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늘 여기에 있음의 경험이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알맞게 생긴’ 우리의 몸은 하나의 도시, 공간과 가장 먼저 접촉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지역을 거닐며 익숙하지 않은 거리와 보도, 오로지 보행을 위해 설계된 공원을 감각한다. 신체의 움직임에 그저 응하다 보면 낯선 사람과 고양이, 도시를 뒤덮은 간판과 도로의 명칭, 풀과 꽃의 내음, 계절을 가늠하기 알맞은 울창한 나무에 시선이 닿는다. 그리고 이 모든 관계 맺기에서 보이는 하나의 방법론은 바로, ‘걷기’이다.
보행을 통한 도시 읽기
어딘가를 걷는 일은 나와 관계된 세계의 확장이자 사유 전개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결과 계획에 의해 구획된 도시 공간space은 ‘의미’가 부여된 관계 맺음의 결과인 장소place로 탈바꿈하여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보행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 장소는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자 여러 주체들의 행위와 감정이 뒤섞이는 자리이다.
우리의 보행을 잠시 멈춰야만 했던 2020년과 2021년, 비슷한 방법으로 멈춘 도시에 다시금 숨을 불어넣기 위한 두 번의 시도가 이루어졌다. 인천 원도심/개항장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모인 청년 창작자 집단 ‘인더로컬(In/仁 the Local)’은 『하이파이브 인천: 개항장편』을 통해 낯선 사이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는 과정에 빗대어 도시와 개인의 관계를 그려냈다. 인천의 로컬을 소재로 문화를 기획하는 ‘스펙타클 워크(Spectacle Work)’에서 발행한 인천 로컬 매거진 『spectacle』 창간호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인천국제공항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천에 살아가는 여행 같은 일상을 전개한다.
『하이파이브 인천: 개항장편』는 이제는 낙후된 공간 혹은 하루 왔다 떠나가는 관광지로 인식되는 개항장에 집중한다. 가볼만 한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곳에서 나아가 여러 문화공간과 역사적 흔적을 발견하기 위한 보행, 그 과정에서 사유한 고민을 담았다. 스펙타클 워크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를 열어 인천을 구석구석 걷는 일종의 탐험대를 구성했다. 4개월 간 진행된 탐험은 ‘코로나 시대의 로컬’이라는 부제를 가진 『spectacle』로 이어졌고, 여름방학을 맞이해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썸머세션〉을 꾸려 바다를 사이에 둔 인천인 강화도로의 짧은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 또한 어딘가를 열심히 누비는 모습을 내비쳤다.
움직임이 통제된 특수한 상황에서 이들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걷는 행위’를 가까운 도시에 끌어들인다. 인천의 길거리를 보행하며 마주친 여러 가게와 터전을 잡게 된 사람들의 삶을 채집하며 특정한 서사가 아닌 보편적 이야기로의 전환을 꾀한다. 어디에선가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당신에게 이 도시를 공부하기를, 당신의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기를 권한다.
도시 읽기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기
일찍이 청년이 유입되어 새로운 목소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한 여러 지역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청년은, 지역에서 소비되는 청년과 지역을 소비하는 청년이라는 양가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움직임이 또 다른 이의 걸음을 불러오고, 원래의 터전을 둘러싼 공통적 이해관계에 작은 균열을 일으켜 새로운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 산발적이고 혼란스러운, 하나의 기호에 불과했던 해시태그(#)로 물리적 세계 너머 비가시적 공간을 형성하는 행위/소비가 ‘요즘’의 ‘청년’ 문화의 마침표는 아니길 바란다. 아직은, 낭만적인 수식어를 나열하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것을 넘어서 내일을 위한 작은 물음표를 남겨두고 싶다. [ ]
반달
* 본 글은 ‘인더로컬(In/仁 the Local)'의 『하이파이브 인천: 개항장편』과 ‘스펙타클 워크(Spectacle Work)’의 『spectacle』의 창간호 리뷰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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