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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송도 유원지로부터의 특별한 초대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28.

하루에도 몇 번씩 반갑지 않은 메시지가 일상을 덮친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 비상시국은 당연했던 일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달력에 체크해두고 기다리던 전시 일정들이 하나둘씩 취소되고 조기 폐쇄되는 등 모든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송도유원지로부터의 뜻밖의 초대장을 받았다. <뜻밖의 연수: 2부. 우리 안의 송도유원지>는 코로나19의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폐쇄하고 온라인 전시로 대체된 상황이었다. 무슨 좋은 연이 닿았는지 관계자의 배려로 오랜만에 전시장을 두 발로 자유롭게 누비며 작품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전시는 아카이브, 전시, 교육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전시의 핵심은 송도유원지와 관련한 생생한 시민들의 이야기와 개인 소장 사진 및 영상물,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실 관련 아카이브 자료들이다. 국가 기록원 자료, 신문 기사, 인천도시역사관 학술조사보고서 제2집 『없었던 섬, 송도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 송도유원지 상무이사였던 후지모토 켄이치가 기록한 1936년 「송도유원을 말한다.」가 주요 아카이브 자료들이다.  이 아카이브들을 바탕으로 김수환, 김정모, 황문정, 라오미, 박가인, 백인태 작가 등이 송도유원지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과 생각을 각자의 작품 활동으로 풀어내었다. 여기에 박유미, 윤종필은 시민참여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로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전시장 동선과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큰 벽면에 1926년 시작된 개발 논의부터 2011년 폐장까지 송도유원지의 유서 깊은 역사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다. 송도유원지는 1937년 7월에 송도해수욕장으로 개장했고 일제 패망 이후 1945년부터 1962년까지 폐쇄되었다가 1963년에 재개장하면서 송도유원지로 개칭되었다. 벽면의 신문기사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 지역인 송도해수욕장 시설물 하나하나를 서술했는데, 문장에 신식 유원지에 대한 기대에 부푼 감정들이 오롯이 담겨있음이 전달된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송도 유원지의 그 뒷면에는 일제의 탐욕이 서려 있었다. 애초에 일본군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었으며, 인천의 자본을 잠식하고자 하는 일제의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송도유원지의 역사를 알아보고 나서 오른 편을 보면 라오미 작가의 ‘코끼리의 걷는 법’이 눈에 들어온다. 화면을 가득하게 채운 적색과 청색 투톤의 조화에서 차갑고 차분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2003넌 10월 송도 유원지 코끼리 탈출 사건을 중심으로 송도 유원지의 여러 장면들을 화면에 자유롭게 배치하였는데, 화면 곳곳에 송도 유원지에서 살던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휴양의 즐기는 사람들, 코끼리를 사육하는 사람들 등 작품 속 인물들의 눈코입을 흐리게 처리하여 그 누구의 감정도 읽을 수가 없다.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일만 있을 것 같은 송도 유원지의 모습 면면에서 어쩐지 처연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코끼리의 걷는 법’을 등지고 김정모 작가, 황문정 작가의 ‘송도 메모리즈’가 있다. 파라솔 아래 뜬금없이 구식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다. 이 컴퓨터 화면을 클릭하면 게임이 시작된다. 송도유원지 폐장 이후 중고차 수출단지를 지워내고 가상으로 모금한 복구자금으로 시설물들을 구입하면서 송도유원지를 재건하는 스토리라인이다. 철 지난 저해상도 2D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추억을 되살리면서,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관람객과 함께 진행하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다. 어떤 추억의 게이머를 만나느냐에 따라 완성 결과는 천차만별이고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요란한 소리를 따라가면 김수환 작가의 애니메이션이 있다. 작품 ‘징후의 조각들’은 유원지의 단편적 기억들로 남은 요술거울, 해변에서 밟은 똥, 해수면의 반짝임 등등을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는 작품이다.

전시장 중앙 홀은 송도 유원지의 아카이브를 위한 공간이다. 인천 시민들이 소장하던 개개인의 추억들이 사진과 영상을 비롯해 송도 유원지와 관련된 각종 서적 및 자료들, 송도 유원지에서 나온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넓은 벽면에 시민들이 보내 준 송도 유원지의 사진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넋 놓고 보고 있을 만큼 재밌다. 어쩌면 이렇게 시대도 다양하고 스타일도 제각각에 표정들이 생생하고 행복한지...요즘 유행하는 관찰 예능 마냥 보고 있는 나도 같이 즐겁다. 맞은편 가벽에는 송도 유원지의 연혁에 대해 정리해 두고 관련된 주요 기사들을 실어 놓았다. 작은 모니터에는 송도유원지에서 놀고 있는 어느 집 홈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다.

 

한 켠에는 송도 유원지 폐장 이후 사용되던 중고차 수출단지에서 나온 자동차 엠블럼들도 전시되어 있어 쓸쓸한 송도 유원지의 뒷모습들도 보여주고 있어 전시의 스펙트럼이 넓다.

아카이브 공간에서 아주 작은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다. 이 작은 책은 백인태 작가의 작품 ‘예감은 틀린다.’로 작가의 어린 시절 송도 유원지에 관한 4가지 사연을 주제로 풀어낸 소설이다. 과거의 기억을 담은 책과 현재를 살아가는 가상 인물이 송도유원지에서 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박가인 작가의 점토 인형들은 예전대로 다시 바글바글해진 송도 유원지를 점토로 재현했다. 작품 ‘예전대로 다시 바글바글해진 송도유원지’는 시민들로부터 받은 송도 유원지의 사진을 바탕으로 점토를 빚어 다양한 인물들의 행동을 표현했고, 눈코입은 생략하여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저마다 다른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것이 자못 재밌다. 점토인형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추억이 담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점토 인형들은 송도 유원지로 꾸며진 이 전시장을 향유하는 행락객 또는 관람객들이다.

 

전시의 마지막 구성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는 윤종필, 박유미 작가가 참여하였다. 윤종필 작가는 판화로 ‘송도유원지의 추억’을 새겼다. 오리배, 대관람차, 여름날의 피서, 수정각, 단체사진 등등 시민들이 보낸 준 사진을 참고하여 강인한 음영의 조화를 이용해 추억의 장면들을 표현하였다.

 

박유미 작가는 지역의 노년의 여성들과 함께 ‘지금이 아니었다면’을 작업하였다. 송도유원지에 대한 참여자들의 정서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나아가 미완의 송도유원지 부지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와 상상을 담아 작업하였다고 한다.

<뜻밖의 연수: 우리 안의 송도유원지>는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들을 모아 다시 송도유원지를 탄생시켰다. 역사 속에 남아있는 송도유원지를 다각적인 방법으로 조명하여, 인천에서 송도유원지가 가진 의미와 그 다사다난했던 변화의 시간과 장소성 그리고 시민들의 기쁨과 동경,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조화롭게 소환시켰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송도유원지 부지를 사용해야 할지 작은 메시지를 남겨 주고 있다. 현재에도 송도유원지 부지 사용에 대한 논의와 각종 계획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어떠한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구상하더라도 그 안에 인천 시민들의 기대와 염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뜻밖의 연수: 우리 안의 송도유원지>를 보고 나니 갑자기 지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10년 전 인천에서 자리 잡을 당시 만난 소중한 인천토박이 지인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갔던 여름휴가 어느 밤에 서로 술잔을 나누며 나눈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우리 어릴 때는 놀러 간다고 하면 무조건 송도유원지였어!” 라고 인천토박이가 말하자 서울토박이 지인도 “야, 우리도 여름휴가는 송도유원지로 갔어!”라고 답했다. 송도유원지는 인천을 포함 가까운 수도권 지역 모든 이들의 빠질 수 없는 추억이었나 보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우리 부부에게 송도유원지는 그저 타인의 추억일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이 전시를 만나고 나도 이제는 송도유원지에서 한번 놀아본 진짜 인천인이 된 것 같다. 인천사람 필수 경험치 하나를 적립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민들에게 공개되지 못한 아쉬움에 글로나마 전시장 구석구석 주요 작품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설명해 보려 했다. 전시는 어렵지 않다. 잘 정리된 아카이브는 읽으면 쉽게 습득되고, 작품들은 마주하는 순간 바로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이 전시를 볼 수 있었다면 송도유원지를 다시 마주하는 기쁨과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송도유원지의 향수를 품은 사람들, 혹은 송도유원지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부족하지만 이 전시리뷰가 부디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 ]

 

남해인

 

 

전시 : 뜻밖의 연수 - 2부 뜻밖의 연수를 만나다 : 우리 안의 송도유원지

기간 : 2020.9.22 - 10.11

작가 : 고경표, 라오미, 김수환, 김정모×황문정, 박가인, 백인태, 박유미, 윤종필

장소 : 연수갤러리 

기획 : 연수문화재단, 오석근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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