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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기억의 지층을 드러내기 : 인천아트아카이브

by 동무비평 삼사 2021. 5. 30.

우연히 태어나 자리 잡게 된 혹은 여러 이유로 이주하여 온 이 곳. 납작하게 눌린 평면도의 희미한 선으로 구분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우리가 나고 자란 장소는 개인이 설정한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의 감각 주위를 빙 두른다. 그 시절의 공기를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자유공원에서 아카시아꽃을 따고, 때로는 이젤과 물감을 싸들고 풀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예술로 분위기가 무르익는 신포동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미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간다.

 

특정 지역으로 한정짓는 수식어가 예술가라는 명사 앞에 붙는다면 그 범위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 곳에서 나고 자란, 학창 혹은 대학시절을 해당 지역에서 보낸, 과거에 거주했던 또는 현재 거주하는, 지역의 미술 현장에 꾸준히 참여해온 예술가. 이에 따라 인천이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시각 예술가로 모인 40인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기도, 인연이 닿아 인천에 자리를 잡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이기도, 나아가 1980년대 인천 민중미술에 참여했던 또는 2011년 막을 내린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를 이끌었던 주역이기도 하며, 저마다에게 다가온 인천의 의미로 운을 뗀다. 예년보다 꽃이 이르게 피기 시작한 4, 이 모음집은 인천아트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웹사이트(inartarchive.kr)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목소리는 다소 산발적이다. 개별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료를 축적해나갈 뿐, 그저 한 인물에 따른 분류와 쌓아두기에서 기능을 멈춘 채 맴돌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인천아트아카이브가 공개된 온라인 공간은 코로나 이후 화려한 비대면 콘텐츠를 뽐내며 다투는 치열한 경연장이 되었으며, 문턱을 낮춰야 할 미술은 누군가에겐 디지털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벽이 되어 나타났다. 인천 시각예술의 산물은 지역의 연구자를 넘어 그들이 목표한 시민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장소가 곧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다시 장소로 피어나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아를레트 파르주가 그의 저서 아카이브 취향에서 말한 것처럼, 작은 조각들이 역사가 되는 것은 작업자가 그것을 자료로 수집한 순간부터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서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실천적 태도를 놓친다면, 이 말하기는 끝점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온라인 장 안에서 의미를 잃은 채 그저 여러 개의 기표가 되어 떠돌게 될 것이다.

 

그동안 밝고 커다란 빛의 주변부는 그늘이 짙게 드리우기 마련이었다. 인천미술에 관한 독자적인 논의는 시작에 앞서 이미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무언가와 견주어보아야 할 담론으로 나란히 놓이거나 연구의 끈이 이어지지 못한 채 분절되어 나타났다. 그렇기에 따로 떨어져 그 자리에 있어온 역사를 하나의 실로 엮어내는 작업은 긴 호흡으로 생각을 이어가기 위한 자양분이다. ‘인천아트아카이브가 앞서 제시한 방향대로 다양한 층위별 예술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 미술사의 맥락을 정리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매듭의 가능성을 놓지 않을 때, 부단히 다듬어 놓은 토양 위에 무언가 돋아나길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증언 이상으로 재연하는 것을 아카이브 기록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인천아트아카이브는 이제 막 시작점에 서 있다. 지나온 인천에 관한 기억의 축적은 다가올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반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모아진 목소리가 이르게 저버리지 않기를, 이 도시 구석구석 흩어져 여기 인천을 위한 하나의 기록으로 엮어지기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차근히 살펴보길 권한다. [ ]

 

이슬

 

프로젝트: 인천아트아카이브

주관: 문화수리공

후원: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참고: 인천아트아카이브 http://inartarchive.kr/main/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원로, 중견작가 40명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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