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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풀잎들

by 동무비평 삼사 2021. 2. 21.

ⓒ 오석근

그건 평소보다 흥겹고 들뜬 분위기의 광장무였다. 광장에 걸린 그녀의 그림 주위로 붉고 푸른 조명이 비치자 하나둘 춤을 추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통제 불가능한 춤바람, 도무지 멈추어지지 않는 몸짓들 속에서 그녀는 스산한 온기를 느낀다. 간격을 두고 기댄 듯, 포개어진 듯, 휘청이는 듯, 휩쓸리는 듯, 흔들리는 사람들. 그것은 함께 있다고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서로에게 기대는 몸짓이자,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을 예비하는 느린 몸짓이었다.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 여름에서 겨울까지 중국 충칭의 황저우핑 지역에 머물게 된 이경희 작가는 이미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던 깊은 외로움과 단절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건 낯선 곳에서의 당연한 감정이기도 했지만 발을 다치게 되는 바람에 더 잘 느끼게 된 것들이기도 했다. 이동이 제한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해지면서 점차 자신이 이방인이자 여성이며 언어적으로 소수자라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타국의 낯선 공기 속에서 사라지는 듯한 감정을 간신히 벼려내며 그녀가 거리에서 보이는 광장무(일상적으로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집단으로 체조나 군무를 생활체육처럼 즐기는 중국의 문화)를 관찰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춤을 추는 그 자리는 누구나 아늑하게 숨어들었다가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준비된 기이한 피난처처럼 보였다.

 

낯선 이들의 춤에서 작가가 목격한, 어딘가 자신과도 일면 닮은 고독과 불안, 내적 욕망과 갈등의 풍경은 그날의 기억을 캔버스 가득 무성하게 자라난 풀잎들로 그려 넣게 된다. <광장무 1><광장무 2>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초록색 화면에는 전면의 풀잎이 뒷면의 사람들을 집어삼키려는 듯 위협적으로 피어오른다. 마음 깊이 심어둔 두려움을 토양 삼아, 그리고 외로움을 흡수하며 어두운 녹색의 풀잎들은 한창 길게 자라나는 중이다. 그것은 이면의 감정을 구체화하는 사물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어 포개진 채 흔들리는 외로운 신체의 형상화였다. 한편 울창한 풀잎들에 가려진, 아니 반쯤 합쳐진 것은 아무리 봐도 춤을 춘다기보다는 슬퍼하거나, 당황하거나, 다투거나, 분노하는 표정의 겨우 윤곽만 잡히는 얼굴들이다. 풀잎으로 가려지지 않는 몸짓은 자신과 불화한 채로 존재하며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그것은 <다친 다리 1>, <다친 다리 2>에서 풀잎에 베인 것처럼 푸른 멍이 들어가는 다리와 <난시>에서 풀잎 사이를 맴도는 여러 눈동자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부분화된 신체들로 풀잎의 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깊은 낯섦 속에 잠시 풀잎처럼 눕는 사람들, 아픈 발로 빠르게 춤추는 사람들, 모두가 혼자임을 확인하러 온 자리에서 빠르게 자라는 풀잎들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그림이 있다. 흔들리며 빠르게 춤추는 몸짓들이 어떤 일상적인 감정의 잔여였을지 누가 그 속을 알까’ (영화 <풀잎들>의 대사) 그들은 마치 혼자 춤을 추기 위해 인파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광장의 모두가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는 건 그날 찍힌 사진을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잡은 손의 주인이 어지러운 무보 속에서 계속해서 바뀌는 동안 어떤 이는 춤을 추는 열기를 일회적인 만남에서 비롯한 기묘한 따뜻함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주한 눈동자에 점차 반쯤 붉고 반쯤 푸른 조명이 비치고 조금씩 빨라지는 몸짓에 어지러움을 느끼려는 찰나, 위태롭게 서로에게 간격을 두고 기대어 선 짙은 초록의 형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풀잎들이 보였다. [ ] 

 

전솔비

 

전시: DEEP GREEN SIDE, WE ARE

기간: 2020.10.22 - 10.31

작가: 이경희

장소: 갤러리 옹노

참고 : 2020 인천문화재단 예술표현활동지원 사업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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