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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술에서의 디아스포라 :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작가와 작업 중심으로

by 동무비평 삼사 2022. 7. 31.

제인 진 카이젠 (Jane Jin Kaisen, 1980~ )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디아스포라’ 담론은 대체 거대한 의미와 개념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 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여정으로서의 디아스포라를 살펴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삶과는 무관한 거대담론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치열한 고군분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시각문법을 다루며 광범위한 리서치와 다학제간 연구, 다양한 공동체와 교류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1980~)은 한국 제주도 출생으로 덴마크에 입양된 이후 덴마크 왕립예술학교, UCLA 에서 수학했으며, 코펜하겐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 (아트선재센터/서울), 제인 진 카이젠과 거스톤 손딩 퀑(Guston Sondin-Kung, 1982~)이 함께한 2인전 《달의 당김》 (아트스페이스씨/제주) 그리고 2019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등에 참여한 바 있다. 익숙한 듯 낯선 그의 이름에서 유추 할 수 있듯이, 작가는 입양인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기억, 역사, 젠더에 관심을 두고 개인의 삶과 집단의 역사를 교차하며 억압받은 존재와 소외된 공동체에 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작가는 2011년부터 그가 태어난 곳 제주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한국 근대사 중 하나인 ‘제주 4.3 사건’ 에 관심을 두었는데, 특히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고 억울한 망자를 애도하는 무속인 심방(무당)과의 인연이 작업으로 발전되었다. 제주의 무속문화는 무릇 육지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제주는 해양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신화들이 존재하는데 그 신화와 무속이 한데 섞여, 현실에서의 고난과 안녕을 빌고 비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심방들의 굿에서는 신화를 원형으로 망자천도와 다신(多神)신앙적인 특징이 담겨있다. 작가는 특히 지상과 지하,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존재인 바리공주 신화에서 경계를 잇는 ‘주변부’의 존재에 본인의 ‘디아스포라적 경험’ 을 투영했다고 한다. 이로써 디아스포라는 작가 개인의 정체성 찾기에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역사와 기억의 틈을 넘나들며, 기성 통념을 넘어선 대안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위한 미적 실천을 행한다.

 

Jane Jin Kaisen, Community of Parting, 2019. Photo: Sang-tae Kim. Courtesy: Art Sonje Center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이기도 한 영상작업 <이별의 공동체>(2019)는 여자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바리공주의 이야기를 담은 바리설화를 통해 남성중심, 젠더 여성을 타자화 하는 통념에 균열을 낸다. 비록 버림받았지만 효를 다한 바리공주는 왕국의 절반을 하사 받으나 이를 거부하는, 즉 인간사의 통념을 역행한다. 나아가 바리공주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매개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비록 버림받았으나 주체성을 가진자로 거듭난다. 작가는 이 바리 공주를 통해 과거와 현재, 역사와 기억을 잇고, 여성, 이주, 변방과 같은 소외된 것들을 성찰해나간다. 이 작업은 바리공주 설화를 비롯하여, 작가가 제주에 머물면서 수집한 제주신화와 4.3 사건, 심방의 굿장면의 아키이브와 비무장지대(DMZ), 북한, 일본, 중국, 독일 등의 모습과 자연과 도시풍경들이 원경에서 근경으로 펼쳐지고, 음성과 사운드 스케이프가 다층적으로 교차된다.   

 ‘디아스포라’는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에서의 이주에서 기인한다. 즉 공동체의 역사성은 그 물리적 장소성을 전재로 하여 형성되기에 ‘멀리 떨어져 있음’, ‘떠나옴’과 같은 이탈의 상황이 디아스포라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 진 카이젠은 그러한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저승과 이승의 넘나듬과 같은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신화적 상상으로 디아스포라의 경험과 기억을 교차시키고 분열된 것을 모은다. 작가는 개인전 제목이자 작품명이기도 한 <달의 당김 (The Pull of the Moon)>(2020) 에서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나길 반복하는 제주 하도리 해안을 조명상자를 이용한 사진으로 선보인다. 제주 바다의 현무암 바위와 해초 새우들의 갑각류, 모래 그리고 돌멩이를 비롯하여 감귤, 쌀, 황동 제기와 명실(장수를 기원하는 무명실)와 같은 제의를 위한 제물들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현무암 돌 위에 놓인 제의 음식들은 제주 해녀들과 심방들이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하는 바램을 담은 일종의 무구(巫具)인 셈이다. 작가는 이 자연 위에 놓은 제물들의 풍경이 인간과 바다 및 자연이 교감하는 겸허한 접근’으로 보았다. 달의 인력으로 인해 드러나고 잠기기를 반복하는 해안은 밀물과 썰물이 따라 육지도 바다도 아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소외된 장소를 뜻한다. 일종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세계로의 접점과 만남을 상상케 하는 것이다. 라이트 박스로 비춰진 이 사진작업은 매우 생생하게, 해수의 투명함과 현무암 조각들을 담아낸다. 자칫 어느 행성의 표면 처럼도 여겨질 만큼 생경한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달 표면과 같이 몇 광년 떨어진 행성은 필히 존재하는 것임에도 초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드러났다 잠기길 반복하는 이 깅이통(조수웅덩이를 의미하는 제주말)은 우리 발 밑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드넓게 펼쳐진 바다에 둔 사이, 미쳐 살피지 못한 주변부이자 잊혀진 장소로 존재한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묵직한 담론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반복된 일상 속 장면에서 시야 언저리에 뭉개진 사소한 인상에서도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작가의 작업에서 선보인 신화 속 바리공주,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탈락된 무속신앙, 공동체에서 터부시되는 영매인 심방처럼, 현실사회와 그 이면을 들추고 기존사회에 포섭되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예술가는 경계인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참조한다. 그들 모두의 삶 자체가 디아스포라의  숙명과 닮아있기도 하다. 이렇게 경계인, 주변인으로 디아스포라를 바라보았을 때, 역사에서 무수히 양산된 개인의 기억과 경험들은 이들로 인해 중재되고 협상될 가능성을 지닌다. 현실은 고착되어 있고 규범은 견고하며 중심은 주변을 배척하기 마련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지난한 삶을 자청한 이들은 그 경계에 임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숙명과도 같은 불안정과 탈주야 말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예술로, 작업으로 디아스포라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 



유주 (전시기획자)

 

제인 진 카이젠  https://janejinkaisen.com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기간: 2021.7.29~9.26

장소: 아트선재센터

기획 : 김해주

 

《달의 당김》: 제인 진 , 거스톤 손딩 퀑 2인전 

기간: 2021.10.12~11.10

장소: 아트스페이스 씨

기획 : 안혜경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기간: 2019.5.11~11.24

장소: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기획 : 김현진

참여작가 :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 이 글은 동무비평 삼사가 2022년 주제로 의뢰한 ‘디아스포라’ 관련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출처는 필자와 제인 진 카이젠 홈페이지( https://janejinkaisen.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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