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4년 발표된 ‘세계 가치 조사’라는 이름의 통계가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문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인종과 이웃에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스웨덴 2.8%, 미국 5.6%로 집계됐다. 놀라운 건 한국인의 경우 34.1%의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설문 대상자들 중 속마음을 감추었을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도 더 높은 결과치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한국이 이스라엘, 아일랜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적으로 자국민을 해외로 가장 많이 송출한 네 번째 국가라는 점이다. 2013년 기준, 자그마치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726만 8,000명이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주자들을 송출하고 있는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해외 전입자들을 배척하는 희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의 2019년 특별전 <에네켄에 담은 염원: 꼬레아노의 꿈>을 보러 인천으로 향하던 여정에서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얼추 이런 류의 배경지식이었다.역사적으로 한인들의 첫 해외 이주로 일컬어지는 1903년 하와이 이주를 시작으로 멕시코 및 쿠바로의 이주가 숨가쁘게 이어지는데, 전시는 바로 이 멕시코・쿠바의 한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런데 쿠바 한인들의 이야기까지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먼저 멕시코를 경유해야 한다. 그것이 전시의 1부 ‘바다 끝 희망을 찾아’ 섹션의 내용이다.
나라가 기울어가던 1904년, 12월 24일자 《황성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린다.
“아메리카 북쪽의 멕시코는 지금 미합중국과 같은 나라로 문명이 부(富)한 강국으로 물과 땅이 좋고 기후가 온난하여 장질부사 같은 역병이 없고 세계가 공히 알다시피 부유한 사람이 많고 가난한 사람들은 별로 없음.”
하지만 이 말들은 거짓이었다. 실상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주협회가 고용한 국제 이민브로커가 일본의 식민회사와 담합하여 취업 사기를 친 것이었다. 4년간의 계약 기간 동안 높은 보수와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한다던 약속도, 대한제국 정부가 공히 승인한 사업이라는 말도 모두 사실과 달랐다. 당시 대한제국은 사실상의 국권을 상실한 유명무실한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1905년 봄, 1,033명의 한인들이 멕시코행 배에 오르고 만다.
멕시코의 한인들은 불볕더위와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 등 사실상 노예와 같은 처지에 내몰렸다. “손에는 하루도 피가 멈출 날이 없었고 가시에 찔려 항상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으며 감독들은 채찍으로 때리기 일쑤였다.” 당시의 회고다.
1909년, 4년의 노동계약 기간이 끝이 나고 드디어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멕시코의 한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처지가 못 되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 이듬해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국권마저 빼앗기고 만다. 이는 머나먼 타국 멕시코에서 되돌아갈 뿌리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주요한 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멕시코 각지에 한인회를 설립하고 일제의 부당함을 성토하는 등 다양한 민족 운동에 앞장선다.
전시의 2부 ‘다시 바다를 건너’에서는 쿠바 한인의 역사를 조명한다. 쿠바 한인의 역사는 멕시코 한인들의 궤적과 맞물린다. 당시 쿠바는 사탕수수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는데, 1920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과 계약을 맺은 멕시코 한인 300여 명과 함께 유카탄 반도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타이밍에 급격한 불황에 빠져든 쿠바 사탕수수 산업의 여파로 한인들의 고용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또 다시 쿠바 마탄사스 지방의 에네켄 농장으로 향하고 만다. 돌고 돌아 다시 에네켄 농장이었던 것이다. 얄궂은 운명이다.
에네켄은 선인장의 일종으로 잎이 아주 두꺼우며 양 옆으로는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들이 솟아있는 섬유 식물이다. 조금 더 생각을 밀어붙이면 에네켄은 이주 한인들의 수난과 억압의 상징이 될 것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이번 전시 타이틀에 이 ‘에네켄’이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부각되어 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에네켄의 함의가 좀 더 확장되는 듯 보여서인데, 이제 에네켄은 억압과 수난의 기억들을 넘어 그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 내지는 결기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역사는 곧 승자들의 역사’라는 말은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역사는, 승리하지 못한 자들의 시간을 기어이 기록/기억하고 감내하기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마련한 기획전시 ‘에네켄에 담은 염원, 꼬레아노의 꿈’은 이들의 삶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은 그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멕시코・쿠바 한인들의 이민과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측이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남긴 말이다. ‘멕시코・쿠바 한인들의 독립운동’에 초점을 둔 전시라는 의미인데, 전시의 3부 ‘조국 독립의 꿈’에서는 멕시코와 쿠바의 다양한 한인 민족운동가들과 그들의 활동이 소개된다. 2019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더없이 시의적절한 기획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례로 쿠바 한인 임천택의 경우를 통해서 잘 증명되고 있다. 그는 두 살 때인 1905년 홀어머니 품에 안겨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건너와 1921년 쿠바로 이주한 뒤 평생을 한인들의 결속과 독립운동에 매진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를 포함하여 30여명 남짓한 마탄사스 한인회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 1937년부터 해방을 맞는 1945년까지 꾸준히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송금했다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남아 있기도 하다.
멕시코・쿠바 한인들의 역사는 현재 6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현지인들과의 토착화 과정에서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옅어진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1960년대를 전후하여 멕시코와 쿠바 각 지역에서 한인회들의 명맥이 끊겼고, 특히 1950년대 공산 혁명을 거친 쿠바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고국과의 오랜 단절기가 지속된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탈냉전 시기를 기점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멕시코와 쿠바 곳곳에 한인후손회가 조직되면서 한국과의 연결고리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인’이라고 하는 동일성과 차이의 자장 안에서 그렇게 유카탄 반도와 카리브해 ‘꼬레아노’의 역사는 현재에도 계속된다.
임천택에게는 임은조(헤로니모 임)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달리 그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쿠바 혁명에 참여한 사회주의자였다. 나라 잃은 설움이 아버지 세대 전체를 하나로 강하게 조건지웠던 것과 달리 해방 세대였던 아들에게는 눈앞에 당면한 쿠바의 어지러운 정치적 현실이 보다 절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달라진 세대가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 1세와 이민 6세 사이에 가로놓인 차이만큼 말이다. 멕시코・쿠바 이민 1세에 집중하는 이번 전시와 더불어 헤로니모 임의 사례를 겹쳐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리는 이유다. 멕시코・쿠바 한인들을 보다 너른 시야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때마침 헤로니모 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전후석 감독, 2019)가 상영관에 걸려 있다. [ ]
이종찬
전시: 에네켄에 담은 염원: 꼬레아노의 꿈
기간: 2019.10.25 - 2020.02.16
장소: 한국이민사박물관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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