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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지역으로의 일시적 개입

by 동무비평 삼사 2022. 12. 11.

20세기 후반 이후의 유례없는 세계적 팬데믹의 발생은 지금까지 당연하다 여긴 삶의 방식들을 바꾸어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시절이 한때였듯, 모든 물리적인 이동에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지난 3년간의 고된 여정은 도리어 어떤 반작용으로써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대신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더욱 활성화되었고, 새로운 기술과 프로그램을 시도하며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장거리 이동의 제약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직장이 있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지역, 지역 공동체, 로컬리티 등에 관련한 연구와 토론의 장이 보다 활발하게 열렸고, 지역을 기존의 개념과는 다르게 접근하여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아르코미술관의 2022년 주제기획 전시 일시적 개입은 이러한 움직임에 주목해 지역의 다양한 이슈에 주목한 예술 프로젝트를 한데 모아 구성한다. 행정구역으로 구분되는 고정적 로컬 개념이 아닌, 지역에서 벌어지는 지리적역사적현재적생태적 관계들을 다면적으로 살펴본다. 작가와 기획자, 연구자,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총 14팀의 작품과 프로젝트는 미술관 1, 2층과 스페이스필룩스에서 펼쳐진다. 이들은 국내외의 지리적인 지역뿐 아니라 도시와 바다, , 기지촌, 이주 공간, 그리고 가상의 레지던시 등을 트랜스-로컬리티로서 재사유하고 공유하며 전시장 속에 유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코무니타스 구부악 코피, <포스 론다 프로젝트>(벽면), 2022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면 색색의 천과 함께 도미노 게임을 위한 작은 테이블이 놓인 공간이 열린다. 인도네시아 솔록(서부 수마트라 바라트주)에서 활동하는 예술 및 미디어 지식 개발 연구소 코무니타스 구부악 코피(Gubuak Kopi Community)’가 오늘날 지역 문제를 다루기 위한 포스 론다(Pos Ronda)’에서 활동해 온 과정의 기록을 보여준다. 지역의 여러 사회정치적 문제를 주민과 함께 고민하며 나아가려는 이들의 활동은 벽면에 부착된 사진, 영상, 트로피, 피켓 일정, 달력, 기타 기록물을 캄푸앙(kampuang, 마을)’, ‘브이로그’, ‘환경’, ‘사회적 이슈’, ‘식물등의 키워드로 엮어 맥락을 형성한다. 이들은 지역 공동체의 건강한 관계망을 구축하고 확장하기를 시도한다.

 

실험실 C, <델타 스페이스>, 2022

한편에서는 인간 외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를 들여다봄으로써 지역을 다시금 체감해보려는 사례들을 선보인다. 숲 큐레이터 박미라와 아트 디렉터 창파의 협업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실험실 C는 주로 식물’, ‘지역’,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부산의 산과 바다를 다시-감각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그간의 리서치 과정을 이번 전시에서 <델타 스페이스>로 정리하여 풀어낸다. 소요의 시간(2019, 2020), 부유의 시간(2021), 절영로 식물오감,(2021), 1제곱미터의 우주(2022)는 모두 부산의 구봉산, 수정산, 영도, 다대포 등의 지역을 오랜 시간 연구한 프로젝트로, 축적된 기록을 모아 영상, 개념도, 뷰마스터, 지도 등의 방법으로 연결을 시도한다. 실험실 C는 부산에 살아온 존재를 인간에 한정하지 않고, 식물과 숲, 해양생물과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각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중 날카롭게 긁는 소리로 이목을 끄는 정만영 작가의 <촉각적 소리>(2020)는 수정산 등산로를 따라 맨발로 걸으며 느낀 산의 질감을 소리로 연결하고, 등산로를 따라 걷는 사람의 몸을 레코드판 위에 올려진 바늘로 바라본다. 맨발로 경험했던 촉각적 소리를 바탕으로 석고를 굳혀 만든 회전판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전시장 안에 이질적인 소리를 퍼뜨린다.

 

 이러한 실험실 C의 리서치 베이스 프로젝트와 다르게 다이애나랩의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2022)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특정 지역이 아닌, 사회적 소수자의 일상과 연결되는 장소와 감각의 부분들을 느슨한 속도로 이야기한다. 1층과 상반된 어둑한 분위기의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이 영상은 수어와 자막, 음성해설이 함께한다. 그러나 각 언어가 갖는 속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순간순간의 간극은 영상에서 재생되는 이들의 이야기에 미세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가게의 지도를 만드는 차별없는가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영상은 다이애나랩이 지역 내 소수자들이 감각하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담았다. 2시간 40분의 긴 영상이지만, 빠른 속도의 삶이 학습된 도시의 비장애인인 나의 속도를 늦추고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보폭을 맞춰본다.

 

젤리장x띵크앤메이크, <랜덤 이웃>, 2022

스페이스필룩스에 마련된 젤리장x띵크앤메이크의 <랜덤 이웃>(2022)에서 산책하는/고양이키워드를 뽑으며 또 하나의 일시적인 이웃이 되어 전시장을 나선다.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들이 머무르고 떠나는 복합적인 장소로서 지역을 바라본 예술가들은 오늘날 행정구역으로 구분된 한정된 곳으로 지역을 바라보지 않는다. 유명인과 명소를 앞세워 지방소멸을 막으려는 단면적인 지역 홍보나, 지자체에 의한/위한 단발성 연구와 문화예술 프로젝트에서 나아가, 로컬리티를 재사유하는 고민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들의 작업이 대부분 아카이브 전시 형태를 취한 점이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프로젝트 과정을 모두 아울러 설명해야만 그들의 예술적 실천이 전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더 다채로운 언어와 방법론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

 

 

수리 (편집자)

 

 

 

 

2022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 Local in the Making

기간 : 2022년 11월 18일 금요일 –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장소 : 아르코미술관 제1,2전시실, 스페이스필룩스

참여 : 거제 섬도, 권은비, 김현주 x 조광희, 노뉴워크, 다이애나랩, 로자바 필름 코뮨, 브레이크워터(최영숙 x 태이), 스몰 바치 스튜디오, 실험실 C, 예페 하인, 오버랩, 우 말리 x 밤부 커튼 스튜디오, 젤리장, 코무니타스 구부악 코피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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