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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28.

참 어려운 시기였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바싹 힘을 낼라치면 코로나 19는 모두의 주어진 상황을 정지시켰다. 임시공간에도 그것이 비켜가지는 않았다.

 

2020년 인천리빙디자인페어(주최 디자인하우스, 인천관광공사/주관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 월간 <럭셔리>)가 송도 컨벤시아에서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진행 예정이었다. 임시공간은 이 페어의 부스 참여에 초대받았다. 각 부스에서는 기성품의 리빙 용품들과 가구들이 판매될 예정이었고,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리빙을 시각예술 안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부스를 꾸릴 예정이었다. 어느 기획이든 그렇겠지만 단 4일을 위해 부스 공간 구성 디자인도 의뢰하는 등 물심양면 몇 곱절 애를 쓰며 ‘아티스트 룸’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페어 시작 하루 전날, 그러니까 작품 설치 당일 아침에 ‘2020 인천리빙디자인페어 개최 잠정 연기 안내’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당시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5단계로 개편 전이었다.)로 격상되면서 실내 50인 이상 집합·모임·행사가 금지된 것이다. 큰 규모로 개최를 준비했던 리빙디자인페어 주최·주관 측도 당황스러웠겠지만 지역의 작은 공간인 우리도 적잖이 당황했다. 출품작 중 일부는 이미 공간에 도착해 있었고, 작품 반입 날이었기 때문에 운송업체는 나머지 작품 픽업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운송업체 측에는 공간으로 작품 반입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우리에겐 임기응변이 필요했다. 그 순간 우선순위로 생각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에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였고, 결론은 ‘하자!’였다. 급히 참여 작가들에게 연락을 했고, 두 명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임시공간에서 작가 16명, 1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갑자기 페어>는 말 그대로 이렇게 ‘갑자기’ 시작했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사회적 재난으로 연기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페어를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취소되고 연기되어 멈춰야하는 상황에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니까 예술이, 그리고 작은 예술 공간이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다행히 임시공간은 지역의 작은 전시 공간이었기에 나라에서 정한 방역수칙만 잘 지키면 운영은 가능했다.

 

임시공간이 리빙디자인페어에 참여하고자 했던 본래 목적은 생활에서 향유할 수 있는 미술작품의 대중화와 인식 전환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느 기업 로비의 인테리어용이나 재테크를 위해 소장되어 만질 수 없는, 즉 사용 불가능한 작품보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가들이 직접 만든 가구나 굿즈 등으로 구성했다. 또한 리빙의 요소로 쓰일 작은 작품이나 아티스트 북으로 예술이 그들의 삶에 조금씩 스며들기를 바랐다. 특히 인천에서 학교를 졸업했거나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천 연고 작가의 비중을 높여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의 지역 활동 장려와 동시에 그들을 지역 예술계에, 나아가 시민들에게 알리며 지역 시각문화예술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그것도 작은 예술 공간에서 예술 작품으로 페어를 개최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지역에서 아트페어를 예술계에 속해 있지 않은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페어의 본 취지처럼 시민들이 실제로 이를 통해 예술 작품을 향유하고 새로운 전시나 작품을 직접 찾아보도록 하기까지는, 이렇게 형식적으로 이름만 달고 여는 아트페어로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물론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기획·진행했기 때문에 <갑자기 페어>가 시민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그에 대한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작품 판매를 시도했고, 네이버 우리 동네 플랫폼을 이용해 동네 행사로 홍보하면서 그 글을 보고 임시공간에 찾아오신 분과 지역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지역의 작은 예술 공간의 존재와 역할 대해 알게 되었다고, 다음 전시 때 또 찾아오겠다는 관람객 중 한 분의 말은 왠지 모를 성취감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면에서는 서로를 응원하는 예술계 속 ‘품앗이’에 가까웠기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역, 제도, 작가, 매개자, 공간 등의 여러 가닥이 얽힌 이 문제는 어느 한 쪽에서만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으로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럼에도 <갑자기 페어>로 우리가 이러한 지점들을, 게다가 이러한 시기에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어서 그나마 그 서운함을 삼킬 만했던 것 같다.

 

어려운 시기 무엇이라도 해보겠다고 진행하면서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 따르지 않았다는 황당한 민원을 받는 해프닝도 있었고, 완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시작하며 세웠던 목적도 완벽하게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하게. 이러한 작은 시도는 충분히 값졌다. 갑작스러운 결정에도 함께하기로 기꺼이 마음을 모아주었던 참여 작가님들 덕이 크다. <갑자기 페어>를 통해 ‘작은 입김이 (지역 예술계에) 큰 바람으로 언젠가 돌아오겠지.’라고 습관처럼 말해왔던 지역의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리고 삶에, 작더라도 분명한 힘이 실렸기를 바란다. [ ]

 

정다운

 

 

전시 : 갑자기 페어

기간 : 2020.8.20 - 2020.9.4

작가 : 고등어, 국동완, 권자연, 김보민, 김지윤, 김태연, 김태영, 김태협, 박진일,

        변규리, 비디오로즈(강현우, 허철주), 손승범, 오은미, 오희, 윤희완, 이재훈, 장희진

장소 : 임시공간

기획 진행 : 정다운, 김유림

참고 : 2020 인천리빙디자인페어는 총 두 번 연기 후 2020년 10월 22일부터 25일에 진행됨.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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