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와 이산의 경험이 인간 정체성을 구축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현대 다큐멘터리의 주요 의제들 중 하나와 연결된다. 초국적인 세계 체제하에서 이주 및 문화적 연속성, 불연속성의 경험을 다루는 최근 다큐멘터리들은 영상 사회학적인 민족지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식민주의의 영향을 다양한 맥락으로 제시하는 영화들 가운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재의 정치, 사회적 구조하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새기는 방법으로서 다큐멘터리를 활용하는 작품들이다.
반(反) 식민주의 다큐멘터리 <우리>(Nous, 2021)는 서유럽 사회 안에서 인종주의적 권력의 역학관계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1960년대 유럽으로 이주한 세네갈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여성 감독 알리스 디옵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진 프랑스 시민의 지위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백인, 흑인, 아랍 파리지앵의 다양한 습성을 관찰한다. 명백한 인과적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엮는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은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가진 시각과 다르다. 퐁텐블루에서 사슴을 사냥하는 백인 사내,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파리 방리유 지역을 횡단하는 열차를 경유한 서사는 아프리카 이민자에게 이동한 뒤 노동의 사회, 경제적 의미에 무지한 이민자 정비공, 감독 자신의 가족 아카이브 기록, 착취당하고 보호받지 못한 채 소외된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인종차별과 이민 위기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차이보다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 더 나은 기회를 찾는 이민자의 꿈과 희생을 무시하는 입양 가정을 비판하면서 민족적 분노와 아이러니를 섞는다.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알리스 디옵은 장 루슈와 우스만 셈벤의 전통을 따르지만 디아스포라에 대한 그녀의 민족지학적 고찰은 가족-공동체의 역사와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차이를 기록하는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디옵은 진보적인 백인 작가 피에르 베르구니우를 초청하여 작가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는 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디옵의 부모 세대에게 허용될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이 가질 수 없었던 삶이 후속 세대에게 제공되고 있음을 전시하는 행위로 제공된다. 디옵 자신은 식민지 역사를 가진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프랑스와 세네갈 사이에서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민자의 경로, 오고 가는 궤적, 현재 위치 등에서 제기되는 복잡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우리>의 성취는 충분하다.
<잇 이즈 나이트 인 아메리카>(It Is Night in America, 2022)는 브라질의 현대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아나 바즈의 실험적인 다큐멘터리이다. 촬영지는 각박한 도시 환경 아래에서 살아남은 수백 종의 동물이 있는 브라질의 한 동물원이다. 그곳에 서식하는 갈기늑대와 올빼미, 사바나 여우, 카피 바라, 카라카라 매는 폭력과 강제이주의 역사에 의해 쫓겨난, 이 도시의 원래 거주자들이다. 바즈의 많은 영화들에서처럼 여기서도 동물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는 바라보는 주체들로 설정되어 있다. 동물들이 우리 도시를 침범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서식지를 점유하고 있는가? <잇 이즈 나이트 인 아메리카>는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비선형적인 접근으로 다양한 신체, 영토, 종(種)에 대한 식민주의의 뚜렷한 영향을 탐구한다. 16mm 필름으로 작업한 결과 노출 부족으로 인한 푸른색 이미지들이 주조를 이루는데, 이는 밤 장면을 낮에 촬영하기 위해 촬영 시간, 필터를 선택하는 기술 조건을 의미하는 영화 용어 ‘아메리카의 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어두운 아방가르드 다큐멘터리는 길게 이어지는 고정 쇼트와 팬을 활용하여 영화감독, 카메라, 피사체 그리고 소리와 이미지 사이의 전통적인 힘의 역학을 전복하는 아나 바즈 특유의 실험작으로 동물들의 이주와 소외의 서사를 상상하며 인공적인 건축물들이 압도하는 도시의 지정학적 정체성에 대해 비판한다.
두 여성 감독의 접근 방식과 달리 이주민의 정체성 바깥에서 외재적 목소리를 통한 접근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들도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 다큐멘터리 감독 실뱅 조지의 <옵스큐어 나이트 - 와일드 리브스>(Obscure night - Wild leaves(The burning ones, the obstinate), 2022)는 오늘날 탈식민주의, 세계화된 세계에서 국경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표현을 제공하면서 순회, 이주, 순환, 탈영토화 및 재영토화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모로코의 스페인 영토인 멜리야라는 점이지대이다. 묵시록적인 디아스포라와 유럽의 이주 정책, 서구와 적대적 혹은 대립적 의미로 해석되는 아랍-이슬람의 충돌을 보여주는 완충 지대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을 잇는 육로 국경이 있는 이곳에서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대개는 미래에 대한 열망과 일할 힘이 남아 있는 소년들이다)이 유럽으로의 이주를 모의한다. 밤마다 비밀스러운 경로를 타고 이어지는 잠행, 언제 도달할지 알 수 없는 여정의 기착지들에서 소년들은 나뭇잎으로 만든 배를 띄운다. 험난한 바닷길을 표표히 떠가는 나뭇잎 배의 운명처럼 저들의 앞날은 캄캄하고 위태롭다. 그러나 북 아프리카 태생의 이주민들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집념 외에는 잃을 것이 없다. <옵스큐어 나이트 - 와일드 리브스>는 밤의 어둠을 밝히고 불타오르는 사람들의 행적에 동행한다.
정치적 의제에 대한 투지와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을 결합한 문제작들을 만들어 온 실뱅 조지는 서유럽에 산업 노동자로 유입되어 온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무려 4시간 25분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으로 구성한다. 사회정치적 및 역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강력한 내러티브와 형식적 모험을 통해 추방, 급습, 구금을 포함하여 이민자들이 직면한 고뇌와 투쟁을 조명한다. 르포르타주와 시적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방법론을 절묘하게 결합한 영화는 대상에 대한 경이적인 밀착성을 유지한 채 대립과 갈등의 영역으로 인식된 장소의 지정학적인 의미를 탐구한다. 암울한 흑백 이미지로 구현된 다수의 장면들은 미추(美醜)의 경계에서 ‘마그레브’라는 땅의 끝에 선 자들의 실존적 상태를 증언한다. 여정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추진하며, 질문과 요청, 통과의례를 상징한다. 혈통, 계보, 기억 탐색을 재발명하는 영화는 세계에서 변화하는 다형성 아프리카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주관적인 목소리와 관점에 따라 시공간의 경계뿐만 아니라 현실, 다큐멘터리, 허구를 넘나든다.
주목할 것은 현대 다큐멘터리를 탐구하는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주체가 프랑스인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적 불연속성이라는 주제가 창작자와 그가 다루는 대상 간의 관계에서 성립된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유럽 다큐멘터리 지형 안에서 모험적인 길을 가고 있는 실뱅 조지는 1세계 예술가가 3세계 시민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이민자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수록하는 대신 이민자의 개별 기관과 아프리카에서 서유럽으로의 대량 이주로 이어지는 글로벌 시스템 조건을 강조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관객들이 이민자들이 떠나는 세계를 인식하고, 특정하게 묘사된 투쟁에 몰입하며, 연민과 연대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성찰하게 된다. 특징적인 것은 이민자들의 조건을 이미지화하는 영화의 문체 전략이다. 블리키한 흑백으로 찍힌 이미지들은 필름 누아르의 시각적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뿌연 하늘과 검은 바다의 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아침과 낮을 대조하면서 새로운 누아르로서 블랙 디아스포라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지점을 보여준다.
현대 다큐멘터리 형식의 확장 경향은 다양한 디아스포라 주체들이 그들의 언어와 장르, 스타일에 따라 경험을 표현하고 이 경험에 참여하는 이주민 또는 그들의 공동체를 대표하기 위해 어떤 예술적 형상화의 방법론을 적용하고 있는지와 관련하여 탐구의 지점을 제공한다. 동시에 저들은 현대 다큐멘터리의 주요한 의제, 이를테면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지시 대상과 맺고 있는 관계, 포스터 다큐멘터리적인 증식과 분화, 반사적이고 수행적인 다큐멘터리의 모드 등을 쟁점화한다. 역사와 기원, 거주 등의 복잡성을 품고 이동하는 주체성이 다큐멘터리의 수사학 안에 삽입되는 양태는 연대기적 시간의 질서를 거스르며 과거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 ]
장병원 (영화평론가)
우리 (Nous)
개봉년도 : 2021
감독 : 알리스 디옵
제작국가 : 프랑스
잇 이즈 나이트 인 아메리카 (It Is Night in America)
개봉년도 : 2022
감독 : 아나 바즈
제작국가 :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
옵스큐어 나이트 - 와일드 리브스 (Obscure night - Wild leaves(The burning ones, the obstinate))
개봉년도 : 2022
감독 : 실뱅 조지
제작국가 : 프랑스, 스위스
* 이 글은 동무비평 삼사가 2022년 주제로 의뢰한 '디아스포라' 관련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출처는 국제영화제 종사자들을 위한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 ‘Festival Scope(https://www.festivalscope.com/)’입니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의 힘을 되찾기 위한 몇 가지 사유 (0) | 2022.12.11 |
---|---|
장소의 기억: 2022 부산비엔날레에서 본 디아스포라 (0) | 2022.12.11 |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동네방네비프'에 대한 비판적 고찰 (0) | 2022.12.11 |
지역으로의 일시적 개입 (0) | 2022.12.11 |
물값을 달라고 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 (0) | 2022.09.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