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심을 땅
대안적 삶, 전환, 삶에 대한 변화에 대한 요청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이것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위기감이 삶의 곳곳에 침투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에 위기로부터 탈주를 꿈꾸기도 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예전과는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큰 변화를 목도한 후 왜인지 모를 낙관적인 마음이 낭만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건 무엇보다 ‘지금’,‘당장’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우울감과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을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도심을 탈주하고 삶의 전환, 대안으로 지역살이는 하나의 방안처럼 보인다. 특히, 고령화 문제와 지역-지방 소멸문제로 인해 청년들의 일자리 사업이 확대되었고 1사업 규모를 늘리면서, 이 문제를 일자리 사업으로 늘리려고 하는 정부의 시도가 엿보인다. 필자 또한 부여에서의 방문은 서울-지역 청년단체 간 협업을 통해 교류모델을 발굴하거나 일자리, 주거 같은 청년문제를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서울시 연결의 가능성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탈주가 반가웠고 지인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전환의 기회라 생각했다. 어딘가 탈주하고 싶은 마음은 서울이 아닌 어디로 향하고자 했고, 그리고 그 지역이 사라진 나라, 패망의 나라라 부르는 ‘부여’이기에 더 많은 자원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옛 터가 남아있는 그곳에 마음이 동한 것은 새롭게 일궈나갈 수 있고 뭔가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느껴서기도 했다. ‘지금-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나올 수 있는 근간이 되었기에, 서울을 떠난 ‘부여’가 대안적인 삶이 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 그곳을 오고가면서 ‘왜 내가 떠나오고 싶었는지에 대한 그 무력감’이 무엇인지 상기하게 되었다. 삶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는 때론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고 익숙한 환경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로부터 시작한다. 환경이 바뀌는 것은 삶을 전환하기에 중요한 요소이고 때론 여행을 가고 타인과 만남을 접촉하고 다양한 시도로 삶을 전환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 또한도 일상이 된다면 현실이 될 것이다. 매번 새롭고 낯선 것은 지속할 수 없다. 익숙함이 곧 일상이 되고 나를 둘러싼 무기력함과 무력감을 알지 못하면,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그렇다면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답답한 무력감을 탈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도시를 떠난 이주와 거주로 해결될 수 있기에는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여정의 기록을 담은 『파인더: 발견자』는 도시와 시골, 성공과 실패, 이성과 감정의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 ‘보다 나은 것’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를 차분히 가라앉힌다. “진정한 발견자는 운 좋게 무엇인가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아니라 찾고 있던 것을 찾은 사람이다."찾 2고 있던 것을 찾은 사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는 힘이 기르기 위함. 그곳은 장소의 이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힘을 기를 수 있는 땅, 충분히 자신을 관찰하고 힘을 키워낼 수 있는 지대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필자가 『파인더』를 통해 만난 여러 인물은 자기 동력을 찾아 나서고 자신의 속도대로 유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만남을 통해 성공과 실패로 규정하기를 중단하고 자신의 쓸모를 다시 설정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감각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자신의 생계에 대한 해결이 용이하거나 그것으로 벗어나 자유롭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가 우리의 일상을 가깝고 무심하게 침투하기에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안다. 세계로부터 탈주와 이탈. 마음을 옭아매는 것을 잠시 바라보자.
도시에서의 무력감은 ‘도시’에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시골에 가더라도 그 무력감은 해결될 리는 없다. 일상의 삶을 전환하기 위한 노력은 자기 속도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요소로 작동되는 것이 아닌 의지와 주체로서의 움직임. 그 움직임의 발화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질문을 찾기가 아닌 대안적 삶을 위한 하나의 방법과 해결로 이탈과 탈주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방안을 일자리나 생계의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세계로부터의 이탈은 일어날 수 없다. 결국, 이곳이냐 저곳이냐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더러 여전히 자신의 속도가 아닌 누군가 정의 내려진 속도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을 위한 대안이 아닌, 효과를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기존에 해왔던 보다 나은 것을 위한 선택을 잠시 멈춰보자.
그러므로 나를 둘러싼 무기력과 무력감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 더 멀리, 천천히 걸어가기에 대한 호흡에 대해 생각한다. 지역을 둘러싼 이슈가 청년일자리, 대안적 삶, 지역소멸, 고령화의 문제해결을 위한 요청을 잠시 거두고 우리가 왜 떠나오고 떠났어야했는지에 대한 질문찾기가 파인더를 만든 여정이였다. 올해도 우리는 어딘가로 떠난다. 대안적 삶을 찾기보다 현재를 느끼기 위한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 조금 더 멀리 씨를 심기 위한 땅을 고루 찾고 있는 중이다. [ ]
강정아
발견자들
『파인더:발견자』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찾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한 채 찾아 나섰다.
서울 한복판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일상이 매 순간 고단했지만, 의심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는 곳에 한발 먼저 가 있어야 했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번듯하게 완성되어있는 공간은 항상 마음에 들었다. 버릇처럼 벌였던 모든 프로젝트와 공모사업을 허겁지겁 마무리하고 묘한 무력감이 찾아온 1월의 마지막 즈음, 부여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우리는 산보처럼 따라나섰다.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 낮게 내려앉은 동네를 함께 걸었다. 트인 시야 너머 커다란 강이 흐르고, 비어있는 가게마다 햇볕이 가득 내리쬐고 있었다. 이곳에 어떤 시설들이 들어설 것이고, 얼마만치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했다. 로컬, 클러스터, 도시재생이라는 말들은 익숙했지만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조금 낯설었다. 예술도 경쟁이 된 사회에서, 당신이 필요하다는 말보다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마음이 가는 이 동네에 다시 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또 기획서를 썼다. 지역 리서치, 아카이빙과 워크숍, 청년, 자생력이라는 단어들을 차례로 적어 넣다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보고 싶은 그림을 보여주고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어야 ‘그 다음’이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빠르게 찾고 싶었다. 부여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조사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기로 했다. 첫 글자를 적기 전부터 이미 목차와 이미지가 그려질 정도로 선명한 계획이었다. 우리는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새롭게 바라보는 지역의 역사와 설화, 남편의 고향으로 귀촌한 여성이 살아온 이야기, 오래된 가게를 지켜 온 어르신이 들려주는 동네 이야기를.
하지만 텅 비었다고 생각한 이곳이 ‘리틀 포레스트’가 아닌, 서울과 다르지 않은 치열한 삶의 터전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하고 헛돌고 있는 것을 느꼈다. 지원기관에서는 활발하거나 명랑하지 않은 데다, 단계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우려를 표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왔을까?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 질문은 다시 스스로를 향했다. 부여의 명소라 하는 관광지 대신 코스모스가 핀 강변을 하염없이 걸었다.
다시 우리의 출발지, 서울을 떠올렸다. ‘왜 부여인가’가 아닌 ‘왜 서울 아닌 곳에 마음이 끌렸는지’, ‘왜 부여에 와서도 여전히 서울에 사로잡혀 있는지’라는 질문이 남았다. 얼굴 없는 가상의 인터뷰이(interviewee)를 지우고, 우리가 서울과 부여를 오고 가며 만났던, 그리고 우리처럼 무언가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찾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파인더:발견자』는 서울에 대한 책도, 부여에 대한 책도 아닌 잃어버렸던 것, 아직 찾지 못한 것, 찾고 있는 것에 대한 글로 이루어진 작은 기록집으로 엮이게 되었다. 신기루 같았던 성공과 사랑,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삶,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 7명의 ‘발견자들’은 담담하지만 건조하지 않은 어투로 찾아 나서기 전에는 무엇도 찾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당신이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다.
후일담 1. 『파인더:발견자』의 원문은 예술 서적 플랫폼 에이독스adocs.co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하며, 부여에서 만난 이들과의 연을 이어 『파인더:발견자 -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후일담 2. 지원기관에서는 올해부터 신청기준에 ‘해당 지역 거주자’임을 증빙하도록 하여, 외부에서 온 발견자의 개입(?)을 저지했다. [ ]
바롬
파인더 : 발견자
저자: 강정아, 김소담(모모), 김영민, 남궁진, 들판, 박수빈, 황바롬
편집: 강정아, 황바롬
발행연도: 2021
* 『파인더:발견자』의 원문은 해당 링크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https://adocs.co/books/finder/
* 본 노트는 출판에 참여한 편집인들이 각자 기억과 이야기를 나누어 쓴 것을 함께 실었습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 서울시가 서울청년의 일자리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상북도와 협력해 처음으로 추진한 ‘청정경북 프로젝트'(서울청년, 지역으로 가다)를 올해 전국으로 확산한다. 전국 100여 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해 총 300명의 서울청년에게 참여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청년들의 활동기간도 6개월에서 10개월로 늘린다. https://url.kr/cbq1g6 [본문으로]
- 페니텐샤, 노엘 크리스티안 A. 모라틸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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