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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나다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10.

인천 강화의 전등사 경내에는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011년에 현대식으로 지은 전각 無說殿의 긴 벽면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서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2019101일부터 201912월 마지막 날까지 한국화 작가 한경희의 개인전이 이곳 서운 갤러리에서 열렸다. 한경희 작가는 덕성여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2009사라지는 발견전시회를 시작으로 4차례 개인전과 17차례 단체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이번 전시는 전등사가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실시한 전시지원 공모사업에서 1차로 선정되었으며 전시의 타이틀은 여러 날의 낮과 밤이다.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서 '낮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흑색의 거칠고 단순한 붓질로 표현한 우직하고 곧은 큰 나무가 화면의 중심에 서 있다. 전시회의 첫 마중물 낮밤이 보여주는 인상은 자유롭고 강렬하다. 바로 옆 작품 ’9에서도 같은 에너지를 받았다.

 

입구를 지나 무설전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불보살이 모셔진 법당이 차려져 있어 예사의 법당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갤러리 관람객은 신발 벗을 일 없이 그대로 걸으면서 벽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무설전에 들어서자 12점의 작은 화폭들이 상하 6점씩 나뉘어 나란히 걸려있다. 모두 볼펜 선으로 다양한 구도의 숲과 나무·사람·조형물을 그렸다.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니 각각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감성이 확연하게 다르다. 태양의 따뜻함이 간접적으로 느껴지기기도 하고 시리듯이 춥기도 하다. 한적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하다. 하지만 12점의 작품을 한눈에 보면 조화롭다. 뒤를 이어 어제의 일’,‘마른 오후’,‘10’,‘아직 겨울’,‘가까이 혹은 멀리에 있는 오후’,‘7’,‘밤과 밤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한경희 작가의 지난 전시 작품들을 찾아보면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여 양감을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대상의 형태를 주로 면으로 표현하여 부드러운 조형미를 느끼게 해준다.

 

반면 여러 날의 낮과 밤’ 21점의 작품들의 표현 방법은 단조롭다. 캔버스와 장지를 화폭으로 사용하고 검정 아크릴과 볼펜, 가끔씩 약간의 채색을 더할 뿐이다. ‘낮밤’, ‘9이외의 작품들은 주로 볼펜 선 만으로 구현하였다. 배경과 대상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면을 채우는 선 하나하나가 오롯이 남아있다. 작업 도구의 종류는 단순하지만 세밀한 선들로 풍성하게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 판화나 에칭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주변의 공원, 숲 등을 내밀한 관찰을 통해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창작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겪는 삶에서 소리 없이 지나가는 시간과 공간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나가고자 했다고 말한다. 무덤덤한 일상, 하지만 끊임없이 지나가고 변화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일상을 표현하기에 작가가 선택한 이 소박한 창작방법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익숙하면서도 다양한 우리의 일상 풍경을 차분하지만 명확하게 녹아냈다.

 

한편 이 특별한 전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운 갤러리가 있는 전등사는 하루에도 수많은 참배객과 관람객이 드나드는 유명 사찰이다. 사찰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전시회와 조우하고 감상하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전시를 찾았던 날에도 중년의 부부가 우연히 들어와 작품을 관람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찰이 종교적 공간이 가지는 기능적 한계를 넘어서서 문화적 기능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여러 날의 낮과 밤전시는 조용하고 장엄한 무설전의 분위기와 퍽 어울린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종교적 의미를 투영하여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공간 자체에 대한 한계점이 있다. 서운 갤러리는 무설전이라는 법당에 무리하게 끼어들어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설전의 벽 한 면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관람객들이 오고 가거나 서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좁다보니 작품을 눈앞에서 보기도 하고 멀리서 조망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의 관람이 불가능했다. 특히 12점의 작은 화폭들을 모아서 전시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만 봐야 하는 점에서 아쉬웠다. 또 바로 뒤에서 참배객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어 같이 간 일행과 작품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을 나누기도 어려웠다.

 

예술 작품을 가장 잘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담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서운 갤러리는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사찰을 방문해서 보았다면 또 모를까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찾아간 관람객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앞으로 전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

 

남해인

 

 

전시: 여러 날의 낮과 밤

기간: 2019.10.01 - 2019.12.31

작가: 한경희

장소: 전등사 서운갤러리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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