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전시의 틀을 간략히 말해볼까 한다. DMZ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보러 도라산에 다녀왔다고 하면, 대부분은 그 전시는 어디서 주최하는 것이냐고 먼저 물어왔기 때문이다. 《DMZ ART & PEACE PLATFORM》전(예술감독 정연심)은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가 주최한 전시로, 경기 파주의 유니마루, 파주철거GP, 도라산역, 강원 고성의 제진역, 서울의 국립통일교육원 등 5곳에서 진행되었다. DMZ 내 첫 문화공간인 유니마루(Uni마루:통일을 뜻하는 영문 ‘Uni’와 플랫폼의 순수 한글 ‘마루’를 합친 말)의 개관을 계기로 이번 전시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파주에 위치한 유니마루와 도라산역에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하였지만, 아쉽게도 서울과 고성의 전시장에는 방문하지 못했다.
비무장지대(DMZ)는 군사분계선(휴전선)과 그에 접하고 있는 일정 범위의 완충지대를 의미한다. DMZ를 주제로 하거나 접경 지역에서 진행하는 전시에서 그 경계(성)에 주목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작업들을 여러 차례 경험해 본 기억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던 것은 ‘출경’이라는 표지였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 나간다는 의미의 출경은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는 아니기에 더욱 눈에 띄었다. 전시가 진행된 유니마루는 2003년부터 4년간 개성공단을 오갈 때 임시 남북출입사무소로 쓰였던 건물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때 이곳은 개성공단으로 가는 관문이었고, 국가를 넘어가는 것이 아닌 경계를 넘어간다는 의미로 출국이 아닌 출경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것이 표기된 싸인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건널 수 없는 경계라 생각했던 곳에서 ‘이 경계를 건널 수 있음’, ‘가까운 과거에 실제로 오갔던 기억이 있음, 바로 이곳에서’, ‘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음’을 환기시킨 표지판이었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개성으로의 출경의 기억은 남북의 경계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추가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갔다. 그동안 주로 다뤄졌던 접경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기억, 그리고 실향민의 서사와는 다른, 경계와 접경에 관한 또 다른 서사와 감각으로 인식되었다. 유니마루에 전시되어 있는 이부록의 작업《조금은 사적인 애정공단》(2021) 앞에서 조금 더 머물렀던 이유는 이처럼 경계에 대한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개성공단에서 근무했던 남측 근로자들의 기억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이들을 찾아가 인터뷰하였고, 과거에 개성에서 함께 근무했던 북측의 직원 중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하고 싶은지를 질문하여 그것을 작업으로 기록했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경계의 길목을 넘어 일상 속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만났던 이들에 대한 사적인 기억들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남북의 경계와 접경의 서사를 재구성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이제 비무장지대나 민통선 등 남북의 경계와 접경지가 주는 무게와 정서의 민감도는 예전보다는 덜한 것 같다. 매체를 통해서나 관광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접경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전보다는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접경지역으로 들어가려면 신청과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접경지의 비일상성을 경험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와 감각들을 활성화한다면 보다 일상적인 공간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DMZ 내 첫 문화공간으로 탄생한 유니마루에 기대를 해도 될까. 이번 전시 및 유니마루의 개관은 DMZ에서 분단과 전쟁의 상징을 지우고 이곳을 평화와 생태의 지대로 구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1 21년 전 임진각에서 전시했던 작업을 다시 선보인 백남준의 《호랑이는 살아 있다》(2000), 접경마을인 파주시 장단면 주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임흥순의 《고야(古夜)》(2021), DMZ의 흙과 땅에 대한 질문과 기술을 드로잉으로 작업한 마르예티차 포트르치의 《DMZ 흙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2021), 거대한 구에 비춰진 모습을 통해 경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이형우의 《보더리스》(2021), 공터 바닥에 ‘이곳’과 ‘저곳’을 크게 설치한 슬기와 민의 《이곳/저곳》(2021), DMZ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 식물의 이름을 세라믹에 조각한 최재은의 《이름 부르기》(2019) 등은 경계와 접경지에 주목하는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보았던 출경의 방향을 가리키는 싸인물, 그리고 이부록의 작업을 보면서, 경계와 접경의 서사와 그 감각을 재구성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경계의 이야기는 대부분 접경지 인근과 언저리를 맴돈다거나, 혹은 경계 너머의 저쪽 방향을 보고 있다. 유니마루에 전시된 백남준의 작업《코끼리 수레》(2001)에서 코끼리가 개성 방향을 향해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계와 접경의 이야기의 방향을 전방에만 두는 것이 아닌 후방과 연결하는 시도들은 어떨까. 출경장 입구에 있었던 양아치의 작업《미들코리아》(2021)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작업은 접경 지역과 전쟁기념관 등 일상적 장소, 그리고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3의 공간과 무용수들의 행위를 교차시킨다. 접경의 서사와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경계와 접경의 이야기를 이남의 체계와 보통의 일상으로 연결하는 예술적 시도들에 더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 ]
이정은
《DMZ ART & PEACE PLATFORM》
기간 : 20201.9.15 - 11.15
장소 : Uni마루, 도라산역, 파주 철거 GP, 제진역, 국립통일 교육원
참고 : 통일부 남북출입국사무소 주최주관
dmzplatform.com (온라인전시)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 정연심 예술감독, 「2021 DMZ 아트 & 피스 플랫폼」, 전시 팜플렛, 20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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