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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쿠아 유니버스

by 동무비평 삼사 2021. 5. 30.

색다른 시각은 독특한 조건에서 생기기 쉽다. 난독증이 있어 세상의 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더디었던 눈은, 잘 보이는 생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데 주력했다. 아무리 조그만 생명체도 이 눈엔 잘 보였다. 이 작은 생명체가 더 작은 것들을 먹고, 때로 먹히고 맥없이 죽거나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일에 시간을 아무리 내어놓아도 지겹지 않았다. 이 작은 생명체들도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환경에 적응해 살아나가는 것을 보며, 혹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속수무책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나를 둘러싼 주변의 생물체가 어떻게 만들어져있는지, 그들은 제각각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적응해 나가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온실을 만들고, 바닷물 속 미생물과 알이 어떤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죽고 사는지 살피느라 수족관을 만든다. 해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생명체인지 보여주고 새우가 단순히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가 아니라 얼마나 특이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신비로운 생물인지 발견하도록 한다.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김기대는 총 5개의 공간을 수족관을 넣거나 공간자체가 수족관이 되도록 꾸렸다. 그 중 한 방은 작가자신이 서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족관 속 생명체와 작가 본인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그들의 사는 서식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물과 산소 먹이와 해조류 등의 삶의 조건을 꾸미는 것처럼 작가 자신이 사는 공간도 본인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두었다. 늘 쓰는 장비와 단출한 침대로만 꾸려진 심플한 공간은 실제로 작가가 시간을 보내고 잠을 자면 완성되는 작품이다. 오픈스페이스 배라는 5층 건물이 작가에겐 본인이 들어간 수족관이다.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이고, 그 안에 오픈스페이스 배라는 전시공간도 하나의 수족관이고, 그 안에 또 다시 수족관이 있는, 줌인을 계속해 들어갔다가, 줌아웃을 해서 나오는 반복을 하게 된다. 관객은 작가가 되었다가, 수족관 속 생명체가 되었다가, 그 생명체를 품은 수족관이 되는 위치이동과 시점이동을 하게 된다. 식용 물고기를 담은 횟집의 수족관에서 관상용의 장식 수족관으로, 실제 작가가 사는 전시장과 관객이 직접 들어가야 완성되는 전시장 수족관으로 수족관을 주제로 각각 다른 시점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게 하는 이 전시의 제목이 <AQUA UNIVERSE>가 된 이유다. 공기를 물이라 가정하고, 오픈스페이스 배라는 전시공간이 바닷속 건물이라 상상하며 들어서면 전시가 한결 흥미로워진다.

 

김기대는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곳과 작업하는 곳을 끊임없이 찾고 정비하고 옮기고, 주변 사람들 혹은 생물들이 거주하거나 쉬는 곳을 고치고 짓는 일에 열중했다. 생태적인 시각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2012년 제주로 거주지를 옮기게 했고, 제주에서 그가 해온 일련의 작업들은 그 고민에 대한 질문과 약간의 해답이다. 선흘초등학교에 설치한 <선흘쉼팡> 벤치가 그 시작이고, 원도심 산지천 인근에 새가 살 집을 대나무와 폐그물로 제작한 조형물도 그랬다. 지붕이 날아간 평대리 폐가를 고쳐 살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어 했고, 한동리 초가집을 빌려 역시 거주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고치는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 본인의 작업실을 옮겨다니며 작업실을 꾸리는 일 자체가 작업이 된다는 콘셉트를 발전시켜왔다. 2014년에 와산리의 귤창고를 개조해 <노란대문창고>라는 작업실을 5년간 운영했고, 2019년에는 와산리에 직접 작업실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작업실을 만드는 과정에 작가가 노동하는 퍼포먼스를 더해 실제 전시장에서 이 모든 것을 재현한다는 콘셉트로 2018년 서울의 아웃사이트에서 <빈 공간>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가졌고, 이 전시에서 발전해 전시장 건물 자체를 리노베이션하는 과정동안 전시장이 다시 작가의 작업실이 된다는 맥락으로 제주도 원도심에 새탕라움이라는 공간에서 2020<스페이스 오브 제로>라는 전시를 열었다. 2021년도에는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각각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작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제주라는 섬에서, 본인의 작업실과 야외공간을 넘나들며, 새의 시점과 어린이의 편의, 공간의 존재이유와 재생에 대해 고민하던 지상의 시선은 이제 수중생태계로 확장됐다. 바다 속을 스캐닝해서 훤히 들여다보는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상상력은 결국 수중 속 백화된 산호초의 변화를 추적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본인의 작업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고, 그 주변을 관찰하고 고민해 작업하길 기꺼이 원하는 작가의 시선이 그리고 그 작업의 과정이 요즘처럼 고맙게 느껴지는 때도 없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살이를 하다가 제주에 정착한 작가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아쿠아 유니버스를 재현한 일은 회귀성 어종의 귀로를 연상케도 한다. 건축과 설치를 오가는 작가의 작업이 땅과 바다를 오가고,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고이지 않고 계속 확장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조만간 아쿠아를 뺀 우주를 전시장에서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 ]

 

이나연

 

전시: AQUA UNIVERSE

기간: 2021. 04. 03. - 2021. 05. 22.

작가: 김기대

장소: 오픈스페이스 배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 이미지는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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