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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폐허 속 사물이 이야기하는 것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10.

 

ⓒ 오석근

인천 옹노(擁老)’에서 열린 오석근 작가의 쇼케이스 인천, 근작인 인천을 찍은 시리즈 외에도 그의 지난 작업들 일부와 그에 대한 비평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중 16장의 인천시리즈만을 초점화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의 연작에서, 포스터에도 나온, 보랏빛의 폐허로 남은 산업 현장과 그 뒤로 신기루처럼 서 있는 번쩍거리는 아파트를 함께 찍은 사진을 제하면, 대부분의 사진은 미시적이고 해부학적 시선으로 인천의 재개발 현장의 버려진 사물들과 건물 일부분들, 바닥의 표면들과 같이 사물의 특정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세로가 월등히 긴 프레임의 사진은 표면의 절단 효과를 강조하는데, 세계의 표면을 위로 세워 불안정한 시선의 안착을 형성하거나 빗장을 완전히 열지 않은 듯한 폐쇄된 공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의도적인 프레임 구축/구성은 한편으로 사물과 세계를 정위시키지 않음으로써 곧 보는 이의 위치를 의심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 배경이 잘려나감으로써 사물들은 안정된 세계(배경)를 잃어버리고 세계와의 간극 혹은 시차를 전시한다. 이는 앞선 첫 번째 거시적인 시선으로 포착된 건물들의 대조가 보여주는 사진을 대전제 또는 시작점으로 둔다면, 방향성이 없는 또는 일방향적인 인천 도시 개발의 정책이 만드는 역사의 절연 효과의 혼란스러움(부정적인 것)으로 연장/설명/환원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컨텍스트 차원의 보충을 가하지 않은 채 이야기하자면, 사물의 전시는 오히려 위태로운 균형미를 갖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오석근

 

가령, 가지런하지 않은 저마다 다른 크기의 녹슨 철제 원통 구조물들(#10), 군데군데가 찢겨진 타이어와 타이어 사이로 바닥에 모인 자잘한 어떤 부스러기들(#11), 둑 옆 바다에서 넘실대며 반짝이는 표면 위에 둥실 떠 있는 동그란 밧줄(#12), 타이어 옆/아래 삐죽한 어떤 것들이 담긴 쌀부대(#4) 등은 사진의 구도에 따른 묘한 균형과 존재감을 갖는다. 방치된 것들은 인간(역사)의 시간을 간직한 채 저마다의 정위와 스스로의 리듬을 형성한다. 벤야민을 경유하자면, 기능과 쓸모(사용가치)를 상실한 사물들은 그제야 예술이 가진 전시 가치의 위상을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영향력 바깥에 머무는 자율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이전의 쓸모에 대한 증거로 자리한다.

 

-사물의 동맹으로서 그것들은 우리가 익히 알던 사물이면서 버려진 채 다시 발견됨으로써 낯선 어떤 것제자리를 잃은 그리고 다시 제자리를 찾은이 되며 친숙한 듯 낯선 언캐니를 작동시킨다. 사진은 적당한 거리로 그것을 임시적으로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공간을 이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거대한 현장에서 사물이 가진 이물감을 안전하게 이곳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문명의 이면을 적시한다는 점에서, 불편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동반한다.

 

ⓒ 오석근

결국 사물의 불안정한 배치로서의 사진은 그 현장에 발 딛고 서 있는 작가의 위치까지를 검증하고 있는 것 아닐까. 사진의 좁은 틈, 곧 잘리거나 비틀린 구도는 처음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찬란하고 깨끗한 문명을 겨우 향하고 있지만, 공고한 역사의 시간을 드러내며 일시적인 문명 바깥으로부터 사라지는, 문명의 폐허 안에 머무는 사물들은 잿빛보다 찬란한 동시에 잿빛보다 우울한 어떤 보랏빛 아래 잠긴 채 문명의 빛을 신기루로 지시한다. 어쩌면 이는 앞선 아파트의 운명을 예비하는 공고한 미래의 세계라는 점에서, 폐허의 문명이 있는 공간은 사실상 어떤 지향 자체를 상실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 안의 인간과 이격된 사물들은 어떤 명확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대신, 이전의 역사와 방치된 시간을 각각 증언한다. 폐허의 시간에서 길어 올린 사물 주체에 대한 기록은 분리와 절취를 통한 철저한 거리 두기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 밖을 절단하고 기울임으로써 온전하고도 외로운 사물의 지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에 대한 감정 이입의 측면을 지시하는 듯하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거리는 곧 역사와 이격된 사물로서의 인간을 상정한다. 버려지고 방치된 사물로서의 인간. 방향을 잃고 시간의 소용돌이에서 뱅글뱅글 돌며 완전히 자연화 되지도 못한 어떤 사물이 증명하듯. [ ]

 

김민관

 

 

전시: 폐허 속 사물이 이야기하는 것

기간: 2018.12.02- 2018.2.11

작가: 오석근

장소: 갤러리 옹노

참고 : 2019년 인천문화재단 인천형 예술지원 인천(仁川)_오석근 쇼케이스

 

* 이미지는 필자가 작가에게 제공 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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