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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움직이는 숲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21.

무얼 보여줘야 할까. 나와 같이 동시대성 없는 쓰레기들을 모아서 흐름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 다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정 없이 잘하고 싶다. 항상 가진 욕구불만을 차라리 내비쳐 보이고 싶다. 차라리 선입견을 이용하여 이미 세워진 것을 부수고 싶다. 쓰레기는 일상에 있다. 실제로 그렇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집이란 없었다. 몸을 누일 곳뿐 아니라, 관념이 정착할 곳도 적당히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비틀거렸다. 누가 잠깐 안아주면 그뿐이었다. 다시 흩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눈을 고정할 수 없었다. 상대하는 것은 온통 흔들렸다. 그냥 '그렇구나' 했다. 남이 하지 않는 걱정을 맡아 했고, 남이 하는 걱정도 구태여 점검했다. 물론 답을 알고 싶지만, 논증하기 성가시다. 다시 판자에 올라 바들바들 떤다. 그 밑에 사는 요물도 물론 논증의 대상이다. 발견과 확인. 존재의 폭로는 이 고통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인지적이다.

 

움직이는 숲, 떠돌이 숲, 이방인의 숲 등 다양하지만 일관된 이름을 가진 이 전시는 2020년 상반기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오히려 그에 의해 기획된 전시다. 갤러리를 겸하고 있는, 또는 전시를 구현할 수 있는 카페, 바 등의 일상적 공간을 작업자가 찾아다니며, 같은 형태의 전시를 반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염병 사태가 지속됨에 따라 그 자체의 목적이나 활기를 잃고 약속을 마치기 전에 사라진 공간들이 많아져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고, 목적과 거처가 사라진 전시가 되었다. 심지어 이 전시가 시작된 서울 문래동의 한 바도 영업을 멈추는 일이 잦았고, 공허해진 도시에 전시가 움직인들 마주할 사람이 없었다.

 

작업자는 이른바 예술계의 외부인, 비전공자의 정체성을 갖고, 그와 똑같은 모양으로 버려진 것들이나 소외된 것들의 일상성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버려진 화분을 금방 주워 즉흥적으로 배치하거나, 찌꺼기들을 바닥에 그대로 붓는다. 찢겨 죽은 새의 형상에 여러 색을 입혀 변형하고, 남은 물감을 캔버스에 덕지덕지 바른다. 당장은 그저 그뿐이지만, 나름의 꿈틀거림을 잊지 않는다.

 

지금 이 팬더믹 문제는 어떤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단단히 형성된 공동체이든, 그에 편입하지 못한 이방인이든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오히려 당장 묶인 로컬리티를 해체하여, 재조립 해야 한다. 삶의 터로서 공간은 시간과 결합하여 이미 단순한 물질적, 고정적 특징을 넘어섰고, 동시대의 복잡한 혼종성을 기반으로 중앙과 지방, 주체와 타자 등의 이분법을 깨고 있다.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장기화는 피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단기적인 결과를 의식하여 대안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극복을 위한 큰 계획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 숲은 다시 움직일 것이다. 잠시 멈추어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 ]

 

김희진

 

전시: 처리된 시신

작가: 김희진

장소: 비닐하우스(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54 39 비닐하우스 1층)

참고: 2020년 7월 5일부터 전시 진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전시 취소 

 

* 본 노트는 2020년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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