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의 단상들은 린넨 면의 설기들이 드러나 날것처럼 보이나 심적으로부터 시작된 그 무언가들이 조형적인 형상으로 변화된 것처럼 매우 정돈된 풍경이었다. 또한 고유한 회화적 매체성을 가장 탁월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필자를 더욱 흡족한 흥분감 안으로 몰아넣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구도심에 위치한 플레이스막 인천에서 알싸한 바람이 코끝을 건드리는 겨울 박효빈의 개인전 ‘그 밖의 것’이 열렸다. 플레이스막은 연희, 레이저, 막사에 이어 과거 일제 식민시대의 흔적과 현재의 다양한 변화가 공존하는 박물관과 같은 거리인 개항로에 개관한 실험적 예술공간이다. 박효빈 전시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이러한 공간이 인천에 생긴 것이 필자는 무척 반갑다.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경계 없이 예술적 관계를 맺고 삶 속에 스미게 하는 것이 미션이라 명명하고 있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지역기반한 플레이스막이 독자적이라는 장점과 폐쇄적이라는 단점이 공존한 인천에 존재한다는 것이 앞으로 펼쳐낼 다양한 가치를 가진 경험들이 마구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전시 공간에 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대때문인가 박효빈의 작품은 평면 회화이나 절대 평면으로 보이지 않았다. 캔버스 위에 붓질들은 클래식 발레를 보고 있으나 무한하나 절제된 현대무용을 보는 듯했고 그 자리에서 그려낸 실재하는 풍경이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감정의 무언가를 내재한 추상화를 보는듯했다.
"고독한 일상이지만 그 가운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깊이를 사물을 통해 보는데, 마음이 눈을 통해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 사이를 거니는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슬픔을 느껴본 사람만이 일상이 삶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며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느리고 지루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견고하고 잔잔한 일상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유화의 두터움과 엷은 질감을 섞어서 표현하되, 붓질의 결이나 텍스처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색감은 화려한 원색보다는 톤 다운된 모노톤으로 작업함으로써 따뜻한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사진을 전혀 차용하지 않고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리는데 그 순간의 풍경, 사물과 함께 호흡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함께 담는다. 사진을 사용하지 않아서 실제 풍경을 그릴 때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과의 시각적 차이가 생기는데 원근감이나 보이는 폭이 달라져서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리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다." - 박효빈 작가노트 中
작가가 차분한 숨으로 마주했던 그 풍경과 아름다운 무언가의 감정을 상상하며 삐걱거리는 계단을 잠잠한 호흡으로 올랐다. 이 층의 전시장에 펼쳐진 산의 풍경은 처연하면서 단단해 보였다.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어떤 것' 들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고 다독여갔던 그녀의 시간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산과 들판, 구름, 까마귀와 같은 자연물을 사랑과 고독, 위대함, 위로 등에 빗댄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된다. 산을 바라보며 다독였던 수많은 감정들의 선을 절단하고 정리하고 새로운 선을, 면을 수 없는 질문들의 시간들로 캔버스 위에 그려낸 더욱 깊고 넓은 내면의 이야기들이 그녀만의 시각적 언어를 지닌 그림이자 글이 되어 우리에게 펼쳐진다.
우리는 겹겹의 세월 동안 그녀의 캔버스 속 깊고 넓어진 산을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하루에도 수백 번 묻고 또 되묻지만 곧 캔버스 앞에 놓여 마주하게 되는 치열한 투쟁으로 단련된 작가의 삶에 빗대어진 고단한 아름다운 그 밖의 것을 상상하고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 ]
로렌킴
전시: 그 밖의 것
기간: 2018.12.1 - 2018.12.22
작가: 박효빈
장소: 플레이스 막
* 이미지는 '플레이스 막'이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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