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을 듣고 리사이클(Recycle)과 업사이클(Upcycle)의 사전적 의미부터 찾아보았다. 리사이클은 버리는 물품을 재생하여 다시 사용하는 일, 업사이클은 재활용할 수 있는 옷이나 의류 소재 따위에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하여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리사이클이 순환이라면 업사이클은 전환이다.
업사이클(Upcycle)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단어로, 더 의미 있고, 멋있게 재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실용성과 예술성이 합쳐져 상업성까지 가미된 업사이클은 자연생태계의 순환구조를 통해 자연환경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마침 지난번 재활용 페트(PET)전시에 이은 또 다른 재활용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곳은 인천 동구 만석동에 있는 ‘문화예술 창작공간 도르리’다.
‘도르리’는 밥을 고루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며, 이름처럼 괭이부리마을로 불리는 만석동에서 공동체를 이뤄온 이삼십 대 청년들이 모여 글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인형도 만드는 창작집단이다. 도르리 공간은 동네 작은 카페면서 가끔 전시가 열리는 전시장이기도 하면서,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도르리에서 열린 전시를 몇 번 관람했었는데 그때마다 주제나 전시 작품들이 소박하고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 작가들이 살아온 마을에서 그곳의 사람들을 담아낸 이야기여서 그랬던 거 같다. 이번 전시도 동네에서 삼촌, 이모로 불리며 도르리와 함께해온 사람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만석동은 버려지는 스티로폼 상자가 화분이 되는 곳, 폐벽돌 파편들이 밋밋한 담벼락의 무늬로 남는 곳, 플라스틱 음료수병이 꽃으로 피어나는 곳, 동네 곳곳을 다니다 보면 아껴 쓰고, 나눠 쓰고, 고쳐 쓰는 것이 일상인 곳이기도 하다. <전환展>은 그중에서도 동네에 숨어있는 재주꾼들이 버려지는 물건들에 솜씨를 부려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되는 ‘전환’의 모습을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전시장에 들어서자 핸드 드립 커피향이 손님을 맞는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전시장에 은은한 조명이 잘 어울린다. 한쪽 벽에는 동네 풍경이 담긴 그림이 걸려있고, 오토마타(자동으로 움직이는 장치로, 기초적인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더해 완성한 움직이는 조형물을 일컫는 말)로 만든 어선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하고 있다기보다 평소에 카페에서 쓰고 있는 소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따로 설명이 없었거나, 전시의 내용을 알지 못했더라면 그냥 편하게 차를 마시고 나왔을 법했다.
<전환>에는 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유동훈 작가의 어선 오토마타 작품은 만석부두의 폐어선을 해체하는 곳에서 뜯긴 나무토막을 주워 와서 만들었다고 한다. 강길재 작가의 나무조명 또한 배를 만들 때 쓰였거나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무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에 작가의 조그만 흔적이 덧대어진 작품으로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수연 작가의 동네 모습을 담은 그림은 쓰임을 다한 쌀 포댓자루에 그려졌다. 우툴두툴한 포댓자루의 표면이 입체감을 살려줘서 소박하면서도 삶이 묻어난 묵직한 느낌이었다. 이광혁 작가는 집안 한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낡은 기타와 버려진 우쿠렐레 악기를 이용해 블루투스 스티커를 만들었다. 도르리 공간에 흐르고 있는 음악 역시 이 스티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쌀 포댓자루가 캔버스로 쓰이고, 바닷가 나무토막은 조명으로, 버려진 기타는 스피커로 만들어졌고, 폐선에서 뜯어져 나온 나뭇조각들은 폐선 오토마타로 전환되었다. 폐선 오토마타의 손잡이를 돌리면 파도가 출렁이도록 만들어져서 나도 모르게 배를 타고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거센 풍랑 속에서 낡은 어선을 끌고 노를 저으며 바다와 싸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폐선되기 전까지 바다에서 고기를 낚아 올리며 살았던 어부들의 삶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감상하는 내내 연신 탄성을 내뱉다가 폐선 오토마타가 들려주는 바닷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 작품 구매까지 하게 되었다.
전시를 많이 관람하는 편이지만 작품을 직접 구입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번 전시는 구매까지 하고 싶을 만큼 생활과 밀접할 뿐만 아니라,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충분히 살려 작품에 담아낸 매력이 있었다. 재활용 전시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예술작품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업사이클링(Upcycling)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쓸모없음을 쓸모 있게’ 하는 전환전시였다. 7평 남짓한 자그마한 도르리 공간에 무심하게 놓인, 기억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쓸모없음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버려진 것들을 발견해낸 작가들의 시선과 이를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한 시간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바쁜 요즘, 이 같은 작품들이 많은 사람에게 소개되면서 만석동 마을의 기억들이 덧대어진 작품들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 ]
청산별곡
전시: 전환_Upcycling
기간: 2019.10.22. - 2019.11.12
작가: 유동훈, 강길재, 정수연, 이광혁
장소: 문화예술 창작공간 도르리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 281-8)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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