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새로운 감각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감각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보통의 풍경을 뒤엎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낯선 감각은 ‘공기’와 매우 밀접해 있다. 정서진아트큐브에서 진행한 <공기의 모양>은 김윤수, 신현정, 전희경, 이 세 명의 회화 작가가 참여한 기획전으로 공기에 대한 공감각적인 사유를 회화로 담아낸다. 우리는 과연 작가들이 경험한 공기의 어떠한 면모를 발견하게 될까?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것은 우리 본질 혹은 학습된 체계, 그리고 외부적인 환경의 요인에 의해서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언어’를 통해서 사회 속에 우리의 존재를 인식시키려 한다. 작가들은 언어의 역할을 하는 ‘매체’를 매개로 사용하여 그들이 경험한 사회적, 물리적 상황과 관계 등을 시각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곤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세 작가는 평면의 매체를 통해서 각자가 경험한 ‘공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김윤수 작가의 경우 ‘시간’에 따른 바람의 형태를 기록하고 있다. 바람은 공기가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는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바람의 형태를 기록하고 있다. 작가가 그린 ‘바람’이라는 무형의 형상은 단순한 이미지로서 종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닌 화면 안에 생동하고 있는 생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관객이 벽면을 따라 이동함과 동시에 종이 안의 바람의 형상은 규칙적이지 않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어 간접적으로 작가가 느낀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김윤수 작가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고 있는 바람의 형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고착된 상태의 보편성이라기보다 모든 이들이 바람의 이미지로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윤수 작가가 그려낸 바람은 매우 사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형상이지만, 섬세한 재료의 사용과 표현방식을 통해서 바람의 흐름, 결을 느낄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형상으로 관객에게 감각적 공감을 일으킨다.
전희경 작가는 캔버스 화면 안에 경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공기가 운용되는 ‘형태’에 대해서 그려내고 있다. 공기는 끊임없이 순환되며 고저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공기가 순환하고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관찰한 전희경 작가는 그가 설정한 경계 안에 공기의 형태를 묶어둔다. 캔버스 모서리에 경계를 설정하고 이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종의 ‘공기’ 혹은 ‘바람’으로 불리는 색의 형태와 붓질은 작가가 응시하고 있는 무형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는 그 위에 연구 과정의 기록을 남기듯 표면을 도구로 긁어내리기도 하고 빈 캔버스 표면을 붓질 사이에 그대로 남기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부피감과 무게감을 유추케 한다. 여러 개의 <공기에 대한 연구>, <바람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보면 공기는 결코 비슷한 이미지와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관객들은 물감의 틈새, 움직이는 붓의 이동 동선 등을 통해서 작가의 연구 결과를 함께 공유하게 되는데, 작가가 캔버스 위에 칠하는 시공간의 공기가 한 표면에 담기고 겹쳐져 결과적으로 매일 다양한 형태로 공기가 해석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현정 작가는 <날씨 회화_오늘의 신간>을 통해 2013년도부터 2019년도까지의 날씨를 담은 회화를 선보였다. 작품 제목인 <오늘의 신간>이라는 말에 걸맞게 벽에 못을 박고 그 위에 거는 일반적인 평면 설치의 형식에서 벗어나 작가들이 작품을 보관할 때 많이 제작하는 철제 앵글 위에 캔버스가 진열되어 있다. 이 작업은 일반 관객들에게 회화를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면서 시선이 닿을 수 있는 작품의 면적을 캔버스 뒷면까지 확장했다. 날씨 회화 시리즈로 작가는 피부에 닿는 ‘온도’를 매일 기록한다. 그날의 습도, 온도, 외부적인 힘, 작가가 눌러 내리는 스프레이의 압력까지 다양한 경우의 수들이 담긴 여러 가지 모양의 캔버스와 표면에 새겨진 화면 바깥에서 스며들어온 물감의 입자는 관객에게 작가가 경험한 온도에 대한 상상력을 돋구기도 한다.
세 작가는 작가 개인의 ‘공기’의 감각뿐만 아닌 장소적 특성마저 작업에 흡수시킨다. 바다 근처에 위치한 전시장 특성에 따라 흐릿하거나 습도가 높은 날들이 많은데, 이들의 작업은 이러한 환경 또한 입체적으로 작업을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흔들리는 종이를 통해서 바람의 물리적인 이동이 시각적으로 보이게 하고, 작가가 연구한 공기의 부피감과 형태적인 면을 그날의 공기의 무게감에 따라서 다르게 관찰할 수 있으며, 스프레이로 흡착된 물감들의 형태와 색을 통해서 캔버스 표면에 닿을 당시의 공기의 흐름을 유추하게 하기도 한다. 세 작가의 작업은 재료의 선택과 섬세한 표현방식을 통해서 결코 납작한 작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장 일상적인 소재이자 가장 흔히 쓰는 재료들을 통해서 작가들은 무형의 형상을 재현하고 겹겹이 과정을 기록하여 평평한 표면 위에 안에 담아내고 있다. 이에 관객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시각적인 언어를 통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습득하고, 소화시켜 응용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 시기, 물론 피크닉 나온 가족들과 여객선을 이용하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아라뱃길 여객터미널은 황량했으며 사람들의 말소리보단 적막이 가득했다. 침체하여 있던 모든 공유 공간들은 여전히 이전의 활발함을 되찾지 못했으며, 그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사실 알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는 ‘새 봄의 산뜻한 공기가 스며드는 정서진아트큐브에서 당신을 감싸는 오늘의 공기 모양을 그려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마무리 지었다. 최근 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침체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기획자의 마음처럼 전시를 관람한 이들도, 이 리뷰를 보는 이들에게도 자신을 감싸는 공기의 모양을 각자의 언어로 기록해나가면서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 ]
오은서
전시: 공기의 모양
기간: 2021. 04. 07. - 2021. 05. 23.
작가: 김윤수, 신현정, 전희경
장소: 정서진아트큐브
주최: 인천광역시 서구
주관: 인천서구문화재단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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