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총 10팀이 각자 제작한 평면. 입체작품과 퍼포먼스를 모아 연출한프로젝트의 전시공간은 철거를 앞둔 작가의 옛집이었다. 참여 작가들은 가족 내의 갈등과 공감, 창작자 커뮤니티에서의 긴장과 동지애, 구시가지의 비애와 그 특유의 애틋한 아름다움 등, 사회적 관계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다루어진 공동체는 언제든 해체될 위험에 처해 있거나 이미 해체되는 과정 중에 있는 불안한 연대였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으로부터 나타난 해체의 조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 즉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위기를 맞은 공동체였다. 하지만 이를 그려내는 이들의 작품에는 ‘우리는 왜 힘이 없는가, 왜 우리는 힘이 없는 존재이도록 내버려졌는가’ 하는 원망의 시선이라든지, 이러한 시선을 뒤따르게 마련인 ‘우리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을 게임판의 말 움직이듯 멋대로 쥐고 흔드는 당신들은 나쁘다’는 비난의 정서가 녹아 있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일관된 태도가 깊이 녹아 있었는데, 그것은 비징벌적이고, 비정치적인 태도였으며, 윤리적 단죄를 지양하려는 태도였다.
우리를 괴롭히는 거대한 폭력을 고발하고 그 주축이 되는 ‘큰 손’들을 단죄하는 대신에, 이들은 마치 일상의 연장이자 하나의 사소한 놀이처럼, 작고 소박한 전시를 ‘수행’ 하였고, 그렇게 또 며칠을 살아냈다.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익숙한 풍경도 가만히 바라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찍은 듯한 스냅 사진들과 기록 영상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도록 잔잔하게 만들었고, 전통 연의 형상을 한 새 조형물을 이용해서 서사성을 더한 영상 작품은 독특한 감동을 주었다. 작품 설명글 등 세부 정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시를 하나의 일상 풍경처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산책을 하는 등의 ‘살기’ 와 별다를 바 없는 행위로서 작업화한다는 것이 작가의 숨은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살기’와 ‘살아내기’가 다르지 않은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전시의 풍경, 주변 환경, 관객들의 몸과 감각이 모두 아우르는 오프닝 퍼포먼스에 의해서 작가의 의도는 보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무언가, 보면서 경험하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면서 체험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분석’보다는 ‘체험’을 쓸 때 더 활기찬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글의 제목은 <잔칫날 기행> 이 되었다(“잔칫날” 은, 오프닝 날에 대해 작가가 직접 붙인 이름이다).
잔칫날 저녁 6시, 하늘이 짙어지기 시작하자 꽹과리를 앞세운 <연희집단 갱> 팀의 행렬이 집을 나섰다. 헐렁한 흰옷을 휘날리면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철제 악기를 연주했고, 팔과 다리를 번갈아 들어 올렸다 내렸다 춤을 추면서 곧 철거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이들의 춤은 전문 광대인 풍물패의 춤과, 이들을 따르는 농촌 사람들이 흔히 추곤 하는 막춤(소위 ‘할머니들이 추시는 어깨춤’)을 적당히 섞어 놓은 듯했다.
7시쯤, 동네를 한 바퀴 다 돈 일행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 2층에서 뒷마당을 향해 뚫려있던 큰 창문을 통해서 지켜보았다. 어스름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지는 하늘은 스스로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몇 개 안 되는 광원에도 환한 빛을 발하는 흰 의상에 몸을 감춘 광대패들은 계속 까불었다. 잠시 후 광대패가 무언가 모양을 만들려는 듯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손에 손을 맞잡아 원을 그려 여러 바퀴를 돌았다.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짙은 저녁에 들어선 가락은 어딘가 더 구성지게 익어가는 듯했다. 무엇보다, 가락과 사람들은 서로 낯설어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2층에서 뒷마당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광대패를 향해 손을 흔들고 몸도 흔들었다. 커다란 창에는 유리가 없었기에, 우리가 있는 풍경은 1층과 2층으로 나뉜 커다란 무대에서 춤추는 극단의 공연 같았다. 풍물패는 2층 사람들을 신경 쓰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2층의 사람들에게는 멋진 순간이었다. 풍물패가 뒷마당을 돌아 나와 1층 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대열에 합류해 집을 돌아다니며 같이 춤을 추었다.
오프닝 퍼포먼스에서 ‘마당밟기’ 나 ‘지신밟기’ 굿을 차용했다는 말을 작가로부터 들었다. 그렇지만 굳이 그러한 정보를 듣지 않더라도 나는 충분히 연상할 수 있었다. 굿의 형식을 치밀하게 조사하여 구현한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굿이라는 행위가 공동체 안에서 가지는 심리적 효과와 그 설화적 상징성이 자극하는 상상력. 낭만 등이 퍼포먼스에 녹아들었다.
굿이라는 행위는 독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는 형언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계시와 상상, 그리고 참여자 각각의 개별적 인격이 오묘하게 뒤섞여 흐른다. 즐거우면서도 무겁다. 참여자들은 즐거움 속에서 각자 한 인간으로서 지니는 의무. 운명. 행복과 존재의 조건 등에 대해 생각한다.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감정으로 생각한다. 소모적이고도 창조적으로 사유한다. 이로 말미암아 수용. 합일. 초월. 연대의 기제가 집단 안에서 활발하게 작동하게 되고, 성원들은 특정 주체에게 죄를 물어 저항하는 대신, 시련을 피해 갈 수 없는 어떤 의무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강인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일견 바보 같아 보이지만 삶에 대한 성숙한 태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서로 싸우면서도 사랑하고 싶어 하고, 기존 질서에 반항하면서도 반항의 근거가 되는 더 큰 질서를 탐구하며, 자신의 약함을 고백함을 통해 강해지고 성숙해지고자 한다. 이렇게, 대립하는 것들은 서로 붙어 있고, 서로의 등과 등을 붙인 괴물들의 쌍이 여러 삶들 사이를 흘러 다닌다. 나와 너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온전한 '각자의' 삶이 어디까지인가 울타리를 치고 그것만을 대상으로 정의와 부정의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삶에 대한 욕망은 열광 속으로 빠져들어 보편적 연대라는 착각 속에서 잠시나마 충족될 수 있다. 그 연대의 광경이 춤이든 익살이든 눈물이든.
임청하 작가의 조부모님이 거주하셨고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던 집에는 한 가족이 생활했던 흔적이 모두 남아 있었다. 낡은 성경책에는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던 그들 마음의 흔적이 있었고 두껍고 경건한 책이 궁금하고도 낯설었던 어린아이의 시선 역시 묻어있었다. 그런데 이 전시가 만약 매우 투쟁적인 전시였다면 나는 성경책, 꽃병, 서랍장 등의 조그마한 증인-이야기꾼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나를 비롯한 관객들은 분노와 긴장이 없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슬프지 않고 편안했으며, 각박하지 않고 깊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앞서 설명한 전시의 맥락-기획의도-일 것이다.
떠나갈 사람들의 공간은 마치 영원할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것은 세간을 잘 보존하고 정리해 놓아서가 아니라, 그 공간이 현재형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간에서 즐거운 축제가 이루어졌고, 우리가 생각한 것은 지나간 삶의 흔적이 만든 오늘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곧 사라질 정든 공간은 창조의 환희로 가득 찬 proper farewell이 되었다. [ ]
권윤지
전시: 그집: Proper Farewell
기간: 2018.11.10 - 2018.11.24
작가/팀: 임청하, 오수(오승욱), 우나연, 자표자기(팀), Charlie Ehrenfried,
연희집단갱(팀), 안치영, Sofia Fayzieva, 동그랭, Alessandra Pozzuoli
기획: 임청하
장소: 작가의 옛집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2동 15-22번지)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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