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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귀여운 희망 한 스푼 주세요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28.

2020년, 도저히 하나를 고를 수 없어 일 년을 적는다.

 

이상한 2020년이다. 뭘 해도 되는 1년인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해였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로 끝나는 메일에 ‘괜찮습니다. 건강하세요!’의 답장을 보내며 노트북을 닫는 일이 잦았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처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할 수 있음을 전염병을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위드(With) 코로나’를 이야기하며 자조하지 않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2020이란 글자에 물든 절망을 덜기 위해 몇 번이고 퇴고를 거쳤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짜낸 희망을 몇 숟갈 부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쉬이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지나온 현재를 여기에 남긴다.

 

2019년 12월, 대학 공부가 끝났다. 나는 2020년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졸업전시 준비 중 받은 뜻밖의 제안들은 학생 신분에서의 해방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학교에 발붙이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며 생긴 작은 경력들이 뜻밖의 기회를 가져왔다. 2020광주비엔날레의 참여 작가 애드 미놀리티의 프로젝트에 워크숍 한 꼭지로 참여할 자리가 주어졌고, 광주여성가족재단에서도 단체전 기회가 또다시 주어졌다. 이 모든 기회가 설렜던 나는 일하던 가게의 단골손님들에게 은근슬쩍 자랑을 흘렸고, 그들은 기꺼이 나의 기쁨을 축하하며 비싼 술을 구입해 내 매상을 올려주고는 했다.

 

그렇게 맞이한 2020년 2월, 나는 배우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소독제와 손세정제를 적극 사용하며 안전한 공연 준비에 임했다. 그러나 공연 전날인 3월 26일.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한 공연장 잠시 멈춤 및 감염예방수칙 엄수 협조요청’이 고지되었다. 빼곡한 글자들 사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눈에 박혔다. 객석과 무대, 객석과 객석 사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소극장에서, 아니, 사실 대극장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우리는 객석을 일부만 남기고 공연을 올렸다.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사이 2019년부터 기다린 광주에서의 단체전은 기약 없이 뒤로, 뒤로, 뒤로 밀리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참여한 <2020 세월호: 극장들 – 바운더리>의 관객 수는 회당 8명이었다.

 

프로젝트 하자의 연극 <오르막길의 평화맨션>이 2021년으로 연기되었다. 공연일이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었으므로 디자인에도 변동이 크게 필요할 것이다. 처음부터 작업해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년의 작업보다 당장의 삶이 더 큰 문제였으므로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태원에서의 확진자 수 급증과 유흥업소 집합금지 명령 이후 나는 매일 소수자 스트레스(사회로부터 낙인찍힌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이 겪는 높은 수준의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한껏 지친 몸으로 출근한 가게에는 광주비엔날레 연기 소식을 나보다 먼저 접한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위로를 건넸지만 나는 그 말들을 전혀 삼키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내년이 있으니까 괜찮아요!’를 외치며 웃었겠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예술의 이름을 한 모든 기회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뭔가 해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예술을 하는 나는 전부 확실치 않은 미래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나를 현재에 남겨야 했다. 여기저기 팔을 뻗었다. 다양한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서울과 수원에서의 단체전이 확정되었고, 아트페어에도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작가 모집 공고 결과]의 제목으로 도착한 모든 메일에는 ‘참여 확정을 알려드립니다.’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에 따라 일정을…(중략)…확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가 있었다. 경력은 한 줄 한 줄 현재의 텍스트로 남았지만, 실행을 하는 나는 여전히 미래에 있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존재했으므로 나는 조금만 더, 더 힘을 내 살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흩어지는 미래를 붙잡으려 버둥거린 보람으로 몰아치는 일정 속에서 바쁘게 헤엄치고 있다. 사회는 마스크에 적응하는 속도로 코로나에 익숙해졌다. 거리두기 완화와 동시에 멈춰있던 일정들이 재개되었고, 예술인인 내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절망과 자조와 가난도 가져왔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현재에 살아있고 싶다는 절박함을 끌어내주었으며 다양한 실패의 기회 또한 승인했다. 너무 작고 유한한 몸과 팔랑거리는 체력을 가진 나에게 요즘의 매일은 불(不)건강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지만, 어쨌든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는 중이다. 실재하는 작고 귀여운 소비를 즐기면서 현재를 붙잡는 중이다. 살아있는 미래를 위해. 살아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과 절망과 자조는 이제 너무 익숙해진 것 같으니, 희망과 낙관의 시간을 조금 가져도 되지 않을까. 또다시 현재가 도망가면, 다시 붙잡으러 달려야지.

 

귀여운 희망을 주세요! [ ] 

 

사랑해

 

 

 

참고 : 전시/공연 진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로 취소되었으며

        명시하지 않은 전시/공연명은 각 참여자 게재 미동의로 밝히지 않음. 

 

* 본 노트는 2020년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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