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가 ‘회색 도시’이다. 1960년대 국토개발 전략을 바탕으로 공업 도시로 급성장해 공장 건물이 많아서다. 그런데 회색 도시를 만들었던 공장이 역으로 개성 있는 도시로 거듭나는데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있는 코스모40(Cosmo40) 이야기이다.
코스모40은 공장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으로, 2년 전까지는 (주)코스모화학의 황산 재처리 공장으로 기능했다. 그러다 2016년, 45개 건물이 있던 공장 단지가 다른 곳으로 이전이 결정되면서 가동을 멈췄다. 빠른 속도로 건물
들이 철거되었고 40동 건물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이마저도 철거될 예정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보던 (주)에이블커피그룹이 건물과 공장 일대 부지를 매입했고, 40동 건물에 ‘코스모40’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공연장, 클럽, 전시장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3층에는 커피, 빵, 피자, 맥주를 판매하는 상설 F&B 시설이 있다. 2018년 10월 오픈한 코스모40은 인천의 다양한 기획자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실험적인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코스모40을 방문한 날에는 ‘RUN DOWN’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축 사진작가 신경섭의 전시와 건축가들의 모임인 NUNA의 대담이 열렸고, 동시에 로컬 뮤지션과 DJ의 라이브 공연이 릴레이로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이어졌다. 전시와 공연, 대담 프로그램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코스모40은 공장 건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로운 건물을 끼워 넣는 형식으로 증축됐다. 1~2층의 내부는 구획이 없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다. 그래서 신경섭 작가가 찍은 건축 사진을 보는 내내 클럽 음악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운드로 인한 진동도 온몸으로 느껴졌다. 클럽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연기도 이따금 시야를 가렸다.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연과 전시의 이색 조화였다.
이날 코스모40을 방문한 사람들도 색달랐다. ‘폐공장을 재생한 클럽’이라는 개성 때문일까. 홍대와 이태원 길거리에서 볼 법한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외국인도 여럿 보였다. 그동안 인천에서 보지 못했던 광경이기에 신기했다. 폐공장이었던 코스모40이 개성 있는 사람들을 서울이 아닌 인천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개성 있는, 이른바 ‘힙한’ 공간은 신축 건물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오래된 주택, 공장, 창고 등을 활용해 새로운 쓰임새를 얻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할 때, 또 그 건물에 깃든 스토리를 함께 발굴할 때 다른 공간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얻게 된다. 도시 브랜드 측면에서도 ‘개성’은 중요한데, 이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야지 가능한 이야기다. 인천은 그 특성 중 하나가 공장 건물이다.
그래서 더욱이 얼마 전 사라진 애경 비누공장이 안타깝다. 2017년 5월, 인천 중구가 주차장을 만든다며 115년 된 건물을 철거한 것이다. 근대 건축물의 상징인 붉은 벽돌 건축물이어서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성동구는
성수동의 근현대 산업유산인 공장, 창고 등의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이에 대한 보전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성수동 지역을 붉은 벽돌 명소로 조성해 역사성 있는 도시경관을 만든다며, 붉은 벽돌 건축물 수선과 건축 시에 공사비 및 컨설팅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인천 중구가 근대건축물을 철거했던 것과는 반대의 행보이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인천에 있는 공장 건물이 인천의 개성을 만드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에서 보존과 활용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야 한다. 인천에 남아있는 공장 건물을 철거할 대상이 아닌, 미래 자산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 ]
김아영
전시: 건축의 판독 가능한 이야기에 관하여
기간: 2018.10.19 - 2019.01.31
장소: 코스모40
작가: 신경섭
사진제공: 인더로컬
* 이미지는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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