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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귀향인가, 귀양인가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0. 31.

지역이 지역 출신 유명 예술가를 내세워 지역을 홍보하는 관행은 빤하나 효과가 없진 않다. 일찍이 강릉은 화가이자 문인인 신사임당의 고향임을, 춘천은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임을 내세웠다. 오죽헌을 찾은 이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떠올리고 김유정역을 찾은 이는 김유정의 『동백꽃』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오죽헌은 강릉을, 김유정의 『동백꽃』과 김유정역은 춘천을 기억하는 해시태그가 된다. 한편 고향이 불러내는 것은 과거만이 아니다. 시인 박인환의 고향 인제는 서울 망우리공원에 있는 그의 묘를 이장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무산된 바 있고, 소설가 이효석의 고향 평창은 지난 10월 경기도 파주에 있던 그의 묘를 모셔왔다. 우리 지역 출신 위인이 지역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하는 사업에서 ‘귀향’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평창의 이효석’, ‘인제의 박인환’을 기리는 지역의 미래는 과연 그의 귀향으로 말미암아 보장되는 것일까.

주차장과 면한 놀이터를 지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그 산책로의 한끝에 박수근기념전시관이 있다. 사진 오른쪽 돌벽이 박수근기념전시관의 외벽이다.

 

강원도 양구는 화가 박수근의 고향이다. 1965년 서울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경기도 포천에 묻혔다가 2004년 화가의 생가터에 지어진 박수근미술관으로 옮겨졌다. 박수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끌어안겠다는 양구군과 박수근미술관의 포부는 5600(축구장 2개 반)의 품으로 구현됐다. 현재 박수근미술관을 구성하는 5개 건물 중 맏이인 박수근기념전시관(전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은 미술관 소장품을 소개하는 상설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지난 56일부터 1017일까지 열린 아카이브 특별전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는 고() 이건희 회장 가족의 기증을 계기로 기획됐다. 이번에 기증된 작품들도, 함께 걸린 소장품들도 모두 간명한 선과 투박한 질감으로 소박한 삶을 담아내고 있었다. 함지박을 머리에 인 아낙부터 둥근 초가지붕과 고목까지. 넓은 벽면에 걸린 작은 그림들은 화가가 지향한 소박함을 곱씹게 했다. 그러나 그림 속 소박함은 그림 밖 공간에 스며들지 못했다. 기증 작품 옆에 기증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문구가 크게 붙어 있었다. 기증이 동기가 된 전시라지만, 관람하는 내내 뜻깊은기증을 염두에 둔 감상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유명 화가의 고향에 그 화가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미술관이 지어지고 유명 컬렉터의 기증을 기념하는 전시를 여는 관행은 빤하다. 지자체의 이해와 관심에 기대는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의 현실이 빤하고, 기증 작품이 주된 소장품으로 참신한 전시를 기획하는 역량을 기대하기 곤란한 것도 빤하다. 게다가 이렇게 마련된 지역 문화자본이 지역에 미치는 긍정적효과가 없지 않다는 것도 곤란하지만 빤하다.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가나아트센터, 2014) 도록에 실린 글에서 윤범모는 한국인에게 있어, 고향 회귀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박수근 작품은 대중적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썼다. 이번 아카이브 특별전 기간 박수근미술관을 찾은 관객의 수는 평일 평균 200여 명, 주말 평균 300여 명으로 이전 대비 10배가량 늘었다 한다. 이건희 컬렉션의 귀향이 궁금해 전시장을 찾은 관객 가운데 내재된 고향 회귀본능을 일깨운 이가 있다면 과연 몇이나 될까.

 

지난봄 박수근미술관에 유화 4점, 드로잉 14점을 기증한 고 이건희 회장 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문구가 전시장 벽면에 걸려 있다.

 

양구 읍내 한 아파트 벽면에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가 칠해져 있다.

박수근미술관이 있는 정림1리는 마을 이름을 박수근마을리로 바꾸는 건을 추진 중이다. 박수근미술관은 지난 20년간 5채의 미술관을 확보했다. 화가 박수근의 삶을 기리고(박수근기념전시관, 박수근파빌리온) 박수근의 뜻을 되새기고(현대미술관), 박수근의 그림을 현대화하고(퍼블릭전시관), 박수근과 미래 세대를 만나게(어린이미술관) 하겠다는 건설적인의도가 읽힌다.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박수근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까지 책임지겠다는 박수근미술관의 포부가 선득했다. 박수근미술관이 이미 박수근마을이어서 미술관과 인근 주택가 사이 좁은 길은 박수근마을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처럼 보였다. 양구 읍내를 지나는 차창 밖으로 학교 담장과 인근 아파트 벽면에 박수근의 그림이 칠해진 것을 봤다. 그림 속 소박함은 그림 밖 공간에 스며들지 못했다. 박수근은 진정 고향으로 돌아온 것일까. ‘귀향이 아니라 귀양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

 

한승은

 

 

 

한가한 봄 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업은소녀

기간: 2021.05.06. - 2021.10.17.

장소: 박수근기념전시관

참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기증 작품을 포함한 2021 박수근미술관 아카이브 특별전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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