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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소의 기억: 2022 부산비엔날레에서 본 디아스포라

by 동무비평 삼사 2022. 12. 11.

인구와 물자의 이동이 용이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지역, 특히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일들이 한데 어울려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반도는 근대로 접어들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세계를 받아들이고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개항과 함께 시작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최초의 개항장이 된 부산은 일제강점기, 근대화,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떠나 보내며 시간의 축적과 함께 디아스포라의 범위와 해석을 확장해왔다.

 

 물리적 이동으로부터 시작되는 디아스포라는 장소를 통해 사람들과 연계하고 상황들을 마주한다. 2022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이 겪어 온 역사적 장소에 기반에 두고 이주, 노동과 여성, 도시 생태계, 기술변화와 공간성을 중심축으로 삼아 부산과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본다. 부산의 원도심 4곳에 위치한 전시장소는 각각의 역사적, 지형적 특징을 달리하고 있어, 한곳한곳 찾아가는 여정은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생계를 위해 행하였던 노동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으로 작용한다.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이 자리한 을숙도는 과거 쓰레기 매립지에서 현재는 다양한 생물종의 터전으로 탈바꿈하여 부산의 산업화와 도시개발의 명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은 1912년 준공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항만으로 일본의 대륙 침략의 거점을 시작으로 전쟁물자와 피란민 수송, 여객부두, 산업 생산물의 수출입 관문 등 한국 근현대사와 그 궤를 함께 한다. 영도와 초량은 한국전쟁을 피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정착지이자 그들의 생계를 잇게 해 준 삶과 노동의 현장이다. 이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전시공간들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작품들은 정치적 망명, 나라 잃은 슬픔, 전쟁, 입양, 일자리, 결혼 등 저마다 서로 다른 이주의 이유와 정착의 과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왼) 오석근, <인천(仁川) 72>, 2021 (오) 가마타 유스케, <일본식 주택, 제국주의의 석정>, 2022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오석근과 가마타 유스케의 작품은 장소의 기억과 흔적을 통해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담았다. 오석근은 한국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장소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사진으로 표현한다. 그동안 인천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진 적산가옥(일본인들이 소유한 가옥)이 해방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개인들에게 팔려 넘겨진 후 오늘날까지 변화해온 과정을 연구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부산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까지 더불어 살펴본다. 적의 재산인 적산가옥은 민족과 국가적 차원에서 식민지의 잔재로서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일본인과 해방이후 구입의 과정을 통해 거주한 한국인은 그들의 삶과 문화가 베어 있는 개인적 기억의 장소이다. 작가는 근대 식민지 역사의 단절과 종료를 상징하는 과거의 존재이지만 그 곳에서 삶을 지속해 온 이들에게 적산가옥은 그들만의 시간과 행위가 켜켜이 쌓인 공간인 동시에 현존 그 자체를 보여 주는 연속의 공간임을 은유하고 있다.

 

 오석근이 과거의 공간이 가진 현재성과 연속성을 탐구했다면, 가마타 유스케는 장소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전달한다. 작가는 16세기 왜란으로 인해 부산과 경남 일대에 지어진 왜성의 흔적과 같은 시기의 규슈, 대마도, 이키섬 등에 설치되었던 성곽의 흔적을 추적하여 부산과 규슈 지역을 잇는 하나의 석조정원 이미지를 구축한다. 왜성의 형태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돌들의 배치는 그 장소에 왜성이 존재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1930년대 일본인이 대만, 한국, 브라질로 이주하여 지은 일본식 주택의 빈집들을 병치한 사진작업과 소이탄 실험을 위해 미국정부가 미국에 지은 일본식 주택도면 작업을 함께 전시하여, 일본 침략의 역사를 전달한다. 오석근과 가마타 유스케는 각각 용도는 다르지만, 지어진 계기와 목적은 침략과 전쟁이라는 공통점 아래에 놓인 건축물과 그 흔적이 내재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현대에까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고찰한다.

 

송민정, <커스텀>, 2022

부산현대미술관과는 달리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은 부산이 겪어온 근현대사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날 것의 장소이다. 피란민들이 정착했던 초량의 가파른 골목 끝에 위치한 작은 집에 들어서면 송민정의 영상설치 작품인 <커스텀>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은 가상의 인물인 하루코와 춘자의 스마트폰을 따라가며 일어나는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띠고 있다. 해외 발령을 받은 신발 기술자인 남편을 따라 부산에 정착하게 된 스물세 살의 하루코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려고 간 신발공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춘자를 만난다. 1945년 같은 날에 태어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상영하는 스마트 폰이 집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당시 시대상을 가늠할 수 있는 벽지, 신발, 인테리어는 영상의 몰입도를 배가한다. 인물의 이야기와 장소의 교차는 관객들이 집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영상과 설치작업들을 따라다니면서 마치 하루코 또는 춘자가 살았던 집에 와 있는 듯 작품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왼) 영도 전시장 전경 (오) 이미래,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 2022

피란민의 노동 현장이었던 영도에 있는 송강중공업이라는 옛 선박부품공장의 폐건물에서 만난 이미래의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는 처음 마주하는 순간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 당한다. 태풍으로 인해 지붕과 벽체의 일부가 날아간 폐건물은 건물의 뼈대인 골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골조를 드러낸 건물 안에 이미래는 아시바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또 하나의 거대한 골조를 만들고, 이를 감싸고 보호하는 듯 기름 묻은 천조각들이 얼기설기 걸려져 있다. 필자가 전시장에 도착하기 며칠 전, 태풍 힌남로로 인해 천은 한없이 찢겨져 있었고 골조가 휘어져 형태가 변형되었다. 뼈대만 남은 폐건물 속에서 태풍의 비바람과 마주하고 있는 이미래의 작업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공장이 삼켜 버린 노동자들의 상흔을 다시 소환하며 치유하는 듯 기념비처럼 서 있다.   

 

남화연, <당신은 오직 두 번 산다>, 2022

송민정과 이미래에게 초량의 집과 영도의 폐공장이 작품의 스토리를 뒷받침해 주고 나아가 작품 그 자체로 존재했다면, 남화연에게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장치로서 작동한다. 남화연의 <당신은 오직 두 번 산다>는 부산항 제1부두 공간을 무대로 삼아 로댕의 <지옥의 문>을 모티브로 삼은 퍼포먼스 리허설이 불명료하게 전개되는 장면을 담는다. <지옥의 문> 세부 조각에 표현된 인간군상이 함의하고 있는 다양한 양상들을 연기하는 퍼포머들의 움직임에서 죽음과 소멸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과정을 그려 낸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만큼 부산의 역사와 환경에 대한 묘사가 있지는 않지만, 남화연의 퍼포먼스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부두 창고 바닥에서 서로 뒤엉켜 힘겹게 움직이는 퍼포머들을 통해 순조롭지 못했던 지난 100여년을 견뎌내 온 이주민들의 세월과 일제강점기 침략의 거점지로 시작하여 여객부두, 물자수송 등 근현대사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자리하게 된 부산항 제1부두의 운명을 교차하면서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2022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의 역사와 장소적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비교적 많이 선보였다. 그리고 주제에 잘 부합하는 전시공간이 가진 근현대사적 상징성은 이러한 작품들의 의미를 한층 더 풍부하게 해 주었고, 세계 여러 곳의 이야기와 교류하고 연결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생각들을 공유하는 장을 제공했다. 디아스포라는 언제나 주변부의 위치에 있지만, 최근 팬데믹과 세계경제의 악화로 글로벌리즘이 약해지고 자국중심주의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실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작가들이 여기 부산에서 목소리를 높여 경계와 주변을 맴도는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함을 당당히 내보이며, 연대를 제안했다. 그들은 형이상학적인 거대담론이 아닌 나와 주변의 소소한 삶, 노동을 통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읊었고, 관람객들은 이에 공감하고 화답했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시작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

 

 

권주연 (전시기획자)

 

 

 

 

2022 부산 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기간 : 2022년 9월 3일 토요일 - 11월 6일 일요일

장소 : 부산현대미술관,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

감독 : 김해주

작가 : 26개국 64명(팀)



* 이 글은 동무비평 삼사가 2022년 주제로 의뢰한 ‘디아스포라’ 관련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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