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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실제보다 리얼한 : 다르덴의 영화 속 이민자의 형상들, 변화들

by 동무비평 삼사 2022. 7. 31.

영화에서 타자를 재현하는 방식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된 적이 있다. 타자를 대상화된 시선으로 재단하진 않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재현해야 옳은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타자 재현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가 예전만큼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타자가 올바르게 재현되어서가 아니라, 타자의 개념과 위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자는 그저 타자의 얼굴을 한 자아로 흡수되거나, 집단화된 비인간이 되었다. 어떤 경우 타자는 두드러지게 좋은 얼굴로 재현된다. <가버나움>의 자인은 실제 난민 소년을 캐스팅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또래 배우로서 보기 드문 카리스마를 지닌다.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의 사연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서 그의 몽타주가 복제되고 상품화되는 현상은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이 좋은 얼굴을 뒷받침하는 아우라를 형성함을 역설한다. 좋은 얼굴의 타자는 거부나 배척의 대상인 만큼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타자가 집단화된 비인간의 형상을 띠는 경우가 있다. 좀비화 경향은 타자의 불가해함을 자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자아의 망상을 반영한다. 좀비화 혹은 장르화는 타자 재현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 제기를 철 지난 논의 혹은 지나치게 진지한 논의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루벤 외스틀룬드의 <더 스퀘어>는 이분화된 타자 사이 예술화된 타자에서 대안을 찾는다. 전시회에 나타난 근육질의 정신 장애인은 포럼 도중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스러운 말을 뱉는가 하면, 파티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며 장내를 휘젓는다. 남자의 행위는 우발적인 상황을 연출해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의 퍼포먼스와 유사해 보인다. 타자는 피해자로 남는 대신,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릴 칼자루를 쥔다. 그 앞에서 타자 대면의 윤리나 이해라는 허울 좋은 위선은 통하지 않는다. 남자의 위협적이고도 불가해한 몸짓이 보여주듯, 타자는 재현의 틀을 뛰어넘고 비웃는다. 

 

 리얼리티 영화의 수호자인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다르덴 형제)은 <소년 아메드>와 올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토리와 로키타> 등 유럽 내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연달아 발표했다. 물론 감독이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일찍이 <로나의 침묵>에서 벨기에 시민권을 얻기 위해 약물 중독증을 앓는 남자와 위장 결혼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고, <약속>과 <언노운 걸>을 통해 원주민의 입장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그렸다. 전작에서 이민자 이야기는 감독의 스타일이 지닌 깊이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었다. 반면 최근에 발표한 <소년 아메드>의 이민자는 그가 다뤄온 주인공의 틀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왔다. 이민자 재현을 중심으로 다르덴의 영화를 돌아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약속(La Promesse), 1996

 다르덴의 초기 영화 <약속>에서 이주민은 주인공 소년의 시선을 통해 묘사된다. 소년 이고르는 양아버지 호제와 짝을 이뤄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한 이민자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값싼 노동을 시킨다. 이고르는 이주민과 대척점에 있지만, 아직 소년이기에 교정될 가능성을 지닌다. 교정 가능성은 그가 자동차 정비소 수습생으로 교육받는 초반 시퀀스를 통해 예증된다. 이때 이고르의 교육은 양아버지 호제의 호출로 인해 중단된다. 호제가 이고르의 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임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호제의 통제를 벗어나 아시타를 구하기로 한 이고르는 정비소에 있던 쇠줄로 호제의 발을 묶어 움직일 수 없게 한 뒤, 떨어진 안경을 쓸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안경은 이주민을 대하는 호제의 태도를 교정하는 데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소년 아메드(Le jeune Ahmed), 2019

 <약속>과는 대조적으로 <소년 아메드>에서 감독은 이민자를 교정대상의 자리에 놓는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아메드는 오랫동안 자신을 가르쳐온 교사 이네스를 배교자라 믿는 동시에 그를 신의 이름으로 살해하려 한다. 호제의 안경이 그랬듯, 아메드의 안경 역시 그의 눈을 가린다. 영화의 종결부에 등장하는 아메드의 추락 장면은 <약속>에서 이민자 아미두의 추락 장면과 상반된다. 아미드는 고층에서 작업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을 피해 몸을 숨기던 중 추락한다. 반면 아메드는 이네스를 공격할 무기를 쥐고 창문을 통해 건물 내부에 침입하려다 추락한다. 추락한 아미두는 이고르에게 유언을 남겨 그를 변화시키지만, 아메드의 추락은 이네스의 동정심을 자극할지언정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 아메드는 살기 위해 자신의 변화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로나의 침묵(Le silence de Lorna), 2008

 종교를 전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도 <소년 아메드>는 다르덴 영화에서 예외에 속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다른 작품에도 종교적 측면은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왔다. <약속>에서 종교는 아시타가 아미두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닭 내장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점치는 과정에서 토속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나아가 이고르에게 아미두와의 약속이 하나의 계명처럼 작용한다는 측면도 종교적이라 해석할 수 있다. <로나의 침묵>에서 종교는 암시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죽은 클로디의 아이를 가졌다고 믿는 로나의 확신은 굳건한 종교적 믿음에 준한다. 의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지만, 그만이 분명히 느끼는 방식으로 아이를 가진 로나의 상황은 처녀의 몸으로 수태한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전환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상상의 아이가 존재를 증명받지 못한 이민자의 상태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로나가 그저 불쌍한 여자로 보이는지, 아니면 로나의 믿음에 동참할 것인지 질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관객의 믿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점에서 <로나의 침묵>은 진정 종교적인 영화다. 

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 2016

 다르덴 형제는 <언노운 걸>에서 신체와 정신에 의한 믿음의 문제를 다시 다룬다. 제니는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 CCTV에 찍힌 아프리카계 이민자 소녀의 존재를 목격한 뒤, 그를 외면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더해져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면서도 탐문을 포기하지 않는다. 제니가 의술을 펼치는 주된 도구는 청진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제니는 청진기를 이용해 환자의 숨소리를 듣고 그의 병을 진단한다. 몸을 읽는 청진기는 거짓말 탐지기처럼 심리의 탐문에도 유용하다. 제니는 소녀의 얼굴 사진을 본 사람들의 미세한 반응을 체크해 소녀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한다. 제니의 소녀에 대한 집착은 분명 과도하다. <로나의 침묵>에 빗대 말하자면 이름 모를 소녀는 제니의 내부에 있었으나 그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유실된 아이다. 제니는 소녀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CCTV 영상을 흡사 자신의 내부를 찍은 엑스레이 영상처럼 여긴다. 제니는 죽은 소녀를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위험한 탐색을 반복한다.

 

 <약속>과 <로나의 침묵> 등 다르덴의 초기 이민자 영화에서 이민자에게 필요한 것은 체류 허가와 머물 장소였다. 반면 최근 영화에서는 실제적 장소의 자리가 상상의 차원으로 대체된 것처럼 보인다. <언노운 걸>에서는 누군가의 기억이, <소년 아메드>에서는 종교가 실제 거주지 이후 요구되는 거주지의 사례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이민자에 대한 환대와 대면이 실제 장소에서만이 아니라 가상의 차원에서도 중요해졌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소년 아메드>에 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남는다. 다르덴의 영화는 인물과 상황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 반면 <소년 아메드>에서 인물은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며 이것이 바뀌는 일은 요원해보인다. 아메드는 다르덴의 영화에서 가장 예외적인 주인공이자 어쩌면 최초로 묘사된 타자다. 감독의 변화는 의아하지만, 감독이 지금껏 꾸려온 세계를 배신한 급작스러운 변화나 타자에 대한 몰이해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르덴은 타자를 이해나 동화의 대상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서도 대면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소년 아메드>는 힘겨워도 대면의 힘을 결코 놓지 않으려는 치열한 싸움의 흔적이다. 진정 과격한 것은 소년의 행위나 충격적인 결말이 아니라 다르덴의 이러한 결단이다. [ ]



김소희 (영화평론가)



약속(La Promesse)

제작년도 : 1996

감독/각본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 제레미 레니에, 올리비에 구르메, 라스마네 오우에드라오고, 아시타 오우에드라오고, 프레드릭 보드슨

제작사 : Les Films du Fleuve 

제작국가 :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튀니지 

 

로나의 침묵(Le silence de Lorna)

제작년도 : 2008

감독/각본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 아르타 도브로쉬, 제레미 레니에, 올리비에 구르메, 파브리지오 롱기온 

제작사 : Les Films du Fleuve 

제작국가 : 벨기에, 프랑스

국내개봉 : 2009년 6월 4일

국내배급 : 실버스푼

 

언노운 걸(La fille inconnue)

제작년도 : 2016

감독/각본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 아델 에넬 , 제레미 레니에 

제작사 : Les Films du Fleuve, Archipel 35, Savage Film

제작국가 : 벨기에, 프랑스

국내개봉 : 2017년 5월 3일

국내배급 : 오드(AUD)

 

소년 아메드(Le jeune Ahmed) 

제작년도 : 2019

감독/각본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 이디르 벤 아디, 메리엄 아카디우, 빅토리아 블럭, 올리비에 보노, 오스만 모먼

제작사 : Archipel 35, Les Films du Fleuve

제작국가 : 벨기에, 프랑스

국내개봉 : 2020년 7월 30일

국내배급 : ㈜영화사 진진



* 이 글은 동무비평 삼사가 2022년 주제로 의뢰한 ‘디아스포라’ 관련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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