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겨울의 추위에 쫓겨 종종걸음을 치며 오랜만에 갤러리 옹노를 찾았다. 갤러리 옹노의 입구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비밀의 승강장을 연상케 한다. 이미 몇 번 와본 적이 있음에도 여기 골목이었나 저기 골목이었나 자꾸만 멈칫거리게 된다. 골목을 꺾고 꺾어 전시장 입구에 도착했더니 애석하게도 굳게 닫혀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전시장에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운 와중에 포스터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 연결을 했고, 전해오는 한마디. “안 잠겨있으니 들어가시면 돼요.” 이렇게 나름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전시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오래된 건축물 ‘갤러리 옹노’만의 매력 있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입구 오른편 깊게 들어간 좁은 통로 끝에 컴퓨터 한 대와 음향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니터에는 반투명의 비닐봉지가 어설프게 씌어 있는데, 이 오브제 자체가 예술품인 것일까. 아니면 작품의 필요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것인가. 이 생각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일단 전시장 안쪽으로 이동했다. 전시장 벽면에는 몇 점의 판화 작품이 걸려있다. 인간과 새의 조합이 한눈에 보이는 작품들로 섬세한 날개의 표현이 돋보인다. 그리고 나무의 드러나는 뿌리를 표현한 작품도 있다.
중문 넘어 가장 안쪽 전시장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으며, 벽면에는 여러 갈래의 노랑 벨트가 달린 기구가 걸려있다. 짐작건대 저 기구를 착용하고 영상물을 체험하는 것이겠구나 싶다. 하지만 어떻게 기구를 착용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고 괜히 건드렸다가 문제가 될까 싶어 눈으로만 보고 돌아섰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시야에 바닥에 세로로 새워놓은 종이 상자들이 들어온다. 전선이 달려있고 음향을 조절하는 것 같은 버튼이 있는 것을 보아 음향과 관련된 작품이라 생각된다. 벽면에는 1층에서 본 것과 결이 같은 새와 날개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판화 작품들이 걸려있다.
모든 작품들을 보고 나서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분명 작품들을 열심히 다 봤는데 본 것이 없어 허탈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한 작품이 없다. 내가 현대예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 잘 이해할 수 없던 것인가 잠시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모르고 지나친 부분 또는 전시의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설명이 있을까 싶어 입구에 배치된 전시 안내문을 읽어 보았다.
기획자의 설명문에 따르면 전시 <퍼포먼스의 기쁨>은 롤랑 마뉘엘(Manuel, Roland)이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눈 책 『음악의 기쁨』에서 제목을 빌려왔으며, 롤랑마뉘엘은 음악가의 위대한 정신은 즐거움을 선택할 때와 그리고 ‘뭐 어때?’라고 하며 저지를 수 있는 일들에서 비롯되며 그 안에서 ‘기쁨’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전시 <퍼포먼스의 기쁨>은 단순히 퍼포먼스가 가지는 일반적인 개념과 예술형식으로의 이해를 넘어서, 본능적으로 발휘된 작업 행위의 순간과 결과물이 되기 전 경계를 지시하고 있으며, 전시는 이러한 행위를 작업의 근원이자 중요하게 작용하는 방점으로 이해하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참여 작가로는 배인숙, 정승, 한지민이며, 사운드·설치·미디어·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개인의 아이디어와 이슈가 내포된 제작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각 작가들은 작품 안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표현 활동을 주제로 하거나, 작업에 개입하는 감각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어 그 발전 과정의 다루는데, 이 단계에서 펼쳐지는 구상과 상상, 대화, 비정형적 시공은 퍼포먼스 예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구성 요소를 적극 수렴하거나 살짝 비껴가며 미술적 실천과의 접점을 모색한 전시라고 한다.
배인숙 작가의 인터랙티브 작품 <연주의 어려움>(2020)은 연주자와 작곡자가 음악을 사이에 두고 펼치는 이해과정을 상상한 작품이다. 작가는 연주자와 작곡가의 두 입장에 서서, 음악의 연주에서 일어나는 요철에서, 마지막으로 ‘어려움’이라는 경험적 직관을 통해 ‘연주의 즐거움’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관객은 작가의 이해와 관찰에서 파생한 작품 <연주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연주하며 연주가, 작곡가, 퍼포머가 되는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고 한다.
정승 작가는 2018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작업 현장 설치와 퍼포먼스 작업의 일환인 <흩어진 외침-남의 감각 옮기기>(2020)를 전시했다. “사물의 전산화 과정에서 흔히 정보가 일부 소실되거나 변용되는 등의 ‘정보의 뭉개짐’현상이 발생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전신을 아무리 스캔을 한다 해도 그 사람의 체취나 성격등 까지 완벽하게 전산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작가노트 중)” 작가는 정보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전산화 과정의 ‘현상’과 ‘흐름’에 주목하고, 정보는 곧 목표 지향적 시스템과 연결되기에 정보의 생성과 소실은 곧 인간의 몸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내재하는 값을 조정하거나 방해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흩어진 외침-나의 감각옮기기> 퍼포먼스는 사람의 신체와 비인간 기계가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추상적으로 감지되는 ‘관계’에 대한 관심을 시각화한다. 또한 벽면에 설치된 <Wearable Robot>은 기존에 작가가 선보였던 <Prometheus의 끈>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작가의 사유를 유연하게 확장시킨 오브제로 작동한다. 로봇의 머리 부분은 실제로 관객과 마주하며 상호 작용을 시도한다고 한다.
한지민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을 기반으로 표출된 주관적 감정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체화(된)한 총체적 이미지를 화면에 개입시킨 것을 이러한 프로세스는 반복적 행위를 연원하는 표현 매체인 판화를 매개로 표현했다. 라이노컷 기법의 사용으로 흰색과 검은색의 두 영역이 섬세하게 나뉘는 화면은 마치 읽을 수 있는 텍스트처럼 펼쳐지며 작가 특유의 판화적 실험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특히 한지민 작가는 몇 차례 옹노를 방문하며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장소성을 본능적 감각으로 해석하는 일에 몰두했는데, 인천의 개항장 거리와 인근 도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옹노는 자연스럽게 작가에게 이 공간은 화가의 ‘발견된 오브제’처럼 조형적 대상이자, 작업의 출발 지점으로 편입된다. 작품 <일부는 꿈속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날개가 되어라>(2020)는 공간에서 발견한 건축적 재료의 흔적과 남겨진 파편의 재해석을 통해 완성되고 있으며, 근래 원판을 지속적으로 파내어 이미지를 해체하는 작가의 행위는 다시 장소에 존재하지만 소멸해가는 요소들을 붙잡는 일에서 새롭게 움직이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행히도 기획자의 설명문을 통해 각 작가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들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배인숙 작가는 관객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음악적 퍼포먼스의 기쁨을, 정승 작가는 기술과 사람의 교감을 통한 퍼포먼스의 기쁨을, 한지민 작가는 작품과 전시장 옹노와의 교감을 통한 퍼포먼스의 기쁨을 의도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분명 관람객들과 함께 퍼포먼스의 기쁨을 공유하고자 하는 작품들임에도 나는 어느 한 작품과도 교감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이 전시에 대한 리뷰를 쓰기에도 망설여졌다. 그런데 근래에 몇 번 겪어보았던 인터랙티브 아트 혹은 현대미술의 추이들을 아울러 생각해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 적어보기로 한다. 전시의 리뷰는 다양한 감상 및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니 이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터랙티브 아트는 각각의 관람객과 만나 수백수천 가지의 형태로 완성되는 소통형 예술이다. 인터랙티브 아트는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며, 앞으로 이런 형태의 예술 활동들은 더 활발해질 것이라 예상한다. 즉각적인 소통 반응이 가능한 작품들도 있고, 좀 더 고차원적인 기술을 사용하여 작가의 숨은 의도를 반영한 작품들도 있다. <퍼포먼스의 기쁨>도 관람객과 함께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가 주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직접적인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벽에 막혀 어떠한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겉으로만 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간접적으로나마 <퍼포먼스의 기쁨>들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이 전시에 관련한 기사를 비롯한 리뷰, 블로그 등을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퍼포먼스의 기쁨>에 관한 자료들은 거의 없었고, 다시 각 작가들의 지난 전시들을 찾아보아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이해할 수 있는 자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전시를 보고 한참이 시일이 지난 후에 각 작가들의 SNS를 통해 짤막하게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작가들이 첨단 기술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점점 더 관람객에게 다가서면서 함께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듯 접근부터 쉽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 미술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름 예술 관련 직종의 지인과 이런 인터랙티브 아트 형태의 전시를 함께 관람한 적이 있다. 각자 관람의 시간을 보낸 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요즘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못 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어.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는 건지....”라는 감상평이 지인의 입에서 나왔다. 일부 사람들, 아니 예술과 친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은 전시를 관람을 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가지각색의 관람객과 소통하며 수많은 완성을 이끌어내는 인터랙티브 아트는 이들에게는 접근부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온라인 전시와 도슨트의 활용을 통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0년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온라인 전시가 떠들썩한 이슈로 부상했다. 직접 찾아갈 수 없는 전시장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일차원적인 온라인 전시를 지나 물리적인 전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예술작품들이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차원으로 성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포퍼먼스의 기쁨> 작품들과 관람객들의 소통하는 모습,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 현장 스케치,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의 상세한 사용 설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전시를 확장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무 좋았던 전시를 보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리뷰나 생각들을 찾아보는 것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삼는다. 현장 전시를 보기 전 혹은 전시를 보고 나서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온라인 전시를 접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차원의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 하나 안터랙티브 아트의 전시 현장에서는 도슨트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설명과 도움으로 보다 편안하게 전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준다면 보다 좋은 전시환경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퍼포먼스의 기쁨>에서는 함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지만, 알 수 없어서 이해할 수 없어서 너무 알고 싶은 마음에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면서 이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님들의 작품 활동에 관심이 생겼다. 작가들의 작품들과 앞으로의 전시를 주목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제대로 즐기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 ]
남해인
전시: 퍼포먼스의 기쁨
기간: 2020.12.01 - 12.10
작가: 배인숙, 정승, 한지민
장소: 갤러리 옹노
기획: 한주옥
참고 : 2020 인천문화재단 예술표현활동지원 사업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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