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한 다른 도시에서 인천까지, 한동안 매일 아침을 바쁘게 오가며 인천1호선 역사 내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전광판에 나오는 도시 홍보 영상을 자주 보았다. 역동적인 화면을 연출한 영상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인천은 ‘최초’의 무언가가 넘쳐흐르는 도시이며, 그 슬로건으로 ‘모든 길은 인천에서 시작되었음’을 제시한다. 사람과 사물이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는 모든 것이 들어오는 동시에 어디론가 다시 나가는 도시인 인천은 외부인이 바라보기에 언제나 흘러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인천은 스스로 만든 경로를 거쳐 나가고 마침내 ‘다시 돌아오는’ 곳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었다.
이러한 열망을 품은 도시에서, 한국 이민사 ‘최초’로 공식 기록된 1902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 1세대 사례는 이후 이민사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주요 계기 1이자 도시가 내세우는 가치를 수립하는 데 중요한 사건이다. 그로부터 120주년이 된 올해 인천은 10월 5일 세계 한인의 날을 전후로, 이민의 역사를 품은 도시로서 갖는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주와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박물관/미술관 전시를 열었고, 디아스포라 120년 영상 제작,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축제를 개최했다. 2그렇다면 ‘기념’이라는 취지 아래 이들이 끝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천아트플랫폼 전시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는 하와이로 떠난 기록에 맞춰 하와이에 정착한 한국계 이민 1세대의 주변화 된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낸 게리 팩(Gary Pak)의 소설 『종이비행기』(A Ricepaper Airplane, 1998)에서 제목을 빌려와, 타의에 의한 강제 이주로 시작해 현재의 자발적 이주의 자취를 따라간다. 전시는 18인의 시각예술가를 “어떤 형태로든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민족 혈통”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어 본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의 의미로서 디아스포라를 끌어낸다. 디아스포라로 묶인 이들의 작업에서 —모국에 대한 기억, 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와 연민, 개인 혹은 집단의 슬픔과 그리움, 역사에 대한 분노와 고발— 이라는 4가지의 정서를 짚어내는 동시에 다양한 매체로 발화하는 차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전시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도 마찬가지로, 각 나라에 형성된 한인사회의 지나온 과거와 현재를 사진으로 훑고 ‘화합’을 위한 노력을 조명하며 마무리 맺는다. 3형식은 다르지만 두 전시 모두 하와이 이민사에서 출발해 다른 국가로 이동/이주하게 된 여러 사례를 보여주고 이들 사이의 유사성을 짚으며 ‘재외동포가 겪는 어려움과 아픔, 그 안에서 잃지 않은 삶의 의지, 이로써 일궈낸 성공 서사’를 차례로 담아냈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 안에서 ‘일궈낸 성공’을 조망하는 일련의 전시에서 두드러지게 반복되는 단어는 ‘돌아옴(귀국)’이다. 이는 한 개인이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가리고 ‘모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어딘가를 향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공동체를 강조한다. 결국 그들이 영광스럽게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전시는 모종의 의미를 획득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의 참여작가 모두에게서 “떠나온 땅에 대한 감정이나 자취가 담겨 있음”을 발견한 기획자의 시선과 “모국을 떠났던” 예술가와 그의 작업이 “모국으로 돌아와 전시회란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인” 점을 전시의 기획 의도로 밝힌 서문의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단일 민족이라는 환상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단지 아픔의 역사로 환원시키는 말하기는 종종 그 안에 내재된 개별성과 혼종성을 함묵하여 논의를 축소시키고 이주에 대한 낭만과 애도를 강요하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이를 구성하는 전시 방식은 이들을 어떻게 연결 짓고 대화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보다는 그저 작품의 나열에 최선을 다하고 묶어낼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데에 힘을 쏟는다. 반면, 가로지르고, 초월하고, 횡단하는 의미의 트랜스-로컬리티 안에서 디아스포라는 ‘근본적으로 같은 영토에 속해 있거나 땅과 문화적 유대감이 동일시를 가능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근원이라는 생각을 없앰으로써 민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4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 아닌, 과거 근대 민족국가에서 배제해온 목소리를 되살리고 경계 사이를 넘나드는 연결과 관계를 살펴야 할 새로운 디아스포라 논의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산발적으로 일어난 한국이민사 120주년 기념 전시와 행사가 막을 내린 이후 “예술의 힘은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 서문의 마지막 대목을 다시-읽고자 한다. 단지 피상적 물음의 나열에서 나아가 단정적 판단을 지연시키기. 정체성의 근본 찾기에 기반한 이분법적 구분을 탈피하여 경계가 허물어지고 변형되는 틈을 들여다보고 재구성하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섣불리 고통이라 명명하고 이내 뭉클한 감정으로 포섭하기보다,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뒤엉킨 도시를 그리고 이에 발 딛은 우리가 직면한 장소를 들어다보기. 그리하여 온몸으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 보도록 하는 여러 방식들 5앞에 서서 예술의 지닌 힘과 가능성을 회복하기. 이로써 ‘예술’을 앞세워 구축하고자 시도한 도시의 열망을 무너뜨리고 다음 장으로 나아갈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스스로 디아스포라의 도시임을 표방하는 인천이 돌아보아야 할 예술의 일이다. [ ]
반달 (전시기획자)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
기간 : 2022년 10월 6일 목요일 - 2022년 11월 22일 화요일
장소 : 한국이민사박물관 야외전시장 및 지하 특별전시장
후원 : 연합뉴스, 재외동포재단
코리안 디아스포라 – 한지로 접은 비행기
기간 : 2022년 9월 30일 금요일 - 2022년 11월 27일 일요일
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중앙광장
참여작가 : 갈라 포라스-김, 글렌 모리, 줄리 모리, 김수자, 김희주, 다프네 난 르 세르장, 민영순, 박유아, 박이소, 백남준, 윤진미, 이가경, 이영주, 이현희, 제인 진 카이젠, 최성호, 케잇 허스 리, 하전남
주최 : 인천광역시
주관 : (재)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 이 글은 동무비평 삼사가 2022년 주제로 의뢰한 '디아스포라' 관련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 양진채, "하와이·인천 미술교류전에서 이민사박물관까지", 『인천in』, 2022.11.24., 문화기획. [본문으로]
- 김지혜, "하와이 이민史 시작 도시, 세계 한인의 대표 도시로", 『경기일보』, 2022.11.06., 인천. [본문으로]
- 이윤옥, "코리아 신화 다시 쓰는 ‘해외이민사’ 전시 막올라", 『오마이뉴스』, 2022.10.07., 민족‧국제. [본문으로]
- 비린더 S. 칼라 ‧ 라민더 카우르 ‧ 존 허트닉, 『디아스포라와 혼종성』, 에코리브르, 2013, p.67. [본문으로]
- 진은영, 『문학의 아토포스』, 그린비, 2014, p.2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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