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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물값을 달라고 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

by 동무비평 삼사 2022. 9. 25.

(강/바다) 물을 사고파는 이야기

 

우리는 강물을 사고팔았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선달이라는 인물이며, 김선달이 대동강을 거래했다는 이야기는 그이에 대한 설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김선달은 어느 날 평양의 대동강 앞에서 물을 길어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척 연기를 한다. 이를 본 돈 많은 외지인은 의아해하며 뭘 하는지를 물었고 김선달은 이 강이 자기 소유라서 이곳의 물을 팔고 있다고 한다. 이에 욕심이 생긴 외지인은 큰돈을 주고 김선달에게 대동강을 산 뒤, 이튿날 물을 길어온 평양사람들에게 물값을 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그 외지인이 미쳤다고 여길 뿐 돈을 내지 않았으니, 그제서야 외지인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Pete, Drawing map of Forkonomy(), 2020 © Pete

 워크숍 형태의 프로젝트 <포코노미()>(Forkonomy())에는 마찬가지로 물을 거래하는 과정이 등장한다. 홍콩 출신의 위니 슌(Winnie Soon)과 타이완 출신의 리쯔통(Lee Tzu-Tung)이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포코노미()>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지역, 남중국해의 소유권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퀴어링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남중국해에서 길어온 몇 통의 바닷물을 워크숍 장소 가운데에 두고 시작된다. 작가들은 워크숍 참여자들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남중국해의 현재에 대하여 소개한 뒤, 막바지에 작가들이 길어온 이 바닷물을 구매할 것인지, 구매한다면 얼마에 얼마나 소유할지, 그리고 소유의 방식은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각주:1]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버전은 모두 타이완에서 이뤄졌으며, 세 번째 버전은 올해 8월 말에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위니 슌&리쯔통, 서울 아트랩반에서의 <포코노미()> 워크숍 전경, 2022, 사진. 이영석 &copy; ADL

 앞선 두 버전의 <포코노미()>와 다르게, 서울 버전의 <포코노미()>는 남중국해가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에서 이 로컬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차이점을 가진다. 이 워크숍을 한국에서 진행하고자 두 작가를 초청했을 때, 작가 위니 슌과 리쯔통의 첫 질문은 한국인이 남중국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에게는 아쉬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 역사에서 바다란 연안해역 이상의 의미로 확장된 사례가 많지 않고, 현대사에서는 그 역할이 훨씬 증대되었음에도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밀접하게 인식되는 공간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이다.[각주:2] 더군다나 중국과 일본 외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떨어지는 한국에서, 남중국해라는 바다는 복잡한 지정학적 맥락은 고사하고 그 위치조차 제대로 모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워크숍에서도 바다나 강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참여자들이 많았음에도 대부분은 남중국해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남중국해라는 로컬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이 관광자원이나 스펙터클한 보도사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로서 연결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서, 우리는 로컬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화폐라는 상상력

 

<포코노미()>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참여자들이 계약서를 쓰고 소액이지만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바닷물을 구매하는 ‘바다 거래’이다. 즉, 단지 물을 사고판다는 점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바닷물을 사고판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 지점은 앞서 소개한 김선달 이야기와도 맞닿는다. 처음에 외지인이 김선달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한 이유도 평양사람들이 외지인을 비웃은 이유도 물을 사고팔려 했다는 점에 있지 않고 대동강 바로 앞에서 물값을 받으며 강의 소유를 주장했다는 데에 있다.[각주:3] <포코노미()>와 김선달 이야기는 ‘로컬’(정확하게는 로컬의 강과 바다와 같은 자유재)에 화폐가치를 부여하면서 발생한다. 왜 화폐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우리는 화폐가 가치를 매개하고 가치를 축적한다는 것을 안다. 화폐는 우리에게 이것과 저것을 가격이라는 기준을 통해 비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이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이것의 범위와 저것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그러므로 화폐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힘, 일종의 상상력인 것이다. 평양에 방문한 외지인이 당황했던 것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지 않을 상황, 즉 자유재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김선달의 주장이었지만, 이내 거래 액수의 가치를 경유함으로써 대동강이라는 로컬을 인지하고 욕망하고 이내 소유한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화폐가 대동강이라는 로컬을 뛰어넘어 조선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비유적 보증으로, 로컬들의 가치마저 매개할 수 있다는 상상력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위니 슌&리쯔통, 서울 아트랩반에서의 <포코노미()> 워크숍 전경, 2022, 사진. 이영석 &copy; ADL

 <포코노미()>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첫 번째 워크숍에서 합의된 남중국해 1밀리리터당 가격 1.61 타이완달러라는 화폐가치와 자신이 직접 계약서상에 적어넣는 원화 가치는 한국의 참여자들에게 남중국해라는 로컬과 그 가치를 매개시켜버리는 상상력이 된다. 오늘날의 강화된 금융자본주의와 한국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이 상상력을 통해, 참여자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계약서에 스스로 얼마만큼의 바닷물을 얼마에 구매할지 결정하도록 쓰는 과정에서 남중국해라는 로컬과 강제로 마주하게 된다. 그 행위의 적절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시적으로 양자(참여자와 로컬)는 화폐가 마련한 테이블 양쪽에 자리하게 된다. 화폐는 바다를 잘 몰라도, 남중국해라는 로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일단 참여자를 가격이라는 가치를 통해 즉각적으로 경험시키는 상상력으로 작동한다. 화폐가치가 주선한 남중국해의 맞은편에서 참여자들은 일단 자유재도 로컬도 감히 인지하고 욕망하고 소유하는 상태가 되어보는 것이다.

 

물값에 대한 두 번째 상상력

 

물론 한국의 참여자들은 평양의 외지인처럼 순진하지도 않고 욕심이 많지도 않았다. 이들은 로컬의 자유재가 금융시스템 안에서 거래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우회하거나 약화하거나 거절했다. 남중국해라는 바다가 워낙 넓어 그것을 모조리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1밀리리터라는 작은 용량과 그 가격을 통해 대부분의 참여자가 작게나마 자신에게 당도한 로컬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규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 중 한 작가는 남중국해의 일부를 구매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 앞바다에 자신이 구매한 이 미량의 로컬을 흘려보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때 남중국해는 거주지 인근의 해안과 연결된 바다로 다시 상상된다. 이 바다는 금융시스템이 보증하는 상상력을 넘어 기후위기로 피폐해진 전 지구적 현상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연대의 의무를 지는 로컬에 대한 상상력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다른 참여자인 한 활동가는 자연물의 거래는 그 자체로 이루어질 수 없다며 구매를 거절하면서도 자신에게 바닷물의 일부를 무상으로 달라고, 줄 수 있다면 자신이 이 바닷물을 가져가서 지인들에게 남중국해의 현실을 알리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거래 행위를 거절하고 소유가 아닌 공유를 주장하는 모습은 일견 저작권을 비판하고 자유로운 정보공유를 주창하는 급진운동으로서의 해적당(Pirate Party) 활동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요구는 오늘날까지 지정학적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어느 나라의 영해냐를 따지는 분쟁지역으로서의 남중국해를 활동가의 언어망 안에 자꾸 걸려들게 만드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물값을 달라는 요구의 첫 번째 상상력은 분명 얄팍하다. 화폐라는 상상력은 로컬을 지금 즉각적으로 비교하도록 강요하고 감히 욕망하고 함부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물값이 다그친 만남이 두 번째로 이어질 때, 우리는 우리의 현실 가치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로컬을 향해 어떤 질문을 흘려보내거나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것이 <포코노미()>에서 물값을 달라고 하는 이유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바닷물을 사고팔았다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이문석 (독립기획자)

 

 

포코노미() Forkonomy()

일시 : 2022년 8월 28일 일요일 13:00

장소 : 아트랩반

작가 : 위니 슌(Winnie Soon), 리쯔통(Lee Tzu-Tung)

 

Against the Dragon Light (ADL) 

인스타그램 @against_the_dragon_light

기획 : 이문석, 박유진 

문의 : againstthedragonlight@gmail.co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이 글은 리서치  프로젝트 <Against the Dragon Light>의 일환으로, 위니 슌, 리쯔통 작가의 <포코노미()> 프로젝트에 대한 리뷰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1. 프로젝트의 제목처럼, 이 워크숍의 결과는 참여자에 따라 가지치기하듯 갈라졌다. 첫 번째 워크숍에서는 남중국해의 소유가 협동조합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과 밀리리터당 1.61 타이완달러(2022년 9월 18일 기준, 한화로 71.42원)로 고정하는 것에 대하여 합의하였고, 두 번째 워크숍에서는 협동조합 소유의 남중국해 1밀리리터 바닷물을 NFT화 한 뒤,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컴퓨터 코드로 쓰인 계약서 에디션 1만 개를 발행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본문으로]
  2. 오랫동안 한반도는 해양문명보다 대륙문명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바다는 중앙집권적 정부의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세, 통신, 안보를 위한 연안 루트 위주로 사용되었다. 남한사회의 바다에 대한 인식은 분단 이후 국경이 섬처럼 변하고 자유주의 해양세력권의 영향 아래 정치경제적으로 극동지역 반공기지이자 산업벨트로 위치지어진 이후에도 크게 확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판본에 따라서는 김선달에게 돈을 주고 물을 사는 사람들이 그저 강물을 길러온 사람이 아니라 물장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아울러 19세기부터 조선에는 물장수라는 직업이 있었던만큼 물을 사고파는 것은 설화가 퍼져나갈 당시로서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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