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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기억의 질량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21.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인천은 개항 후 수많은 물자와 외국인들이 신문물을 가장 처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많은 물자들을 수용해야 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은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확보하기 위해 인천항에 창고와 건물들을 마구 지어냈다. 인천은 강제로 발전해야만 했다. 시간은 흘러 일제의 침략이 끝나 광복이 오고 과거의 아픔이 남은 건물들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리고 여기 1920년에는 일본의 화약 제조를 목적으로 하는 소금 창고였고, 1930년에는 시민들과 지성인들의 지문이 남아 있는 책방이었으며, 책방이 문을 닫고 20년 동안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던 공간이 있다. 이때를 기다리던 곳은 100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문화 재생 공간인 잇다 스페이스 갤러리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100년 전 바다에서 3km 떨어진 이곳의 문턱을 넘어야 했던 것들은 소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문턱을 넘는 것들은 문화예술을 누리기 위한 사람들이다. 문을 열고 공간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안에 있는 온전한 그 시간으로 들어감을 뜻한다. 과거부터 수많은 것들이 넘나들었을 이 턱을 넘으면 비로소 현재의, 2020년의 잇다스페이스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붉은 벽돌로 쌓아진 벽들과 높은 지붕, 그리고 그 지붕의 끝까지 자라나고 있는 오동나무와 함께 전시는 시작된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이런 독특한 느낌들은 우드 예술가 정희석 대표가 녹슨 양철지붕과 옛날 액자들, 누렇게 바랜 태극기, 거친 바닥 등을 그대로 살려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 진행된 이은황 작가의 초대전 ‘MASS OF MEMORY(기억의 질량)'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상적인 작품들 20여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은황은 기억의 잔상들을 재조립하여 작가 본인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기존 회화의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하되 본인의 방식을 결합한 캔버스에 그린 그림들은 붉은 벽돌들과의 충돌과 함께 공간에 스며든다. 지금, 우리가 오래된 것이라 여겨지는 매체들의 현재 만남은 낯설지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작가는 기억의 질량을 변화하는 무게의 경중이 아닌 중력이 배제되어 마치 꿈속의 무의식 속에서 부유하고 형체를 뚜렷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변함없는 기억의 양이라고 말한다. 기억과 이미지의 잔상들은 화려한 색채와 과감한 터치 등과 함께 추상적이면서도 부분적인 사실적 이미지들과 함께 쌓이고 쌓인다.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러한 남겨진 기억들의 잔상은 하나둘씩 해체되고 선과 면, 여러 색 면, 그리고 부분적인 사실적 형상으로 각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재조립된다. 이렇게 재조립된 잔상들은 과거의 개인적인 기억에서 되돌아보는 새로움이 된다. 현대 사회는 늘 새로운 것들을 원하고 과거는 늘 익숙한, 변하지 않는 것들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이 공간에서 과거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잔잔한 것들이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 재조립된 새로움을 제공한다.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것들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들이 무뎌지고, 무뎌진 것들이 닳고 닳아서 만들어진 것들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과거를, 기억을 쫓아가는 행위이다. 변하지 않는 과거를 끊임없이 기억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집착처럼 보일 수도 있고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이은황 작가의 시각에서 추상적으로 바라본 이 전시는 과거의 억 겹의 감정들을, 찰나의 순간들을 포착해 녹여낸다. 삶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살아지는 것이고, 되새김질의 반복 속에서 일상은 계속된다. 그리고 이은황은 이 일상 속에서 과거가 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조용히 치유한다. [ ]

 

고유진

 

전시: 기억의 질량

기간: 2020.09.19. - 2020.10.11

작가: 이은황

장소: 잇다스페이스 갤러리

기획: 이영희, 정창이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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