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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우실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7.

20206월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약 400km를 달려 전라남도 신안의 증도로 향했다. 두 개의 섬을 잇는 다리를 지나는 그 일대에는 양파 수확 시기라 성인 남성 주먹만 한 양파가 밭 곳곳에 널려있었고, 우두커니 서 있는 수많은 붉은색 자루에 담긴 양파 더미의 조형미에 놀라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증도의 생활은 날마다 비현실적인 감각을 느끼며 이어졌다. 해가 지고, 물이 나고 드는 광경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차올랐고, 하루가 지나가는 과정은 도시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갯벌에 나가 짱뚱어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하루가 다 가기도 하고, 엽낭게가 남긴 모래 구슬을 쫓다 방향을 잃기도 했다. 연이어지는 질병에도 장마는 끊임없는 비를 퍼부었고, 태풍이 지나갔으며, 굽은 어르신들의 열매는 영글고, 고단한 염전의 소금은 물 위로 떠올랐다.

 

섬사람들은 바람이 새 찬 날이면 들이닥칠 일들을 동여매느라 분주했는데, 들이치는 바람에 무력한 이곳의 선조들은 마을의 돌들로 바람이 불어오는 길목에 사람이 나고 들 수 있는 입구를 낸 돌담을 쌓아두었다. 우실이라는 이름의 돌담은 길게는 100m까지 길게 뻗은 두 개의 담장을 서로 엇갈리게 이어, 그 사이에 통로를 내 사람은 자유롭게 돌담 너머를 오가는 구조였고, 모습은 파도와 갯골, 섬의 작은 골목길들과 닮아있었다.

 

우실의 옛 표현은 울실, ‘은 울타리처럼 둘러싼다는 뜻이고, ‘은 마을을 가리키는 옛말로 마을의 울타리를 의미했다. 마을의 출입구로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고, 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정서를 순화하며 독립성을 높였다.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연결하며, 상여가 나갈 땐 산 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이별의 공간으로,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쌓아 올린 돌담의 시간이 그리 흐르고 있었다. 몇몇 섬을 직접 돌아보며 만난 현재의 우실은 많이 훼손되고 소실된 채 방치되어 있었고, 오랜 시간 섬과 사람들을 보살핀 모습에 절로 숙연해졌다.

 

설레었던 마음이 무색하리만치 무거워진 삶의 무게들에 시간이 갈수록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우두커니 맞고 서 있는 날이 잦아들었다. 섬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고, 복잡한 관계와 상황들은 여지없이 무게 없는 담이 되어 쌓여갔다. 먼 옛날의 선조들이 섬에서의 생을 이어가기 위해 마을의 돌들을 쌓아 올렸듯, 하루하루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살아가는 삶의 공기를 담은 무게 없는 담을 쌓았다.

 

무게 없는 담은 서로의 힘으로 버티고 쌓여, 가라앉는 시간을 관객과 함께하며, 삶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에 다가가 그저 묵묵히 생을 살아내는 시간의 걸음이 되길 바랐다. 나 역시 내게 쌓이고 가라앉은 시간을 걷어내어 길 위에 우뚝 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내는 살아있는 우실이 되고자 하였고, 그렇게 모두의 삶에 굳건한 우실이 자리하는 시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 ]

 

고사리

 

 

 

 

전시: 우실 Woosil

기간: 2020.09.18.-2020.11.08

작가: 고사리

장소: 소금박물관

참고: 태평염전 아트프로젝트 <소금같은, 예술>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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