인해 공장의 기계와 한 몸과 같은 노동자는 마치 기계의 부품이 빠지면 안되는 것처럼 사라져선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이 전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거나 조명 받지 못한다. 다만 펴져 있는 수첩의 한 줄, 인터뷰의 한 마디들을 신경 써서 모아야만 한다.
영상 속 목소리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동안 어렵게 얻어낸 휴식이 표시된 근무 기록표와 해고 통지서는 오랜만에 보는 프리마 캔과 머그잔, 고급 바둑판과 뒤섞여 나타난다. 수출의 중심지였던 인천의 공단이 여전히 인천에서 큰 영향을 미치며, 이제는 첨단 산업을 육성한다곤 하지만, 이제는 하청업체의 파견 노동자들로 메워지고 있는 현실은 안내 문구로 작게 지나간다. 이 전시에는 과거 인천의 공단이 이룬 성과와 노동자들의 투쟁을 어둡지 않게 꺼내 놓으면서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남아있음을 아주 작게 남겨둔다. 그래서 그저 과거의 회상으로만 지나치기 어렵다. [ ]
사진 1. 인천항 인근 임해공업지역에서 생산된 커피, 설탕의 상품 패키지.
사진 2. 1981년 임금인상요구안과 해고 통지서, 그리고 2014년 핸드폰 케이스 공장 노동자의 회의 기록.
김윤환
전시: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2019년 인천 민속 문화의 해 특별전
기간: 2019.10.08 - 2020.02.16
장소: 인천광역시 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관
주최: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주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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