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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처음은 늘 그러하다.

by 동무비평 삼사 2021. 9. 26.

처음은 늘 그러하다 ; 쌓아두기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료들은 모서리가 구겨지고 색이 바라고 심지어는 손실된다. 2020, 임시공간 자료실에 켜켜이 쌓아둔 인천 미술 자료들을 모두 꺼내어 아카이빙을 시도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아카이빙이란 쌓아두기만 반복하는 것이 아닌 분류체계를 갖고 선별하여 공공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었다. 익숙치 않았던 작업은 느리고 고되었다. 인천에는 시립미술관이 없고 공공이나 중앙기관에서 공개하는 아카이브 자료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어떤 체계의 레퍼런스를 얻기도 부족했으며 지역의 아카이브를 방문해도 자료의 양은 방대하나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저장소는 없었다. 먼지 쌓인 자료들처럼 지역의 아카이빙은 그랬다. 흐릿하고 불분명했다.

<느린아카이브연구실 2021> 전시 전경

 

출처 : @songdo_yoowonji

보존하기 : 이미지 아카이빙

지역과 기관은 쌓아두는 오프라인 아카이빙이 접근성과 공공성이 낮고 손상이나 손실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미지 아카이빙을 시도했다. (이건 어떤 면에서 임시공간의 <느린아카이브연구실>도 마찬가지다. 참고 : 인스타그램 @slowarchivinglab) 인천 문화예술 기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SNS를 이용한 이미지 아카이빙인데, 대표적으로 송도유원지 아카이브[각주:1]가 있다. ‘송도유원지 아카이브는 송도 신도시가 아닌 예전의 송도유원지 기억을 수집하여 스캔한 사진과 이미지를 제공받는 형식이다. 기여자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는 아카이브’ SNS에 게재된다. , 이것을 누군가 아카이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이건 분류체계가 없는 개개인의 추억이나 기록 보관소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왜 이렇게 지역에서 하는 일에 반항심리를 갖냐는 시선으로 필자를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에게 이 작업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 무작정 쌓아두기만 하는 작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례로 든 송도유원지 아카이브뿐만 아니라 지역에 이러한 아카이빙들이 꽤 많이 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카이브의 기술요소인 더블린코어까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아카이브와 아카이빙에 대한 지역(특히, 중앙이나 공공기관)의 관심이 높다면 이제는 자료들을 선별하여 분류체계를 가진 아카이빙을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 있게 기록하기 : 구술사

쌓아두기와 보존하기를 반복하던 아카이빙은 이제 구술의 단계로 들어왔다. ‘인천아트아카이브[각주:2]가 개설됐고 지역의 문화예술 연구에 구술기록과 인터뷰가 활용됐다. 임시공간도 올해 <人千美述인천미술><소야 문화재생 사업을 위한 콘텐츠 구축용역>을 위해 구술기록을 진행했다. 구술사에 도움을 얻기 위해 ()아카이빙네트워크연구원의 손동유 원장을 섭외했을 당시 필자는 개인의 감정과 흐릿한 기억에서 보존가능한 자료를 선별해내야하는, 자르지도 못하고 풀지도 못하는 그물을 쥐고 있었다. 그런 회한을 내뱉을 즈음 진행한 <문화예술 아카이브와 구술사> 세미나는 가치 있는 기록을 제시했다. 기록은 아카이빙에서 법적 증거의 가치가 되기도 하고 역사적 증거의 가치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한 것은 역사적 증거였다. 구술자가 실물 자료에서 휘발된 역사적 증거들을 가지고 기억 저장소임을 깨닫는 순간, 구술은 인터뷰를 넘어 선별의 단계를 거쳐 텍스트로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으로 자료수집과 보존 사이를 허우적대던 필자를 포함한 아키비스트들은 인간-기억저장소들의 기록과 기억을 끄집어내어 자료들을 재배치해 공공적 활용을 고대하는 단계에 이제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걸쳤다.

<느린아카이브연구실 2021> 연계 <문화예술 아카이브와 구술사> 세미나 전경 

 

늘 그러함을 담아서 ; 아카이브와 아카이빙

‘아카이브’의 어원은 시작, 원천, 기원을 뜻하는 그리스어 ‘arche 아르케’라고 한다. 이소호가 그의 에세이 집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에서 이야기한 시작의 의미를 인용해 아카이빙의 과정을 서술하려 한다. “처음은 그러하다. 가장 엉성하며, 의뭉스럽고, 불분명하다. 처음은 늘 그런 것이다. – 그냥 다음 세계로 넘어갈 힘만 가지면 된다.” 임시공간을 포함한 지역 아카이브의 첫 시작은 그러했다. 어딘가 느리고 애매하며 흐릿했다. 보유한 자료 수는 적었고 가려진 정보들이 많았다. 지역 문화예술 아카이브가 아직도 맨땅에 헤딩하듯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지역의 문화예술 기록저장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결과물이 후에 다음 세대의 원천소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비판의 시선보다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 ] 

 

규연

 

* 본 글은 임시공간 <느린아카이브연구실 2021>의 아카이빙을 하며, <문화예술 아카이브와 구술사> 세미나를 진행한 필자가 작성한 노트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1. 송도유원지 아카이브 

    연수문화재단 기획전시 <뜻밖의 연수 : 우리 안의 송도유원지> 온라인전 아카이브 작업

    인스타그램 @songdo_yoowonji [본문으로]

  2. 인천아트아카이브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원로, 중견작가 40명 아카이브 프로젝트 http://www.inartarchive.kr/main/

    주관: 문화예술단체 문화수리공

    후원: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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